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내가 만난 김우중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19.12.10 17:54 수정 2019.12.10 18:01
아침 신문을 펼치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소식이 있었다. 외람되게도 밤새 깨어 있는 신문에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었다. 밤새 유명을 달리하는 큰 인물이 있을 때 신문기자들은 다른 차원에서 아연 긴장하게 된다. 경쟁 신문에 뒤지면 안 된다는 직업의식이다. 딴 소리를 해서 죄송하다. 그것도 잠시, 이내 김우중 회장 때문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 분을 가까이 대면한 적은 서너 번 된다. 한번은 폴란드 자동차 회사의 구내 식당에서였다. 대우자동차가 폴란드 자동차 회사랑 합병을 해서 대우가 유럽 자동차 업계에 본격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고 있을 무렵이었다. 김우중 회장은 당시 유럽에서 완전 스타였다.

폴란드 자동차 회사의 사원 식당인데, 학교 강당 두세 배는 될 만큼 넓었다. 그런데 식당이 전체적으로 텅 비어 있었고, 중앙에만 식탁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가로로 길게 펼쳐놓은 식탁. 식탁 길이는 30미터쯤 됐다. 식탁 폭은 채 70센티가 되지 않아 밥을 먹다 보면 앞사람과 이마가 맞닿을 지경이었다. 전체적으로 50명 정도가 앉아서 같이 밥을 먹었다. 나는 우연찮게 김우중 회장과 맞은편에 앉게 됐다. 김 회장은 대우의 미래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씀을 하는 분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그 분이 말하고, 나는 듣는 입장이었는데, 그 분이 나보다 밥을 빨리 먹었다. 신기했다. 양푼처럼 커다란 그릇에 밥과 반찬을 섞여 놓고 먹는 식사였다.

갑자기 김우중 회장이 벌떡 일어서더니 주방으로 달려갔다. 자기 밥그릇을 들고 갔다. 회장님이 손수 밥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뛰어가니까 길게 뻗은 식탁의 양쪽 끝부분에 앉아 있던 대우그룹 임원들이 엉거주춤 일어서는 듯이 하다가 그냥 앉았다. 그 분들은 늘 보던 풍경이려니 하는 것 같았다. 주방에 간 김우중 회장은 주방 아주머니에게 자기 밥그릇에 밥을 더 퍼달라고 했고, 식탁에 앉은 일행들을 위해 밥을 더 담은 커다란 함지박을 들고 돌아왔다. 이런 것은 일화 축에도 못들 것이다. 아무튼 내가 본 김우중 회장은 참 소탈했다. 소탈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별난 사람으로 보였다.

그 무렵, 그러니까 90년대 유럽에서 보는 대우그룹은 파이낸싱에 귀재였다. 돈을 끌어오는 솜씨가 대단했다. 지금도 ‘소시에테 제네랄’이라는 프랑스 굴지의 은행 간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대우는 정말 신기한 기업"이라고 했다. 인수 합병 등등에서 대우가 발휘하는 파이낸싱 실력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동시에 매우 위험한 기업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다 IMF 위기와 김대중 정권을 지나면서 대우 그룹은 해체됐다. ‘김우중’은 ‘김대중’을 믿었던 것일까. 아무리 힘들어도 김대중 정권이 대우그룹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어떻게든 기사회생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그만큼 김우중은 김대중 정권에 유형·무형의 투자를 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김대중 대통령은 대우를 살리려고 했으나, 그를 둘러싼 경제 관료들이 대통령의 뜻과 달리 대우를 죽였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프랑스 방송에 출연해서 김우중의 ‘탱크주의’에 대해 토론했던 기억도 난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대우그룹의 탱크주의에 열광하고 있었다. 대우 냉장고에서 시작된 탱크주의는 탱크처럼 튼튼하고 견고하고 고장 없는 제품이라는 목표를 내걸었고, 크게 성공했다. 저돌적이고, 물러나는 법이 없고, 과감하고, 끝을 보고 마는 기업가 정신, 탱크주의, 프랑스 언론은 자기네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탱크주의에 열광하면서 한국 기자를 초청해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보다 훨씬 오래 전 내가 초년병 기자였던 80년대 중반, 힐튼 호텔에서 내가 속한 부서와 김우중 회장이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대우전자 텔레비전을 기증하면서 그 분이 보였던 열정은 얼마 뒤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이 나왔다. 오늘 아침 신문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로 썼다. ‘세계’를 ‘세상’으로 잘못 썼다. 그러나 세계나 세상이나 그게 그것이다. 세계보다 세상이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무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당시 초단기 밀리언셀러가 됐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다. 김영사라는 출판사가 크게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출판사 사람들도 김우중에게 열광했다. 만 서른 살인 1967년에 대우를 설립한 사람, 창업 후 수출만으로 회사를 초고속 성장시켜 ‘대우 신화’라는 신조어를 나오게 한 사람, 샐러리맨들의 우상, 그러나 문화부 기자 출신인 내가 봤을 때 그는 1978년 대우재단을 만들고, ‘대우학술총서’와 ‘대우고전총서’를 펴내게 한 인물이다. 그 책이 지금 700여권에 이른다. 오늘 아침 김우중 회장과 이런저런 인연을 갖고 있는 논설위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결론은 ‘풍운아’ 그리고 ‘인생무상’이었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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