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폭풍 질주… 세계는 호나우두·마라도나를 떠올렸다

이태동 기자
입력 2019.12.09 03:00

- 토트넘, 홈경기 번리에 5:0 승리
가디언 "기술·의지 결합된 장관"
美CBS "1986년 마라도나 골 같아"
시즌 최고의 골 후보로 급부상

모리뉴 감독 "호나우두 골 떠올라… 아들이 전부터 손나우두로 불러"

바람 같았다. 축구장 한쪽 끝에서 반대편까지 뛰어가는 동안 아무도 손흥민을 제지하지 못했다. 쏜살같이, 또 부드럽게 수비수 틈새를 빠져나간 그는 슛하는 척 골키퍼 타이밍까지 빼앗으며 골망을 흔들었다. 그러곤 세리머니를 하러 바람처럼 사라졌다. 처음 공을 잡은 뒤 달린 거리는 약 75m, 주파 시간은 불과 11초였다. 눈 깜짝할 새 터진 '수퍼 골'에 대해 영국 가디언지는 '기술과 기교, 의지가 결합된 장관(壯觀)'이라고 표현했다.

토트넘 손흥민이 8일 2019~20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홈경기 번리전에서 커리어에 남을 초장거리 드리블 골을 터뜨렸다. 팀이 2―0으로 앞선 전반 32분이었다. 번리가 프리킥한 공이 토트넘 페널티박스 바로 앞에 있던 손흥민에게 굴러갔다. 그는 곧바로 직선으로 치고 달렸다. 번리 선수 둘이 붙었지만 따라잡지 못했다. 하프라인을 넘어선 손흥민은 그 속도 그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한 명을 제쳤고, 바로 왼쪽으로 꺾어 다른 수비수의 태클도 피했다. 어느새 골문 앞이었다. 손흥민은 정면의 골키퍼가 넘어지는 걸 보며 오른쪽으로 차 넣어 골망을 흔들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5호, 모든 대회 합쳐 10호 골이었다. 손흥민은 4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기록을 세웠다. 그는 앞서 전반 4분 해리 케인(잉글랜드)의 선제골을 도우면서 어시스트도 하나 추가했다. 올 시즌 총 10골 9도움을 기록 중이다.

케인이 2골을 넣었고, 루카스 모라(브라질)가 오랜만에 득점하는 등 토트넘이 5대0으로 대승했다. 지난 11월 조제 모리뉴(포르투갈) 감독이 부임한 이후 최다 점수 차 승리다. 한때 14위까지 떨어졌던 순위는 6위(승점 23)로 올랐다.

손흥민(가운데)은 번리전 시작 전 국가대표 선배 박지성(왼쪽)을 만나 최근 수상한 AFC(아시아축구연맹) '올해의 국제선수상' 트로피를 전달받았다. 손흥민은 "지성이 형에게 상을 받아 영광스럽다. 나 혼자 잘해서 받은 게 아니라 모두의 도움이 있어 가능한 상이었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AFC 기술이사인 앤디 록스버그 전 스코틀랜드 감독. /AFP 연합뉴스
얘깃거리가 많지만 화제는 단연 손흥민이었다. 해설가로 활동 중인 잉글랜드 전 국가대표 게리 리네커는 '위대한 골이다. 올 시즌 최고 골이라고 생각한다'고 트위터에 썼고, BBC방송은 "손흥민이 볼 터치 12번으로 번리를 조각냈다. '올 시즌의 골'에도 확실히 입후보했다"고 했다. 영국 타임스도 "눈길을 확 사로잡은 아름다운 골"이라고 했다. 손흥민은 'FIFA 푸스카스상'의 내년도 후보로 급부상했다. 푸스카스상은 한 해 동안 가장 멋진 골을 넣은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수퍼 골 덕에 전설들과도 비견되고 있다. 모리뉴 감독은 경기 후 "내 아들이 전부터 손흥민을 손나우두(Sonaldo·손+호나우두)라고 불렀는데 오늘 손흥민은 정말 손나우두 같았다. 그의 골을 보고 호나우두(Ronaldo)가 떠올랐다"고 했다. 브라질의 전설적 공격수 호나우두는 1996년 FC바르셀로나 시절 콤포스텔라를 상대로 하프라인부터 달려 득점한 적이 있다. 당시 모리뉴는 바르셀로나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그 골을 눈앞에서 봤다. 미국 CBS스포츠는 "아르헨티나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넣은 골과 비슷하다"고 했다. 당시 마라도나가 수비수 8명을 제치고 넣은 골 장면은 아직까지도 '역대 최고' 소리를 듣는다.

11초만에, 7명 따돌리며, 75m 드리블… 손흥민 '수퍼 골'에 세계가 놀랐다이미지 크게보기
[11초만에, 7명 따돌리며, 75m 드리블… 손흥민 '수퍼 골'에 세계가 놀랐다] BBC "올 시즌 최고의 골" - 아무도 손흥민을 막지 못했다. 토트넘 진영에서 시작해 약 75m를 질주한 뒤 손흥민이 골을 넣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1초. 이 사이 그를 막으려고 상대 선수 7명이 줄줄이 달려들었지만 손흥민이 그들보다 빨랐다. 8일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번리전 전반 32분 손흥민이 골키퍼 타이밍을 빼앗은 뒤 침착하게 득점하는 장면이다. 경기 후 조제 모리뉴 토트넘 감독은 "브라질 레전드 호나우두 같았다"며 손흥민을 손나우두(Sonaldo)라 불렀고, 영국 가디언지는 손흥민의 골을 '기술과 기교, 의지가 결합된 장관(壯觀)'이라고 표현했다. BBC방송은 "올 시즌 최고의 골 후보로 손색이 없다"고 했다. 토트넘은 1골 1도움을 올린 손흥민의 맹활약에 힘입어 번리를 5대0으로 대파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손흥민은 "내 인생 최고의 골이다. 처음부터 돌파해 골을 넣을 생각은 안 했다. 타이밍과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은 골을 넣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내 임무"라며 "지금에 만족하지 않겠다"고 했다. '수퍼 골'에 대해서는 "저한텐 굴절돼 들어간 골을 포함해 모든 골이 특별하고, 오늘도 그렇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28면
100주년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