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이어 북미대륙도 휩쓴 봉하이브, 아카데미만 남았다

송혜진 기자
입력 2020.01.07 03:20

[오늘의 세상]
기생충, 한국영화 첫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한국말로 수상 소감 "영광이다, 1인치 자막의 장벽 뛰어넘으면 더 많은 영화 만날 수 있습니다"
뉴욕·LA·필라델피아·워싱턴… 전미비평가협회 상까지 독차지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씁니다. 바로 영화입니다(I think we use only one language, the Cinema)."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 산업 중심지인 할리우드의 장벽을 뚫고 금빛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5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턴 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와 더불어 미국의 양대 영화상으로 꼽힌다.

"이것(트로피) 꽤 무겁네요. 정말 영광입니다!" - 5일(현지 시각)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트로피를 거머쥔 봉 감독이 객석을 향해 손짓하며 벅찬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2월 9일(현지 시각)에 열린다. /AP 연합뉴스
이날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먼저 감격과 흥분을 토했다. "놀라운 일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나는 외국어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어서 통역이 여기 함께 있습니다!" 이어서 그는 우리말로 "서브타이틀이란 자막의 1인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처럼 멋진 감독들과 후보에 오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했다. 또 영어로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도 했다. 말끝엔 왼손 검지를 치켜올렸다. 한국 영화가 한 세기 만에 할리우드에서 새 역사를 쓴 순간이었다.

◇전미 휩쓴 '봉하이브(Bonghive)'

이날 '기생충'은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드 글로리' 등을 제치고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드라마를 통틀어 우리나라 작품이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른 것도, 수상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감독상은 '1917'의 샘 멘데스에게, 각본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쓴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돌아갔다.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여야 한다'는 골든글로브상 규정 때문으로 알려졌다.

미국 현지 매체들은 '기생충'의 골든글로브 수상을 두고 "예견된 일"이라고 평했다. 4일 전미비평가협회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았고, LA·뉴욕·필라델피아·워싱턴DC·보스턴·시카고 비평가협회 등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기 때문. 계급 갈등을 기존 영화들보다 쿨하게 다뤘고, 상업성과 작품성의 균형을 갖췄다는 점도 평단이 '기생충'에 우호적인 이유로 꼽힌다. 뉴욕타임스는 "사회적 의식과 오락성이 공존하는 놀라운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날 "기생충의 골든글로브 수상은 봉하이브(#BongHive) 현상의 일부"라고 썼다. 봉하이브는 봉 감독을 추종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벌집(hive)에서 윙윙거리는 벌떼처럼 강렬한 팬덤을 보인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는 4일 "모두가 기생충을 만든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썼고, 할리우드 리포트도 3일 열린 '기생충' 파티에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봉 감독에게 다가와 "기생충은 놀라운 영화"라고 했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로 퍼진 한국식 풍자

소셜미디어는 북미에서 '기생충'의 인기를 키운 일등 공신이다. 작년 11월만 해도 '기생충'을 상영하는 극장은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합쳐 3곳뿐이었지만,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들이 "최고"라고 트위터에 쓰면서 관객이 폭발했다. 현재 상영관만 620여개. 5일 기준 북미 박스오피스 누적 매출은 2390만달러(약 279억원)로, 작년 북미서 개봉한 외국어영화 중 최고 기록이다.

북미 배급을 맡은 '네온(NEON)'의 역할도 컸다. 네온이 '제시카 징글'처럼 영화 속 장면을 편집해 비디오 클립이나 전화 벨소리로 만들어 퍼뜨린 것이 주효했다. 영국 가디언은 '기생충은 어떻게 널리 회자된 외국어 영화가 됐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영화가 아닌데도 국경을 넘어 보편적으로 소구되는 건 대단히 드문 일이다. 젊은 관객들은 '기생충'의 장면을 '밈(meme·인터넷상에서 재미난 말을 적어 그림이나 사진으로 만든 것)'으로 소비한다"고 썼다.

봉 감독의 '사이다' 발언도 연일 화제다. 그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아카데미상을 "미국 지역 영화제"라고 표현해 화제를 뿌렸고, 5일 골든글로브 수상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기생충'의 미국 성공은) 놀랍지만 필연적이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문제를 담아냈고, 미국은 그런 자본주의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했다.


☞봉하이브(BongHive)란

봉 감독을 추종하는 팬덤을 일컫는 말. 봉준호 영화를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벌집(hive)에서 윙윙거리는 벌 떼처럼 강렬한 지지를 표시한다는 뜻이다. 북미 관객들이 소셜미디어에서 '#bonghive'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관련 게시물을 올리면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조선일보 A2면
3일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