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위 일정 묻는데 "평화와 휴식" 답한 이성윤... 대검이 밝힌 ‘내통설’ 전말

양은경 기자
입력 2020.01.14 09:39
"평화와 휴식이 있는 복된 시간 되시길 기도드린다"

이성윤 전 검찰국장(현 중앙지검장)이 지난 7일 밤 강남일 전 대검 차장(현 대전고검장)에 보낸 문자다. "평화 속에 휴식을 취하라(Rest In Peace, RIP)"는 묘비의 애도 메시지와 묘하게 겹치는 내용이다. 검찰 인사를 하루 앞두고 인사를 총괄하는 검찰국장이 보낸 이 메시지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왼쪽)과 강남일 신임 대전고검장(전 대검 차장) /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12일 ‘좌천된 검찰 간부에 대해 조롱과 독설 문자를 보냈다’ 고 폭로했다가 법무부가 문자 전문(全文)을 공개하면서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번졌다. 그야말로 상대방의 평화와 휴식을 기원하는 덕담에 불과하며 조롱과 독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러자 민주당은 13일 "주 의원과 내통한 검찰 기득권 세력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역공에 나섰다.

검찰이 느닷없이 ‘내통’ 혐의자로 지목되자 복수의 대검 관계자들이 당시 상황과 문자 내용을 전하며 반박에 나섰다. 이 전 국장의 ‘평화와 휴식’은 강 전 차장이 대검 차장이 법무부에 인사안을 요구하며 보낸 문자에 대한 답이라는 게 요지다. 공식적인 업무 연락에 대한 이 전 국장의 맥락 없는 답변, 이를 선별적으로 공개한 법부무로 인해 대검만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들이 밝힌 당시 상황에 따르면 대검은 7일 저녁 무렵 법무부로부터 "다음날 아침 일찍 검찰 인사안을 보내 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간 검찰 인사는 법무부 안(案)을 바탕으로 총장과 장관이 수차례 협의를 거쳐 이뤄졌다. 검찰청법도 법무부장관이 총장 의견을 들어 검찰 인사를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이날 저녁 윤 총장과 통화하면서 "법무부에 인사안이 없고 청와대에 있다"고 하면서 대검이 청와대에 확인전화를 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결국 김오수 차관이 강남일 전 대검 차장에게 전화해 "사실은 인사안이 있다. (장관이)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 내일(8일) 오전 일찍 보내주겠다"고 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런데 이날 밤 9시가 넘어 "다음날 인사위원회가 열린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이는 인사 내용이 사실상 결정됐다는 의미다. 당연직 인사위원인 강 전차장도 9시 반 넘어 참석통보를 받았다. 강 전 차장은 경위를 묻기 위해 이 전 국장에게 전화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강 전 차장은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인사위원회 개최를 밤 늦게 통보하는 이유가 뭐냐. 안건에 경력검사 임용이 있는데 필요한 절차는 이행한 것이냐"는 내용이었다. 인사안을 보내 의견을 묻겠다던 법무부가 느닷없이 인사위를 개최하겠다고 나선 이유와, 인사위 안건으로 표시된 ‘경력검사 임용’의 구체적 내용을 묻는 내용이었다.

이 문자에 대한 이 국장의 답장이 "평화와 휴식이 있는 복된 시간"이었다. 정확히는 "늘 좋은 말씀과 사랑으로 도와 주셔서 감사드린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평화와 휴식이 있는 복된 시간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는 것이다. 인사안 관련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강 전 차장은 이 답문에 황당해 하면서도 다시 이 전 국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법무부가 인사위 있기 전에 인사안을 보낸다고 했으니 이른 시간에 보내 달라. 그래야 총장님이 검토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일(8일)오전 일찍 인사안을 주겠다’던 약속을 확인받는 차원이었다. 이 전 국장은 이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대검 간부들은 "‘인사안을 주겠다’는 법무부의 약속을 전제로 이 전 국장과 업무상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그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엉뚱한 문자를 보내 온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가 이런 앞뒤 맥락 없이 문자만 공개하는 바람에 검찰이 ‘내통’ 혐의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 연합뉴스
주 의원과의 ‘내통’은 검찰이 특히 억울해하는 부분이다. 검찰은 "주 의원이 문자 내용이 공개되면 바로 반박당할 ‘조롱과 독설’을 얘기한 것 자체가 사건 맥락을 전혀 모르고 잘못 짚었다는 증거"라며 "강 전 차장을 비롯한 대검 관계자들과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고 했다.

검찰은 이전부터 주 의원과의 내통설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가 조국 전 장관 수사 당시 딸 조민씨의 생활기록부를 공개하고, 조 전 장관이 압수수색 당시 수사검사와 통화한 사실을 공개했을 때도 검찰은 ‘내통설’로 홍역을 치렀다. 검찰 내부에서 주 의원은 ‘X맨’으로 통한다. 폭로 내용이 언뜻 검찰에 우호적이어도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의미다. 검찰이 바보가 아닌 이상 폭로마다 이런 혐의를 받는 주 의원에게 정보를 주겠느냐는 것이다.

이 전 국장의 ‘평화와 휴식’ 의미에 대해서도 뼈있는 해석들이 나온다. 조롱과 무관한 덕담이었을까, 아니면 미리 보내는 애도메시지였을까. 조만간 있을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그 진의(眞意)가 더 확실히 드러날 것이라는 게 서초동 주변의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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