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찰의 세평 수집, 도대체 어디에 법적 근거가 있는가

정상환 변호사·前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입력 2020.01.14 03:15
정상환 변호사·前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최근 검찰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경찰에 인사 대상자의 세평 수집을 지시한 것이 보도됐다. 관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최근 청와대와 검찰 간 불편한 기류 탓에 이 기사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번 경찰의 검찰 간부 세평 수집은 몇 가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과거에도 검사장급 간부 인사가 있을 때 세평 조사가 진행됐지만 국정원과 경찰이 같이 했기 때문에 교차 검증이 가능했다. 또 세평 자료는 참고 자료에 불과했고 인사를 좌지우지할 결정적 자료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엔 경찰의 세평 수집이 유일하고 그 대상도 확대되었다. 게다가 그동안 청와대와 여권 인사를 겨냥해서 수사해온 검찰 간부를 쳐내는 자료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관이 과연 정권의 눈엣가시 같은 검사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세평 보고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검찰 인사의 독립성이 검찰 중립의 시금석임에도 당파적 이해관계를 검찰 인사에 반영함으로써 검찰을 정권 눈치나 보는 허수아비 하수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경찰의 세평 수집에 지나치게 의미를 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현 정부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먼저 윤석열 총장 취임 직후 작년 7월 말에 검찰 간부 인사가 이뤄졌는데 불과 6개월도 안 돼 간부 인사를 실시한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김기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조국 일가 비리에 관한 것 등 청와대와 정권 핵심부를 향한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근본적으로 경찰의 세평 수집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는 국가 경찰의 임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세평 수집 근거 조항은 없다. 동조 제4호는 치안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행위를 규정하고 있지만, 검사 인사를 위한 세평 수집이 치안 정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공직 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 제3조는 공직 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공직 후보자 등의 성명, 나이, 주민등록 번호, 전문 분야, 연락처, 현직 및 전직 직위, 학력, 경력, 상훈, 주요 저서 및 논문, 자기 업무 실적 및 성과, 외부 기관의 감사 결과, 각종 평가 결과 등이 열거되어 있다. 역시 세평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인사 검증 대상자의 세평을 수집하는 일은 기관 간 '행정 응원'을 통한 통상적 업무라고 본다. 현행 행정절차법은 인원·장비 부족 등 사실상의 이유로 독자적 직무 수행이 어려운 경우 이를 갖춘 기관에 행정 응원을 요청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정부 기관의 인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이를 갖춘 기관에 요청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취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에 세평 정보 수집에 관한 권한 자체가 없는 마당에 행정 응원을 요청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해법은 하나밖에 없다.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여 세평 수집을 위한 근거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세평 수집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전에는 세평 수집을 중단하거나 적어도 그 자료를 보존하여 정확성을 사후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선일보 A33면
100주년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