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검찰 힘빼고 경찰에 힘 싣는 법안 한국당 불참 속 강행 처리

손덕호 기자
입력 2020.01.13 20:00 수정 2020.01.13 22:03
선거법·공수처법에 이어 수사권 조정 관련 형사소송법·검찰청법 통과
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 대안신당의 '4+1'이 한국당 불참 속 밀어붙여
한국당, 필리버스터 등 저항했지만 4+1의 '쪼개기 임시회'에 무력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3일 본회의장 의석에 '검찰 학살, 문정권 심판' '추미애 퇴진' 등이 적힌 피켓을 붙이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 군소 정당들은 13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자유한국당이 불참한 가운데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통과시켰다. 이날 통과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없애고 경찰에게 수사 종결권을 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로써 지난해 말 통과된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법을 포함해 3대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법안이 모두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제1 야당인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으로 저지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과 대안신당 등 '4+1' 협의체의 표결 강행에 속수무책이었다. 4+1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고자 임시국회 회기를 3~4일로 쪼개서 여는 수단을 동원했다. 국회 의사 진행 권한을 쥔 문희상 국회의장은 한국당이 신청한 법안 수정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자료로 대체하거나 토론 조기 종결을 종용하는 등 4+1 측에 섰다.

이날 저녁 열린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167명 중 찬성 165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검찰청법 개정안은 재석 166명 중 찬성 164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통과됐다.

이날 통과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검찰청법 개정안에 따라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폐지된다. 대신 검찰은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만 갖게 된다. 경찰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게 돼 자체 판단으로 무혐의 처분 등을 할 수 있는 수사 종결권도 갖게 됐다. 또 법개정에 따라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도 한정됐다. 실질적 수사 주도권이 검찰에서 경찰로 넘어간 것이다.

이에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앞으로 경찰이 반대하면 사실상 검찰의 보완 수사가 어려워졌다"며 "정권 차원에서 부정하게 사건을 덮으려 할 경우에는 검찰이 이를 밝혀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의 수사 지휘를 폐지하면서도 경찰 권력 분산 방안은 두고 있지 않아 검찰을 무력화하면서 경찰에 힘을 보태주는 방안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치안·질서 유지 기능에다 형사사건 98%에 대한 수사를 실질적으로 담당한다. 수사 담당 인력만 2만명이 훨씬 넘고 피의자를 구속 상태로 10일간 조사할 수도 있다. 연간 경찰 인지(認知) 사건 가운데 나중에 무혐의로 끝난 사건이 10만건을 넘는다. 그런데도 이번 수사권 조정안은 수사 지휘를 폐지하면서도 경찰 권력 분산 방안은 두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한국당 유기준 의원은 이날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검찰개혁 필요성은 수사지휘권 문제가 아니다"며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로 경찰에 견제 없는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수사의 독립성, 투명성, 중립성과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여당 내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검사 출신인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9일 "(검찰이) '수사에 보완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교체 또는 징계를 요구한다'고 법안에 돼 있는데, 수사지휘권이 있는 지금도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조 의원은 또 "형사소송법 195조에는 '검사는 수사 주재자로서 범죄 혐의가 있을 때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돼 있다"면서 "검찰의 직접 수사를 대통령령으로 8가지에 대해서만 하라는 것은 위법한 명령이자 체계상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한국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무기명 표결에 참여한 뒤 퇴장했다. 이어 한국당이 불참한 가운데 4+1 주도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됐다. 한국당은 본회의장 의석에 '검찰학살 추미애 퇴진' '검찰학살 문(文)정권 규탄' 등 피켓을 붙였지만 표결을 막지는 않았다.

앞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7일, 공수처법은 그 달 30일 한국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통과됐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회기 지정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하고 무제한 수정안 발의 등 저지 전략을 짰지만, 문희상 의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무위로 끝났다. 선거법, 공수처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통상 한 달인 임시국회 회기를 3~4일로 쪼개는 4+1의 꼼수 국회 운영에 힘을 쓰지 못했다.


3일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