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영철 "우린 잃을 게 없는 사람들…트럼프를 망녕 든 늙다리로 또 부를 수 있다"

박정엽 기자
입력 2019.12.09 17:42 수정 2019.12.09 18:21
北, 트럼프 "김정은 적대행위 하면 모든 것 잃을 것" 발언에 김영철 내세워 반발
"트럼프, 참을성 잃고 경솔하고 잘망스러운 늙은이"
"김정은, 美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그 어떤 자극적 표현도 하지 않아"
"놀라라고 하는 일인데 놀라지 않는다면 매우 안타까울 것"...추가 도발 암시
북 수뇌부의 잇단 성명 공세, 초조함 반영 분석도

북한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연합뉴스
북한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9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적대적인 행동을 하면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 데 대해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김은 "이런 식이면 트럼프에 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인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다시 트럼프를 '망녕든 늙다리'로 불러야 할 시기가 올 수도 있다"고도 했다.

김영철은 이날 아태평화위 위원장 명의로 낸 담화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지만 우리 국무위원장은 미 대통령을 향해 아직까지 그 어떤 자극적 표현도 하지 않았다. 물론 자제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은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간다면 나는 트럼프에 대한 우리 국무위원장의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트럼프가 만약 우리더러 보고 들으라고 한 언행이라면 트럼프식 허세와 위세가 우리 사람들에게는 좀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는 것과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다 웃지 않고는 듣지 못할 소리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선희 이어 김영철, 트럼프 공격 가세

김의 이런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트위터에 "김정은이 적대적인 행동을 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사실상 모든 것"이라고 적은 데 대한 반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은 싱가포르에서 강력한 비핵화 협정에 공식 서명했다"며 "그는 미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를 끝내는 걸 원하지 않으며,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에 개입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라고 썼다. 이어 트럼프는 "김정은의 리더십 아래 북한은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약속대로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중국, 러시아, 일본, 전 세계가 이 이슈로 하나가 됐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영철은 "미 대통령의 부적절하고도 위험성 높은 발언과 표현들은 지난 5일 우리의 경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며 "참으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어 "어쩔 수 없이 이럴 때 보면 참을성을 잃은 늙은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게하는 대목이며, 트럼프가 매우 초조해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듯 경솔하고 잘망스러운(잘고 얄미운) 늙은이여서 또다시 '망녕 든 늙다리(mentally deranged dotard)'로 부르지 않으면 안될 시기가 다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늙다리'는 지난 2017년 9월 김정은이 첫 본인 명의 성명에서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트럼프 대통령)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면서 처음 쓴 표현이다. 김정은의 대미 외교 측근이자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총책인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도 지난 5일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지칭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공화국의 최고존엄에 대해 정중성을 잃고 감히 비유법을 망탕 썼다"고 했다. 최선희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로켓맨' 발언은) 2년 전 대양 건너 설전이 오가던 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라며 '계산된 도발임이 확인될 경우'를 전제로 "늙다리의 망령이 다시 시작된 것으로 진단해야 할 것"이라며 '대미 맞대응 폭언'을 예고했다.

김영철도 이날 담화에서 "트럼프의 이상한 목소리를 듣고 우리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고려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걱정 또한 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는 조선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또 "트럼프가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면 자기는 놀랄 것이라고 했는데 물론 놀랄 것"이라면서도 "놀라라고 하는 일인데 놀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안타까울 것"이라고 했다. 추가 도발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철은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며 "격돌의 초침을 멈춰세울 의지와 지혜가 있다면 그를 위한 진지한 고민과 계산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지금처럼 웃기는 위세성, 협박성 표현들을 골라보는 것보다는 더 현명한 처사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시간끌기는 명처방이 아니다"라면서 "미국이 용기가 없고 지혜가 없다면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미국의 안전 위협이 계속해 커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백악관서 트럼프 만났던 김영철 내세워 맞대응 수위 높이려는 듯

김영철은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미 협상 라인에서 물러났다가 지난 10월 "정상간 친분을 내세워 연말을 넘기려 한다면 망상"이라며 트럼프를 향한 성명 공세에 다시 등장했다. 한직에 밀려났던 김영철의 재등장을 두고 지난해 미·북 실무 협상을 주도하고 미 백악관까지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던 그를 내세워 양측 정상 간 톱다운(top-down) 방식의 해법 모색 필요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왔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후에도 미국이 자신들의 대북제재 해제 등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잇따라 미사일·방사포 도발을 한 데 이어 지난 7일에는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ICBM용 엔진 시험으로 추정되는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적대행위를 계속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자, 김영철이 맞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가 김정은까지 언급하며 도발을 멈추라고 경고한 상황에서 일종의 심리전으로 맞대응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다만 김영철의 이날 담화에서는 역으로 북한 수뇌부들의 초조함이 읽힌다는 분석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이렇게 성명을 자주 낸 적이 없다"면서 최근 북한 수뇌부의 잇단 성명 발표가 초조함의 반영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연말을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패착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라며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잘못을 고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고난의 행군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잃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김정은은 잃을 것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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