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이란의 '여객기 격추'

입력 2020.01.13 03:16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암살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에서 검은 차도르를 입은 젊은 여성이 연단에 올랐다. "중동에 주둔한 미군의 가족들은 자식들 죽음을 기다리며 남은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솔레이마니의 딸이 트럼프 대통령을 '미친 트럼프'라고 비난하면서 분노의 연설을 쏟아내 일약 반미(反美)의 상징이 됐다. 이란 당국이 자국 내 들끓던 반(反)정부 불만을 한순간에 반미 여론으로 돌리는 데 성공하는 듯싶었다.

▶작년 11월 이란 정부가 유가를 50~200% 인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오랜 경제난에, 급등한 기름값이 불에 기름 부은 격으로 전국적 시위를 촉발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이란 정부는 일주일간 전국의 인터넷망을 차단했다. 경찰 외에 이란 혁명수비대까지 시위 진압에 투입됐다. 기관총 사격에 헬기까지 동원해 시위를 진압한 바람에 사망자가 수백 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혁명 40년 만에 최악의 유혈 사태였다.

▶이란은 인구 8200만명에, 면적이 한반도의 7배나 된다. 원유 추정 매장량이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2위인 자원 부국이다. 그런 나라의 1인당 GDP가 5506달러(IMF 기준)로 세계 95위에 불과하다. 막대한 돈을 풀어 시리아, 이라크, 예멘 내전을 지원하면서 시아파 무슬림의 맹주가 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민생 해결에는 실패했다. 무력 수출의 선봉에 선 혁명수비대는 안으로는 에너지 등 각종 이권 사업을 장악해 이란 신정체제와 최고지도자의 독재를 떠받쳐왔다.

▶온건파 로하니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됐다. 미국 등 6개국과 핵 합의를 타결하고 제재 해제까지 끌어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재개로 입지가 좁아져 왔다. 미국과 긴장이 높아지니 군부와 강경파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하지만 176명이 희생된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실은 이란군 미사일에 격추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격추된 여객기 희생자 중 이란인이 82명으로 제일 많다. 이란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았던 캐나다인 57명도 대부분 이란계 젊은이였다.

▶이란 국민 사이에서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를 규탄하는 구호까지 나온다고 한다. 이란 군부와 최고지도자가 '반미 결사 항전'을 외치며 '피의 복수'에 앞장섰으나 정작 자국민 피만 철철 흘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해극이 되고만 복수로 이란이 역풍을 맞으면서 새해부터 중동 기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조선일보 A34면
100주년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