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513조를… 여야 3당, 기록도 안남긴채 졸속 심사

김경필 기자
입력 2019.12.10 03:00

[與野 일단 휴전] 내년 예산안 오늘 처리되나

與 "4+1 논의안 이어받아 심사를", 한국·바른미래 "인정 못해" 충돌
한국당 들어갔어도 깜깜이 심사… 與예결위원도 "세부내용 못들어"
한국당, 13조이상 삭감 별렀지만 지역구 쪽지예산 밀어넣기 바빠

9일 오후 국회 본관 6층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소회의실에선 예결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과 자유한국당 이종배 의원,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 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 등 4명이 마주 앉았다. 지난달 30일 중단됐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증액·감액 심사를 재개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내일(10일) 정기국회 회기 내에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등의 말을 한마디씩 한 뒤 기자들을 모두 내보냈다. 국회 회의록을 작성하기 위한 속기사도 없었다. 법적 근거가 없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깜깜이 예산 심사인 '소소위(小小委)'가 돌아온 것이다.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는 11월 말부터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여야 3당은 지난달 말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12월 2일)이 다가오자 예결위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에서 진행하던 예산 증액·감액 심사를 예결위 3당 간사들로 이뤄진 '간사 협의체'로 넘겼다. 이 간사 협의체는 초법적 밀실 심사 기구로 비판받아 온 '소소위'를 이름만 바꿔 단 것이다. 이후 민주당은 한국당이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자 범여 군소 정당들과 '4+1(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를 구성, 한국당을 빼놓은 채 예산 심사를 했다. 법적 근거도 없는 협의체에서 밀실·짬짜미 심사를 계속한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당이 예산안 협상에 복귀하자 예산안을 간사 협의체로 다시 넘겼다. 513조원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막판 심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실에서 초법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잘해봅시다” -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가운데), 한국당 이종배(왼쪽), 바른미래당 지상욱(오른쪽) 의원이 9일 국회에서 간사협의 회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속기사도 없이 비공개로 지난달 30일 중단했던 513조 예산에 대한 ‘깜깜이’ 심사를 재개했다. /뉴시스

결국 내년도 예산안은 '소소위 밀실 심사→법적 근거도 없는 '4+1 협의체'의 짬짜미 심사→한국당이 새로 들어온 3당 교섭단체의 하루짜리 심사'라는 3단계 졸속·밀실 심사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범여권 정당들이 각자 자기들 이해관계에 맞는 예산을 끼워넣고, 막판에 한국당이 자기들 사업 예산을 추가로 집어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4+1 협의체'에 들어갔던 평화당 측 박주현 의원은 9일 당 회의에서 "예산소위에 전북 의원이 단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4+1 협의체에 참여해 (예산을) 일부분 챙겼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내년도 예산안의 총규모와 주요 사업에 들어가는 금액 등 예산안의 윤곽조차 본회의 전날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여야 의원들이 각기 지역구 예산을 얼마나 끼워넣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4+1 협의체에 참가한 여야 5당은 물론 뒤늦게 예산안 심사에 복귀한 한국당까지도 예산안의 구체적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예산안의 세부 사항은 여당인 민주당 예결위원들에게조차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당은 이날 예산 협의를 시작하자마자 충돌했다. 민주당은 "4+1 협의체에서 전날까지 논의한 내용을 그대로 넘겨받아 심사를 마무리하자"고 했다. 하지만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그것은 인정할 수 없고 지난달 말 소소위에서 심사하다 만 부분부터 다시 심사를 시작하자"고 했다. 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그러면 10일 오전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무리할 수 없다"고 맞섰다. 여야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으면 예산안 처리가 11일 이후 임시국회로 미뤄지거나 여야 간 합의 자체가 깨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올해 예산(469조9000억원)보다 수십조원 늘어난 내년도 '수퍼 예산안'은 거의 삭감되지 않은 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4+1 협의체는 513조5000억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 원안을 1조2000억원가량 순감(純減)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은 정부가 '재정 중독'이라며 13조5000억원 이상 삭감하겠다고 공언했지만, 4+1 협의체에서 결정된 순삭감에 더해 대폭 삭감을 이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조선일보 A4면
100주년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