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메르만도 키신도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김경은 기자
입력 2019.12.10 03:00

세계 名피아니스트·음반사들이 솜씨 극찬한 한국 '조율 명장 1호' 이종열
"무대 뒤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 평생 '피아노 아저씨'로 남고 싶다"

"완벽한 조율로 최상의 피아노 상태를 만들어준 미스터 리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03년 6월 예술의전당에서 폴란드의 명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첫 내한 공연을 할 때다. 피아노 몸체와 조율용 건반을 직접 공수해 온 그가 연주를 끝내자마자 조율사 이종열(81)씨를 찾았다. "심장이 내려앉았죠. 뭐가 불편했나 싶어서." 지메르만은 그러나 청중 2400명 앞에서 감격한 얼굴로 이씨 손을 잡으며 "생큐 소 머치(Thank you so much)"라고 했다. 이씨는 "내 62년 조율 경력에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이라고 했다.

지난 2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종열씨가 피아노 건반과 바로 연결된 액션(action·손가락 힘을 줄에 전하는 장치)을 앞으로 빼 음색을 바꾸고 있다. 그는 “자동차 정비공도 수리하고 나면 시운전하듯 나도 조율을 끝내면 먼저 연주를 해본다”며 “조율은 작은 것에 충실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종열씨가 피아노 건반과 바로 연결된 액션(action·손가락 힘을 줄에 전하는 장치)을 앞으로 빼 음색을 바꾸고 있다. 그는 “자동차 정비공도 수리하고 나면 시운전하듯 나도 조율을 끝내면 먼저 연주를 해본다”며 “조율은 작은 것에 충실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2007년 '조율 명장 제1호'로 뽑힌 이씨는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롯데콘서트홀 등 국내 내로라하는 공연장 피아노만 4만번 넘게 매만진 우리나라 최정상급 조율사다. 예브게니 키신, 안드라스 시프 등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를 두루 만났고 솜씨를 인정받았다. 지난 2일 "오전 7시에 출근해 벌써 두 대를 만졌다"고 말한 그는 "공연장 조명이 꺼져 있을 때 왔다가 켜지기 직전 떠나는 관객 없는 삶. 그러나 무대 뒤에선 내가 주인공"이라며 활짝 웃었다.

최근 '조율의 시간'이란 책을 펴낸 그는, 전북 완주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 탁발승이 "너는 나중에 소리 나는 직업을 갖겠구나" 했지만 조율사가 될 줄은 몰랐다. 고교 3학년 가을 동네 예배당의 풍금을 치다가 불협화음을 고쳐보려고 뚜껑을 연 것이 인연이 됐다. 1963년 상경해 수도피아노 성수동 공장을 거쳐 삼익피아노에서 조율사로 일했다. 1971년 독립해 당시 쟁쟁한 연주자들을 죄다 고객으로 삼으면서 이름을 날렸다.

조율이 잡히면 그는 연주곡목을 미리 살펴보고 연주자의 기법과 음색을 따져본다. 무대 뒤 9㎡ 남짓한 '명장의 공간'이 그의 쉼터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 연주자도 취향이 달라요. 열이면 아홉이 만족할 소리를 만들어야 하죠." 모차르트는 부드럽고 따뜻하게, 리스트는 고음이 화려하게 돋보이도록 한다.

공구를 쥐고 조율하는 이씨의 굳은살 박인 손. /이태경 기자

'건반의 사색가' 러셀 셔먼은 건반마다 소리의 질을 분석해 종이에 적어 숙제로 내줬다. 미하일 플레트뇨프는 10㎜가 국제 표준인 건반 깊이를 8㎜로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뒤쪽 건반 밑에 1㎜ 두께 헝겊을 깔고 스프링을 강하게 조여 '합격점'을 받았다. 10년 전 오른쪽 볼과 턱이 뻣뻣해지더니, 양치질을 하는데 물이 샜다. 구안와사였다. 그 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읊조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눈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피아노만 보고 살았다. '제대로 하고 있나' 궁금해 이탈리아의 파치올리 피아노 공장, 오스트리아 뵈젠도르프 공장에 가서 배웠다. "행여 '한국 조율사는 형편없더라' 소문날까 봐 한시도 안 쉬었다"고 했다.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은 "원더풀 피아노 테크니션", 세계적 공연 기획자 마이클 파인은 "사랑과 정성이 듬뿍 들어간 피아노 소리"라고 극찬했다.

연주는 '피아노 3분의 1, 조율사 3분의 1, 연주자 3분의 1' 협동으로 이뤄진다. 박수는 연주자만 받는다. "괜찮아요. 나한텐 천직이니까. 집안 어른들이 원한 농사를 안 짓고 삐뚜로 나간 게 오늘날 내 길을 만들었어요. 한 길만 계속 팠더니 물 펑펑 나오는 우물이 됐고, 이젠 깊이를 모르는 바다가 됐죠."

피아노 앞에 설 때는 집에서도 양복을 갖춰 입는다. 잔잔한 모차르트와 섬세한 쇼팽을 좋아하지만,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도 즐긴다. 평생 조율해 모은 재산은 자녀들한테 다 줬고, 지금 가진 건 "산 지 1년 된 쏘나타 한 대와 기술, 큰 병 앓으면 쓰려고 통장에 넣어둔 의료비"밖에 없다. "조율은 예술이니까. 여든 넘어서도 사람들이 불러주니 '피아노 고쳐주는 아저씨' 그 타이틀 하나면 바랄 게 없습니다."


조선일보 A25면
3일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