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정권을 잡았다고 마음대로 '탈원전'… 서러워 울었고 너무 분했다"

입력 2019.12.09 03:13

['한국형 원전, 후쿠시마는 없다' 출간… 한국형 원전 개발책임자 이병령 박사]
"한국형 원전, 원천적으로 격납용기 뚫는 수소 폭발 못 일어나
'가압수형' 美스리마일 원전사고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결과는 사망자·부상자 0명, 방사선 피해 全無, 癌 증가율 0%"

'한국형 원전'을 개발하고 상업화했던 이병령(72) 박사가 '한국형 원전, 후쿠시마는 없다'를 출간했다. 왜 책을 썼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없는 능력으로 죽을 둥 살 둥 '한국형 원전'을 만들어놓았는데 하나도 안 도와준 사람들이 정권 잡았다고 마음대로 한다. 서러움에 목 놓아 울었고 너무 분했다…."

대통령에게 일독 권하고 싶은 책

나는 이 책을 읽고는 '지금에야 이런 책이 나왔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2011년)와 재난 영화 '판도라'에 영향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꼭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이병령 박사는 "문 대통령의 탈원전은 국정철학이 아니라 똥고집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일본 후쿠시마에 한국형 원전이 있었으면 수소 폭발로 격납 용기가 뚫리는 방사선 누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책의 요지다. 후쿠시마 원전은 핵연료에 직접 데워진 물로 수증기를 만들어 발전시키는 비등수(沸騰水)형이고, 한국형 원전은 열 교환기를 거쳐 다른 깨끗한 물로 수증기를 만드는 가압수(加壓水)형이다. 이런 한국형에서는 원천적으로 수소 폭발이 못 일어난다. 연구 이론으로 이미 입증됐다는 것이다.

국민 안전 위한 탈원전은 궤변

―사람들은 원전에서 '폭발과 방사선 유출'이라는 대형 재난 이미지를 떠올린다.

"고리 1호기 원전을 가동한 1978년부터 지금까지 원전에 의한 사망자가 한 명이라도 나왔으면 난리 났을 것이다. 같은 기간 자동차 사고 사망자는 30만여 명이었다. 원전 비율이 줄고 석탄 소비가 늘자 2017년 한 해 석탄을 캐거나 채석 작업 중에 죽은 사람은 417명이었다. 석탄에 의한 환경 파괴를 제외하고 순전히 사고사로 그렇다. 국민 안전을 위해 탈원전 한다는 것은 정말 궤변이다."

―한국형 원전의 노형(爐型)은 후쿠시마 원전과 완전히 달라 폭발 자체가 일어날 수 없다고 했나?

"수소 폭발은 후쿠시마 원전 같은 '비등수형'에서 일어난다. 처음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도입한 고리 1호기 원전은 '가압수형'이었고, 그 뒤로 들여온 원전도 '비등수형'은 없었다. 우리가 기술 자립으로 개발한 한국형 원전도 '가압수형'이었다. 그때는 정확한 데이터 없이 한 선택인데 결과적으로 옳았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가 '가압수형'의 안전성에 관한 증거가 됐다."

―이는 사상 최초의 원전 사고였다. 전 세계에 원전 공포심을 심어줬는데, 이 사고가 안전성의 증거가 됐다는 게 무슨 뜻인가?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수증기를 빼내 압력을 줄여주는 감압 밸브의 고장에서 비롯됐다. 그 뒤 억지로 하려고 해도 잘 안 됐을 실수와 오작동이 나쁜 의미로 '기적'처럼 8번 연속 잇따랐다. 사상 첫 원전 사고여서 관련자들은 우왕좌왕했다. 미국원자력규제위원장조차 검증 안 된 브리핑으로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결과는 사망자와 부상자 0명이었다. 다른 경제적 피해는 컸지만, 방사선 피해는 전무했다. 그 뒤 10년간 시행한 조사 결과 암(癌) 등 성인병 증가율도 0%였다."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방사선 누출·오염이 전혀 없었다는 건가?

"예측과 달리 전혀 없었다. 방사선 방출로 사람이 죽고 환경이 파괴되는데 그런 상황이 안 벌어진 것이다. 유출된 방사선은 '최후의 방어막'이라는 돔 모양의 격납 용기에 모두 가둬졌다. 내부 폭발이 없었다. 요행이거나 관리를 잘해 그런 게 아니었다."

―스리마일 원전이 '가압수형'이어서 그랬다는 뜻인가?

"바로 그 점이다. '가압수형'에서는 이상이 생겨도 수소를 연소시킬 만큼 산소가 발생하지 않는다. 격납 용기를 터뜨릴 만한 내부 폭발이 일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어떻게 입증된 건가?

"스리마일 원전 사고 4년 뒤 '폭발이 왜 없었는가'에 대한 연구 논문이 미국에서 발표됐다. 가압수형은 핵분열로 물이 끓는 동안 산소가 나오지만 그 양이 수소의 0.7%다. 수소에 불붙일 수 없는 양이다. 물이 안 끓을 때는 아예 산소가 안 나온다. 이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처럼 격납 용기가 뚫리는 폭발 사고는 근본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그런 연구 이론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불신을 100% 해소해줄 수 있겠나?

"현실이 입증해준다. 1957년부터 지금까지 가압수형이 300여 기 가동돼왔지만 실제 사고는 스리마일 원전 단 한 번뿐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얘기를 해보자. 9.0 규모 지진으로 송전선이 모두 끊긴 데다 뒤이어 15m 높이 쓰나미가 몰려오면서 일어났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은 지진도 쓰나미도 아니다. 원전 사고란 방사선이 밖으로 누출되는 것이다. 방사선을 내뿜는 핵연료는 5중 방어벽 안에 있다. 과열된 핵연료의 내부 폭발로 방어벽이 뚫린 것이지, 지진이나 쓰나미가 이 방어벽을 뚫은 게 아니다."

―그런 폭발 상황을 만든 데는 쓰나미가 결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당시 쓰나미는 10m 높이의 방호벽을 넘어서 원전을 강타했다. 원전에서는 이런 비상 상황에 대비해 비상 발전기를 둔다. 후쿠시마는 비상 발전기 6대를 지하에 설치했다. 방수도 하지 않았다. 비상 발전기를 지상 높은 곳에 설치했거나 간단한 방수 처리를 했어도 비극은 안 일어났다. 지하에 놓아뒀던 비상 배터리마저 침수됐다. 이런 최악 상황까지 대비해 이동식 발전기를 실은 차량을 원전 바깥에 대기해놓는다. 그런데 그날 따라 차량 기사가 멀리 가 있었고 지진과 쓰나미로 길이 막혔다."

―대형 사고라는 게 원래 이렇게 일어난다. 터지려고 하면 연쇄적으로 꼬이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방사선을 가둬두는 최후의 방어막인 격납 용기가 있었다. 강화 콘크리트 재질로 벽 두께만 1.2m다. 그 속에 6㎜짜리 강철을 박아 넣었다. 사람이 측정할 수 있는 최악의 지진 규모가 10인데, 격납 용기는 규모 13 이상에도 끄떡없다. 외부에서는 원자폭탄을 빼고 어떤 미사일이나 항공기가 충돌해도 견뎌낸다. 방어벽이 뚫린 이유는 핵연료에 물이 안 들어가 순식간에 2800도로 과열돼 녹으면서 수소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이 '비등수형'이어서 그런 폭발이 일어났다는 건가?

"그렇다. 체르노빌 원전도 비등수형이었다. 체르노빌에는 애초 격납 용기도 없었을 정도로 엉터리여서 논할 가치가 없다. 그 뒤로 각국에서 규모가 작은 내부 폭발이 8건 보고됐는데 모두 '비등수형'에서 일어났다."

―이게 사실이라면 '안전 강국'인 일본이 비등수형 원전을 돌렸을 리 있겠나?

"제너럴 일렉트릭(GE)이 개발한 '비등수형'은 가격이 낮고 발전 효율은 좋다. 폭발 문제는 도입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후쿠시마에 한국형 원전이 있었으면 격납 용기가 뚫리는 폭발 사고는 나지 않았다."

원전 수명과 안전은 아무 상관 없어

―문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됐을 때 탈원전 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총 1천368명이 사망했다. 사고 이후 방사선으로 인한 사망자나 암 환자 발생 수는 파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라고 했다.

"이는 가짜 뉴스였다. 사망자는 원전의 방사선 때문이 아니었다. 사고 이후 5년간 피난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질병 때문이었다. 2018년 유엔 산하 방사능영향과학조사위원회와 일본 정부에 따르면 방사선 피폭 사망자는 딱 한 명뿐이었다."

―또 문 대통령은 "설계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를 가동해온 것은 선박 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말했다. 월성 1호기는 7000억원 들여 핵심 부품과 설비를 다 교체한 뒤 10년 연장 심사를 통과한 원전이었다. 안전을 내세운 대통령의 한마디에 한수원 이사회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했는데?

"원전 수명과 안전은 아무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노후화해 일어난 걸로 잘못 알고 있다. 사실은 1년도 안 된 새 원전이었다. 미국은 설계 수명 40년인 원전을 60년으로 연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80년까지로 하려고 한다."

―스리마일 원전 사고의 충격으로 미국에서는 더 이상 원전 건설을 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세계 원전 업계를 호령하던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력은 쇠퇴했고 결국 도산했다. 자기 나라에서 수요가 없어지자 최고의 원전 대기업도 이렇게 망하는 것이다. 원전 기술의 리더였던 미국은 2009년 UAE 원전 수주에서도 우리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자 한 달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30년 중단된 원전 건설을 재개했다. 대학 시절 반핵 운동을 했던 그는 '미세 먼지, 온난화 등 환경문제와, 일자리,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전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원전 4기씩을 더 지었다. 김대중 후반기에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 건설 승인이 났다. 노무현 정부도 신고리 3·4호기, 신울진 1·2호기 건설을 미루다가 결국 승인했다.

"야당 시절 김대중 대통령 쪽에서 연락이 와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원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여러 번 만났다. 그때만 해도 노무현은 핵무기 개발 생각도 갖고 있는 걸로 느껴졌다. 대통령이 된 뒤 지지 세력의 눈치를 봐야 했지만 그래도 국익을 위한 결정을 했던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한국형 원전 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당신이 실무책임자였다. 한국형 원전은 1998년 울진 3·4호기로 처음 결실을 보았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자국 원전을 갖게 됐는데?

"전두환 욕을 많이 하지만 원전 기술 자립에 공이 컸다. 세상에서 기술을 그냥 원조해주는 나라는 없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숱한 설움을 겪었고 그만큼 처절하게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10년간 정시 퇴근과 휴가 없이 살았다. 후배들은 우리가 개발한 한국형 원전을 업그레이드해 2009년 말 UAE에 4기(APR 1400)를 수출했다. 이제 원전을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못된 물건 취급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했을 때 정확한 정보가 들어가면 돌아설 줄 알았다. 여전히 이러는 것은 국정 철학이 아니라 '똥고집'처럼 보인다."


조선일보 A35면
100주년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