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조원어치 구매·환율조작국 해제...美中 '통큰 합의'에도 불확실성 여전

유진우 기자
입력 2020.01.14 16:40 수정 2020.01.14 17:03
‘불확실성(uncertainty)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15일 백악관에서 미·중 간 1단계 무역합의 서명식이 예고된 가운데, 겉보기에는 미국과 중국 사이 격렬한 기싸움이 잠잠해진 듯 보이지만 물 밑에선 여전히 힘겨루기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4일(현지 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무역협정에 관여하는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이 미국산 상품을 대규모 구매하기로 약속했다’면서 ‘4가지 부문에서 향후 2년간 2000억달러(약 231조원) 규모 구매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알려진 대로 중국이 미국산 상품을 대규모로 사들인다는 내용에 합의안에 포함된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제조된 완제품 750억달러, 에너지 500억달러, 농업 400억달러, 서비스 350억~400억달러로 구매 목표가 설정됐다고 전했다.

중국 측 무역협상 대표팀을 이끄는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는 이 합의안을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을 7번이나 찾았다. 비행시간으로 따지면 200시간, 거리로 따지면 14만5000km에 해당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죽마고우이자 경제 브레인인 류 부총리는 15일 오전 백악관에서 1단계 합의 서명식에 시 주석을 대신해 참여한다.

중국 측 무역협상 대표팀을 이끄는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가 지난해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이 화끈하게 대규모 구매를 약속하자 미국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날 1단계 무역합의를 앞두고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을 해제했다. 앞서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8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 이후 5개월만이다. 미국은 중국이 지난 5개월 동안 환율 관련 정책에 있어 이렇다할 변화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돌연 ‘무역 상대국 중 어느 국가도 환율조작국 기준에 맞지 않았다’면서 입장을 바꿨다. 명백한 화해 분위기를 달구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 나라가 어긋난 관계를 봉합하려는 노력을 보이자 국제 사회는 이번 1단계 합의가 미·중 경제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단계 합의 서명 이후 중국 경제성장률이 올해 전망치 5.8%에서 6%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역시 1단계 합의를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2.5%를 달성하는데 기여할 핵심 요소로 꼽았다.

다만 돈줄을 풀게 된 중국 입장에서는 이번 협의안이 썩 탐탁지만은 않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류 부총리의 이번 미국행(行)을 미국과 중국이 진정 휴전하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미중 무역협상에 정통한 한 소식통을 인용해 "1단계 합의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할 것이란 미국 측 주장과 달리, 이번 합의문의 핵심은 ‘균형(balance)’"이라고 자평했다.

중국 관영 경제지 경제일보가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타오란 노트’ 역시 지난 5일 올린 게시물에서 "무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미국은 중국산에 대한 모든 관세를 철폐하지 않았고 중국산에 대한 보복관세는 여전히 부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에서 지갑을 연 대신, 2단계와 추후 있을 협상에서는 구조적이고 좀 더 포괄적인 개혁을 담보로 미국에 관세 인하나 강제 기술 이전(transfer) 같은 더 뚜렷한 이점을 제시하라고 피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경제정책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채드 보언 선임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1단계 무역합의: 고율 관세가 뉴 노멀이다'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 관세율은 현재 평균 21%이고, 1단계 무역합의가 이행된다 하더라도 19.3%에 이를 것"이라면서 "미·중 무역 전쟁이 터지기 전인 작년 초 중국산에 매기는 미국의 관세율이 평균 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입장에선 고율 관세가 새로운 기준이 되버린 셈"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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