“우리는 이름으로 남는다”는 김웅 사표에… 검찰, 결국 폭발

김명진 기자
입력 2020.01.14 19:31 수정 2020.01.14 21:24
검찰 내부 구성원, 9시간 반 만에 댓글 460개 쏟아내
"수사권조정은 거대한 사기극" 김 검사 사퇴 글이 기폭제
"억울함·불편 느끼는 국민 한명이라도 늘어나면 改惡"
"‘검찰 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경찰 공화국 초석 만들어"
"한 국가의 사법체계가 이런 과정과 동기로 바뀔 수 있나"
"지도자, 핑크빛 미래만 제시… 닥칠 잿빛 현실은 외면"

검찰이 폭발했다. ‘1·8 대학살’로 불린 검찰 고위 간부 인사, 직접수사 부서 대거 폐지로 쌓여있던 불만이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와 조직 내에서 신망받던 검사의 사직으로 터져나온 것이다. 기폭제는 김웅(49·사법연수원 29기·사진) 법무연수원 교수(부장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이었다. 14일 오전 올라온 이 글에는 이날 오후 9시 20분까지 460개의 댓글이 달렸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여느 검사장들 사직인사 때도 이 같은 호응을 본 적이 없다. 역대급 호응"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이프로스에 ‘사직 설명서’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전날 더불어민주당과 범여 군소정당들이 통과시킨 수사권 조정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검찰개혁을 빙자한)거대한 사기극", "이 법안들은 개혁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가장 혐오스러운 음모이자 퇴보"라는 것이다. 김 부장검사는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으로 검찰의 수사권 조정 대응 실무를 주도하다 작년 7월 인사 때 비(非)수사 보직인 법무연수원 교수로 좌천됐다.

김 부장검사는 이날 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목적은 권력 확대와 집권 연장이 아닌가? 그래서 ‘검찰 개혁’을 외치고 ‘총선 압승’으로 건배사를 한 것이냐"고 썼다. 그러면서 검찰 내부 구성원을 향해 "봉건적인 명(命)에는 거역하라. 우리는 민주시민"이라며 "추악함에 복종하거나 줄탁동시하더라도 겨우 얻는 것은 잠깐의 영화일 뿐, 그 대신 평생 더러운 이름이 남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결국 우리는 이름으로 남는다"고 했다. 지난 3일 추미애 법무장관이 법무부 주도 검찰개혁에 호응하라며 인용한 '줄탁동시'를 저격한 것이었다.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이를 최초 발의한 박용진(왼쪽 둘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쁜 얼굴로 동료 의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도 통과시켰다.
댓글 대부분은 김 부장검사의 의견에 동조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 "거대한 사기극의 피해자는 국민" "개악"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한 검찰 구성원은 "사심 없는 명랑한 생활형 검사의 사직을 마주하며 이 거대한 사기극의 피해자는 역시 국민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며 "마지막까지 평범한 검사들에게 공감과, 위로와 길잡이가 되는 글을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썼다.

다른 한 구성원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과 직결되는 형사절차에 대한 제도가 형사사건 당사자 입장에서 숙고되지 아니한 채 가위질되고 패스트트랙으로 통과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생각하게 됐다"고 썼다. "법안의 내용이 실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럴 듯한 ‘검찰 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경찰 공화국의 초석이 다져진 것이 허탈하다"는 댓글도 달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과정과 결과 모두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았다. 또 다른 검찰 구성원은 "한 해 동안 형사사건 관계인(피의자, 고소인, 피해자 등)의 수가 최소 500만명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제도 변화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되는 억울함과 불편을 느끼는 국민이 한분이라도 더 늘어나게 된다면 이는 개악(改惡)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썼다. 또 다른 이는 "한 국가의 사법체계가 이런 과정과 동기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소위 국민의 명령이라는 그 내용도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오늘"이라며 "(김 부장검사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진짜 검사의 글임을 새삼 느낀다"고 썼다. "대표, 리더, 지도자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핑크빛 미래를 제시하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닥칠 잿빛 현실은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왼쪽 사진은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20년 정부 시무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는 모습. 오른쪽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검찰 조직의 현 주소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댓글도 있었다. 한 구성원은 "‘프레임 교조주의’에 빠져서 바람직한 형사사법체계가 물건너 간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와 같은 감동적인 격문과 함께 개인적인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이 상존한다는 것이 비통하다"며 "어느샌가 이 사회의 갑충(甲蟲)이 되어 아사해버리는 조직이 됐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애가 가슴에 맺힌다"고 했다. 박철완(47·27기) 부산고검 검사는 "앞으로 교과서와 지침에서 수사의 주재자, 수사 지휘 등의 용어가 사라질 것"이라며 "그 자리를 어떤 용어와 개념으로 메워야 하는지 많은 지혜가 필요한데 형 같은 분이 떠난다니 저 같은 고검 검사조차 훌쩍 떠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고 적었다.

이 외에도 김 부장검사와의 여러 인연(因緣)을 되새기며 떠나보내는 것이 아쉽다는 내용의 댓글도 상당수가 달렸다. 김 부장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김유철(50·29기)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그 담담한 목소리에 울었고, 새벽 출근길에도 울었고, 지금도 울고 있다. 이제 후배들 믿고 맘 편히 가라"고 썼다. 추의정(44·35기) 대검 연구관은 "부장님께서 기소하신 사건들을 찾아보면서, 일반 국민들이 피해자인 형사부 사건을 한 건 한 건 정성들여 처리하시는 것을 보고 부장님이 어떤 검사이신지 느꼈다"며 "마지막까지 나라와 국민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신 사직의 글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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