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길 찾기… 사막개미한테 한 수 배웠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0.01.14 03:14

먹이 끌고 뒷걸음질로도 집 도착… 가장 빠른 직선 경로 찾아내
오가는 걸음 수로 거리 재고, 태양 위치 파악해 나침반 삼아
자연 지혜 모방한 로봇 개미 개발… 奧地나 우주 탐사 활용 기대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헨젤과 그레텔 오누이는 깊은 숲속에서 나무하러 떠난 아버지를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계모가 아이들을 숲에 버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오누이에겐 이정표가 있었다. 아이들은 계모가 한 말을 엿듣고 숲에 가는 길에 조약돌을 뿌려뒀다. 달빛에 비친 조약돌은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줬다. 계모는 다시 남편을 졸랐다. 이번에는 계모가 미리 알고 밤에 문을 밖으로 잠그는 바람에 조약돌을 줍지 못했다. 오빠는 대신 점심으로 받은 빵을 조금씩 떼어 떨어뜨렸지만 새들이 모두 먹어버려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림(Grimm) 형제의 동화는 아이들 마음에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겨줬다. 어른이 돼서도 스트레스가 심할 때 길을 잃는 꿈을 자주 꾸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곧 다가올 귀성길에도 어린 시절의 공포가 불쑥 찾아올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빠른 길을 찾아 낯선 곳으로 들어섰는데 자동차의 GPS(위성 항법 장치) 내비게이션이 멈추는 상황이다.

과학자들은 21세기의 헨젤과 그레텔을 위해 위성 신호 없이도 길을 찾을 지혜를 자연에서 찾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연구 대상은 사막개미다. 개미는 일반적으로 동료들이 이정표로 남겨둔 화학물질인 페로몬을 따라 길을 잡는데 사막은 기온이 높아 페로몬이 쉽게 휘발한다. 그래도 사막개미는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뒷걸음질로 가도 집으로 가는 길을 정확히 찾는다. 개미는 작은 먹이는 물고 바로 집으로 갈 수 있지만 큰 먹이는 뒤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프랑스 폴 사바티에 대학 연구진은 지난달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인 '바이오 아카이브(bioRxiv)'에 발표한 논문에서 거꾸로 걸어 집에 가는 사막개미의 내비게이션 능력을 입증했다. 사막개미의 숨겨진 GPS로는 먼저 만보계가 있다. 개미는 집을 나와 먹잇감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서 발걸음 수를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덕분에 먹잇감까지 여러 방향으로 돌아서 갔어도 집으로 올 때는 가장 빠른 직선 경로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한번 먹잇감을 끌고 왔던 개미는 실험 조건에서도 주저 없이 직선 경로로 집에 갔다. 과학자들은 개미가 먹잇감을 찾은 순간 다리에 초소형 목마를 달아 내장 만보계의 능력을 역으로 입증했다. 이러면 개미가 똑같은 걸음 수로 돌아가지만 목마로 보폭이 커진 탓에 모두 집을 지나쳤다.

/일러스트=이철원
한번 갔던 길은 만보계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낯선 길은 다르다. 이때는 시각 정보가 중요하다. 사막개미는 먹이를 끌고 거꾸로 가다가 가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프랑스 연구진은 개미가 먹이를 찾아 가는 길에 본 풍경을 스냅 사진처럼 기억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정표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실험에서 평소 개미는 6m 가다가 서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인공물로 풍경을 낯설게 만들면 3.2m마다 멈춰 풍경을 살폈다.

좀 더 정교한 내장 내비게이션으로는 편광(偏光) 감지계가 있다. 태양광은 직선으로 진행하고 전기장이 그 방향에 수직으로 진동하는 횡파이다. 태양광에는 파장이 다양한 빛이 섞여 있어 전기장이 사방으로 진동한다. 하지만 태양광이 대기에 부딪히면 전기장이 특정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편광 현상이 발생한다. 편광 형태는 태양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개미의 겹눈을 이루는 수많은 홑눈은 이런 편광을 감지해 태양 위치를 이정표로 삼는다고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개미의 겹눈 일부를 페인트로 가리는 실험을 통해 편광이 길잡이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막개미의 뛰어난 길잡이 능력은 오지(奧地)나 재난 현장, 또는 행성 탐사처럼 GPS의 위성 정보를 제대로 수신하기 어려운 곳에 응용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 대학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사막개미를 모방한 로봇 '앤트봇'을 발표했다. 개미처럼 다리가 여섯인 앤트봇은 태양의 자외선에서 나오는 편광을 감지하는 카메라와 필터, 만보계, 속도계를 갖고 있다. 앤트봇은 편광 카메라로 태양 위치를 감지하고 만보계로 걸음 수를 계산해 길을 100% 찾아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확도가 최대 14m당 1㎝ 오차로 GPS보다 월등했다. 영국 서식스대는 개미가 풍경을 기억해 길을 잡는 원리를 로봇에 응용했다. 연구진은 기계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 로봇이 오가는 길에 본 풍경 사진을 대조해 길을 찾도록 했다.

개미는 뇌 신경세포가 수천 개에 불과하다. 1000억개 가까운 인간에게 비할 바가 아니지만 절대 집으로 가는 길을 잃지 않는다. 우리도 삶의 방향을 잃지 않으려면 사막개미처럼 잠시 멈춰 주변도 살피고 걸어온 길도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조선일보 A33면
100주년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