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궁금] ‘U2’ 무대에 왜 김정숙 여사 등장했나…“한국 기획사 아닌 U2 측 직접 선정”

박소정 기자
입력 2019.12.09 18:28
43년 만 첫 내한 공연 U2 무대, 韓 여성들 등장
김정숙 여사 나오자 "정치쇼냐" ‘인물 선정 기준’ 논란도
"보컬 보노, ‘여성에 대한 헌정 무대 꾸미자’ 제안"
"U2가 비영리단체와 함께 직접 선정…한국과는 무관"
美투어선 미셸 오바마·힐러리 클린턴 등장…日선 오노 요코 나와

‘영부인 김정숙 여사, 설리(가수), 서지현(검사), 이수정(교수), 나혜석(화가), 해녀…’

지난 8일 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아일랜드 출신 세계적 록밴드 ‘유투(U2)’가 결성 43년 만에 첫 내한(來韓)공연을 가졌다. U2의 공연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는 한국 여성 10명의 얼굴과 그들의 한글 이름이 펼쳐졌다. 이를 배경으로 U2는 1991년 곡 ‘울트라 바이올렛(Ultra violet)’을 열창했다. 낯선 광경에 일부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지난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된 U2 내한 공연의 장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이수정 경기대 교수, 가수 설리의 모습이 스크린에 띄워져 있다. /유튜브 캡처
울트라 바이올렛은 U2의 보컬 보노(Bono)가 여성을 주제로 쓴 여러 곡 중 하나다. ‘라이트 마이 웨이(Light My Way·나의 길을 밝혀줘)’라는 부제가 붙은 이 노래는 여성 인권에 대한 의미로도 해석된다. 보노가 이날 "세계 여성들이 단결해 히스토리(역사)를 새로써 ‘허스토리’로 만드는 날이 바로 뷰티풀 데이"라고 외치자 스크린에 떠 있던 ‘히스토리’(History)라는 문구가 ‘허스토리(Herstory)’로 변했다.

이후 스크린에 등장한 여성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해녀 △신여성 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 민간 여성 비행사 박경원 △한국의 ‘미투 운동’을 일으킨 서지현 검사 △국내 최연소 축구 국제심판 출신 홍은아 이화여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 △대한민국 1호 여성 변호사 이태영 박사 △김정숙 여사 △얼마 전 생을 마감한 그룹 ‘f(x)’ 출신 설리 등 총 10인이다. 노래 끝 무렵엔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는 한글 문구가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모습이 지난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록밴드 U2의 공연에 등장했다. /청와대 제공
감동을 선사한 ‘깜짝 이벤트’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일부 팬 사이에서는 인물 선정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정숙 여사가 등장한 것을 두고) 정권의 쇼에 U2가 이용당한 거 같다" "논란의 여지 없는 역사적 위인들이라면 몰라도 김정숙, 서지현, 이수정 등은 뜬금없지 않으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 "한국 측에서 인물을 마음대로 선정해 U2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등 음모론도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록밴드 U2의 서울 공연 관람에 앞서 보컬이자 사회운동가인 보노와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그 나라의 여성들’ 콘셉트의 배경 영상…"U2 측이 직접 선정·제작"
이번 U2의 내한 공연을 기획한 한국 측 공연기획사는 "모든 인물은 U2 측이 직접 선정했고 한국 측은 하나도 관여하지 않았다"며 각종 의혹을 일축했다. 공연기획사 ‘라이브네이션코리아’ 관계자는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에서 "인물을 선정하거나 영상을 만드는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며, U2의 전담 아티스트 투어팀에서 모두 결정했다"며 "우리는 아티스트가 준비한 콘텐츠를 한국에서 잘 실현될 수 있도록 협업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측 공연기획사가 아니라 U2 측이 직접 인물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아티스트 투어팀은 영상·음향·조명 등 가수의 공연을 기획하고 전담하는 U2 측 스태프로, 이번 내한에 동원된 U2 스태프는 총 150명 규모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궁금해서 현장에서 아티스트 투어 매니저(총감독 격)에게 ‘어떻게 인물을 선정했느냐’고 물었다"면서 "U2의 공식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팬들의 의견을 받았다고 대답하더라"고 했다.

실제 인물 선정은 비밀리에 추진됐다. 화면에 등장한 이수정 교수는 "콘서트 하루 전 전화가 와서 U2 콘서트에서 얼굴 화면을 띄운다고 들었다"며 "선정 배경은 모르겠지만, 영광스럽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 10월 영국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이번 공연은 1987년 발매된 정규 5집 ‘조슈아 트리(The Joshua Tree)’의 발매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7년부터 시작된 월드 투어의 일환이다. ‘허스토리(Her Story·그녀의 이야기)’로 제목 붙인 해당 영상은 U2가 조슈아 트리 투어로 방문하는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 나라의 주요 여성 인물들을 선정해, 울트라 바이올렛이란 곡의 배경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된 U2 내한공연 모습.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U2의 공식 홈페이지 ‘유투닷컴(U2.com)’은 U2의 오랜 쇼디렉터 윌리 윌리엄스(Willie Williams)의 인터뷰를 빌려 이 영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윌리엄스는 한 인터뷰에서 "보노가 여성에 대한 헌정을 주제로 무대를 꾸리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다양한 인류 역사에서 여성의 정신이 돋보였다는 점에 주목했다"면서 "지금도 우리는 ‘여성 리더십’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를 조명하는 법은 과거의 위대한 여성 리더들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영상은 윌리엄스와 영국 비영리단체 ‘Herstory(허스토리)’가 함께 개발했다고 한다. 여성 인권운동가인 앨리스 로(Alice Wroe)는 여성의 역사를 발굴하고 알리는 ‘허스토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단체의 웹사이트를 통해 아직 조명되지 않은 역사 속 여성 인물을 대중에게 추천도 받고 있다. 이들은 U2의 울트라 바이올렛 화면에 사용될 인물에 대해 조언을 주는 역할뿐 아니라, 영국 전역 문화·교육 기관에서 관련 강연이나 워크숍을 열고 있다.

미셸 오바마· 오노요코…다른 나라엔 누가 등장했나
U2의 공연이 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만큼 스크린에도 지금껏 수많은 여성이 등장했다. 미국에선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전 영부인이자 변호사인 미셸 오바마,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 셰릴 샌드버그, 전 국무부장관인 힐러리 클린턴 등이 얼굴과 이름을 올렸다. 2017년 기준 유명 문화 아이콘부터 정치인까지 모두 60여 명의 여성이 이 스크린에 출연했다고 한다.

역대 U2의 ‘조슈아 트리 투어’ 영상에 등장한 세계 각국의 여성들. /‘U2Songs.com’ 홈페이지 캡처
U2는 한국 투어 직전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공연장 스크린에는 조각가 겸 설치미술가인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여성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인 오가타 사다코(緒方貞子), 패션 브랜드 ‘꼼데가르송’의 설립자 가와쿠보 레이(川久保玲), 비틀즈 멤버 존 레넌의 부인이자 일본의 전위예술가인 오노 요코(オノヨーコ) 등이 등장했다.

U2는 197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결성된 4인조 록밴드 그룹으로, 노래를 통해 평화·인권·반전(反戰) 등의 메시지를 대중에 강조해왔다. 이 그룹 보컬인 보노는 반전·환경운동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U2는 올해 뉴질랜드·호주를 시작으로 싱가포르·일본 등을 거쳐 지난 8일 방한했다. 김정숙 여사가 U2의 공연을 직접 관람하면서 화제가 됐다. 보노는 9일엔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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