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고발인가? 위법수사 단서인가?...송병기의 '가명 조서' 논란

정준영 기자
입력 2019.12.12 18:41
주로 ‘내부신고자’ 보호 목적...적법성·객관성은 갖춰야
송병기, 현직 떠나 ‘송철호 캠프’ 때 경찰에 익명 진술
법조계 "가명 진술 허용 안 돼, 오히려 위법 수사 단서"
경찰 측 "前직장 내부신고 성격, 수사 협조 위해 불가피"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제보와 경찰 진술로 수사에 관여한 인물로 지목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가명(假名)조서'는 법적으로 문제없는 것일까. 경찰은 수사에 필요한 진술 확보를 위해 관련 법령과 판례 등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명 진술을 받은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경쟁자였던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최측근인 송 부시장의 지위와 진술 경위 등에 비춰 정상적인 증거로 보기 어렵고, 오히려 경찰 수사의 위법성을 의심케 하는 단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 송철호 측근인데 가명으로 진술…현직 공무원들과는 진술 달라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송 부시장은 김 전 시장 관련 사건을 수사한 울산경찰청에서 작년 1월과 3월 두 차례 가명으로 조사받았다. 송 부시장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제보한 내용이 청와대 첩보로 생산돼 경찰청을 거쳐 울산경찰에 이첩되고, 울산시청 압수 수색으로 이어진 시기에 걸쳐 있다. 그는 경찰의 수사보고서에는 실명으로 담겼지만, 조서에는 퇴직공무원 김모씨로 기재됐다고 한다.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5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자신의 청와대 첩보 제공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표명한 후 취재진을 피해 차에 타 있다./연합뉴스
당시 경찰 수사는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 박기성씨가 2017년 4~6월 주택사업 참여와 관련, 특정 민원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한 것이었다. 박씨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 따르면, 경찰은 신변을 감춘 공무원의 진술을 토대로 박씨와 담당 국장이 공모했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박씨는 민원인 소개에 관여했을 뿐 사업 진행 과정은 알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울산시에서 업무를 담당했던 현직 공무원들도 사업계획 승인 조건, 울산시 조례 등에 비춰 특혜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결국 박씨는 올해 3월 검찰에서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불기소 처분됐다.

울산경찰은 검찰 처분에 앞서 38차례에 걸친 관련자 조사 등으로 증거가 충분하다고 반박했는데, 여기에 송 부시장 진술도 포함된 셈이다. 검찰은 조사가 이뤄진 시기, 방법 등에 비춰 ‘가명 조서’가 위법한 하명(下命) 수사를 감추고 사건을 키우려던 경찰의 ‘꼼수’는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내부신고 보호’用...전언, 수사 당위 의심 땐 증거능력無
법률상 가명 조서가 허용되는 근거는 범죄신고자법이다. 살인, 강간, 마약, 조직폭력, 인신매매, 테러 같은 범죄를 수사하려면 사정을 잘 아는 내부신고가 긴요한 만큼, 신고자를 보복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다. 부패범죄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판례는 범죄신고자법처럼 명시적으로 진술자 인적사항을 생략할 수 있도록 한 경우가 아니라도 가명 조서를 허용하고 있다. "피고인과의 관계, 범죄의 종류, 진술자 보호의 필요성 등 여러 사정으로 볼 때 상당한 이유가 있고, 진술자가 법정에서 본인 진술이 맞다고 확인해주면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는 2012년 대법원 판례다.

경찰도 이 판례를 근거로 송 부시장의 가명 조서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가 수사상 필요한 경우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보다 더 넓게 가명조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느냐"면서 "피해자 보호나 참고인 등의 수사 협조를 받기 위한 차원에서 가명으로 진술케 한 것은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이 근거로 든 판례는 공사 이권 개입 과정에서 폭력조직을 동원해 주민들을 협박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50대 남성 재판에서 나온 것이다. 보복 우려에 신변을 감춘 진술도 증거로 쓸 수 있다는 게 대법원 취지였다.

일러스트=이철원
대법원은 피고인의 자백 진술이 아닌 참고인 등 관련자 진술의 증거 능력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의 말을 전하는 것에 불과한 전문(傳聞) 진술은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다.

특히 대법원은 "증거수집 과정이 수사의 정형적 형태를 벗어나 수사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허위가 개입될 여지가 있을 경우에는, 조서에 적힌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사실이 존재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조계 "가명 진술 허용 경우 아냐" vs. 경찰 "수사 협조 위해 불가피"
경찰 조사에 응할 때 송 부시장은 송철호 당시 더불어민주당 울산시장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송 시장 당선 후 작년 8월 경제부시장으로 복귀했지만, 2015년 울산시에서 퇴직해 2017년 상반기 시정(市政)에 대해서는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또 경찰 수사를 지휘했던 울산지검은 "6·13 지방선거에 임박해 개시된 경찰의 수사 내용이 지속적으로 언론에 공표되고, 김 전 시장 등 야당 측에서 선거개입 정치수사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수사권 남용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수사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송 부시장은 보복 우려는커녕 오히려 경찰 수사 도중 캠프가 승리해 영전을 한 것 아니냐"면서 "내부신고의 보호대상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그가 ‘전해 들었다’ 정도로 말한 걸 단서 삼아 경찰이 수사했다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검사장은 "뒤늦게 청와대 이첩 사건임이 드러나 수사가 확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사 지휘 초기부터 울산지검 안팎에선 경찰의 ‘의도’를 의심하는 말이 오갔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송 부시장을 내부신고자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을 수는 있다"면서도 "기본적으로 본인이 근무했던 직장에 대해 진술한 것이고 본인이 굳이 '자기 신분을 밝히고 싶지 않다, 조서로 남기지 못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수사 협조를 구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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