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통과하려면 2000원을 내라고?”…관악구 A아파트 ‘통행료 징수’ 논란

박소정 기자
입력 2019.12.12 11:08 수정 2019.12.12 15:53
관악구 A아파트, 내년 1월부터 외부 차량에 ‘통행료 2000원’ 받기로
입주민 차량 1200대인데...하루 통행은 2700대, 외부차만 1500대
주민 "아파트인지 도로 한복판인지 분간 안 돼" 불만
관악구청 "통행료 징수 제재 방안 없어법적 문제는 검토 중"

‘아파트 통과 차량에 대한 통행료를 2000원 징수합니다.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관리사무소’

지난 10일 찾은 서울 관악구 A아파트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이 아파트는 내년 1월부터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외부 차량에 대해 통행료로 2000원씩 받기로 하면서, 인근 주민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관할 구청은 아파트의 자체 통행료 징수를 제재할 근거가 없다면서도, 법적 문제는 없는지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단지 내에 ‘통과 차량에 대한 통행료를 2000원 징수합니다’라고 쓰인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소정 기자
◇입주민 1200대인데 하루 통행 차량은 2700대…"단지 내 교통·주차난 심각"
A아파트는 동쪽 정문으로 2차선 도로인 신림로가 있고, 서쪽 후문에는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출·퇴근 시간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약 400m의 2차선 도로는 주택가에서 신림로로 나오려는 차량과 반대로 도로변에서 주택가로 들어가려는 차들로 붐빈다. 주변 신림로는 2017년 서울시가 조사한 ‘차량 통행속도’에서 평균 시속 19㎞를 기록해 서울시에서 9번째로 막히는 도로였다. 10분이 아쉬운 출·퇴근 시간인 만큼, 지역 주민 사이에서 A아파트 길은 ‘지름길’로 통한다.

또 아파트 위쪽으로 나 있는 난곡터널을 이용하려는 운전자들이 몰리는 것도 문제다. 아파트 주위에서 기업들이 몰려있는 구로 서울 디지털국가산업단지를 가기 위해서는 난곡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 길을 관통할 경우, 차가 막히는 남부순환로나 신림로를 거치지 않고 후문을 통해 난곡터널 500여m 앞으로 가로질러 갈 수 있다. 관악산지구대를 기점으로 난곡터널까지 상습 정체 구간인 신림로를 우회하면 12분 넘게 돌아가야 하지만, A아파트를 통과하면 4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러한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현재 인근에 2020년 개통 예정인 ‘신림-봉천 터널’도 공사 중에 있다.

길목이 좋다 보니 A아파트 단지 내에는 마을버스도 다닌다. 정문에서 후문까지 단지 내 정류장만 4개나 된다. 아파트 내부길이 마치 공도(公道)처럼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외부 차량의 불법 주차도 문제다. 단지 내 도로가 주차된 차량 때문에 사실상 일방통행 길이 된다. 아파트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차량이 복잡할 때는 주차된 차량 때문에 양방향 통행이 어려워, 차들이 마주 보고 정체되기도 한다"며 "아파트인지, 도로 한복판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다"고 했다.

결국 올해 초 아파트에는 주차 차단기가 설치됐다. 외부 차량을 통제하고 등록된 입주민 차량을 우선으로 관리하기 위한 관리사무소의 조치였다. 주차 차단기를 설치하자 외부 차량 통행 문제는 ‘수치’로 확인됐다고 한다. 데이터 집계 결과, 등록된 입주민 차량은 1200대에 불과한데 하루 총 2700대 차량이 아파트를 통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근 주민들 "20년간 다닌 도로인데 이기적 조치" 갑론을박
결국 아파트 입주민대표가 발 벗고 나섰다. 지난 7월쯤 ‘아파트 통행료 징수’에 관한 안건을 대표회의에 올리고, 8월부터 11월까지 세 차례 심의를 거쳤다. 입주민 동의도 받았다. 총 1634세대 중 75%가 넘는 세대가 아파트 통행세 징수에 찬성했다고 한다. 내년 1월부터 아파트 정문과 후문에 차단기와 함께 설치된 요금정산소에서 통행료를 받는다. 걷힌 통행세는 관리비를 충당하는 방식으로 대부분 입주민에게 돌려줄 예정이라고 한다.

우선 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입주민 김모(51)씨는 "매연이나 소음 등 불편한 일이 한둘이 아닌데도 그동안 그러려니 체념하고만 살았다"면서 "2000원정도면 그리 값비싼 비용도 아니고, 외부인이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길을 사용하는 대가로 그 정도는 치러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러나 당장 큰 길가로 나갈 수 있는 통로는 아파트 단지 도로가 거의 유일한 인근 주택가 주민 사이에서는 반대 여론도 일었다. 일부 주민은 "20년 넘게 이용해 오던 길을 막고 통행료를 지불하라니 아파트 입주민들이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고 했다. A 아파트 주민 사이에서도 "아파트가 사유지이긴 해도 그냥 길일 뿐인데, 돈을 거두는 건 과한 것 같다"는 일부 목소리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구청 "법적으로 막을 근거 없어"…서울 성북·용인 등도 아파트 통행세 논란
관할 구청인 관악구청에도 관련 민원이 꾸준히 접수돼 왔다. 지난 10월부터 현재까지 아파트 징수 논란과 관련해 총 10여 건의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온라인 민원 상담 창구인 ‘관악구청장에게 바란다’ 홈페이지에도 지난 4일 관련 민원이 등장했다. 이에 A 아파트는 후문 인근 거주자들의 차량에 대해 등록 시 통행료를 면제하는 방식의 대책을 내놨다.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아파트 입구의 모습. 외부 차량을 통제하기 위한 차단기와 ‘요금정산소’라고 쓰인 부스가 마련돼 있다. /박소정 기자
관악구청은 아파트의 이런 결정에 대해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유재산인 아파트 출입구를 차단하는 행위는 입주민들이 안전한 주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인 만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 통행료 징수는 구청 허가나 신고 사항도 아니다. 구청 관계자는 "현재 아파트 측의 협조 공문을 받아 주택법이나 공동주택관리법 등 법적으로 문제 될 사안은 없는지를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아파트 통행료 징수 논란은 A아파트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2017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아파트에서 11개월간 외부 차량에 통행료 2000원을 받아 논란이 됐다. 당시 이 아파트는 구청과 별도 협의를 거치지 않는 등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행정명령에 따라 징수가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의 한 아파트도 단지 내 100여m 도로를 지나는 외부 차량을 대상으로 통행료 3000원을 받고 있다.

3일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