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미친 집값, 거시경제 관리 실패 탓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입력 2019.12.09 03:17

서울의 집값 폭등 현상, 공급 부족 예상한 투기 심리… 시중에 돈 너무 많아 발생
명목 GDP 0.9% 늘었는데 총통화 6.7% 증가
기업 투자·증시로는 돈 안 흘러… 거품은 반드시 꺼진다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정부 정책 중에 국민에게 가장 가깝게 와 닿는 것은 아마 부동산 정책일 것이다. 부동산이 가계 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데다가 재산 증식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 입장에서는 부동산이 가장 고충이 큰 분야이기도 하다. 집값이 오르면 무주택 서민들의 원성이 자자하고, 내리면 건설 경기 부진으로 바닥 경제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올라도 안 되고, 내려도 안 되는' 딜레마 속에서 우왕좌왕한 적이 많았다. DJ 정부는 집권 후반기 경기 부양을 위해 과감한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가 2002년 한 해에만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20% 넘게 치솟는 투기에 시달렸다.

노무현 정부 때는 지역 균형 전략의 하나였던 신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토지 보상금이 수십조원 풀리면서 투기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은행들이 리스크가 작은 주택 담보대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엄청난 유동성을 제공한 것이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후 금융 축소, 세금 강화, 분양가 상한제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한번 불붙은 투기는 잡히지 않았다.

MB 정부는 역대 정부 중 집값이 하락한 유일한 정부이다. 세계 금융 및 재정 위기의 영향이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부가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지속 노력한 결과이다. 투기 심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준금리를 5차례나 올렸고, 주택 시장 침체로 100대 건설 업체의 20%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금융 완화 같은 부양책을 추진하지 않음으로써 집값과 가계 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상황이 또 바뀌었다. 경제를 활성화한다고 부동산 규제를 풀면서 잠자던 투기 심리를 건드렸다. 특히 주택금융을 대폭 완화함으로써 엄청난 유동성이 시장에 흘러들어왔다. 이 여파로 주택 가격이 다시 뛰기 시작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부동산 정책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집값에 영향을 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택 수급 상황이겠지만 국민의 투기 심리와 시중 유동성 같은 거시경제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주택 수급만 본다면 지금 집값이 그리 크게 오를 요인이 없다. 2011년부터 주택 구매 연령층(35~55세)이 감소세로 돌아섰고, 2017년부터는 생산 가능 인구(15~64세)마저 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집값이 오를 수 없다. 이미 지방에서는 인구 영향을 받고 있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서울 지역에서만 집값이 폭등세를 보이는 이유는 향후 공급 부족을 예상한 투기 심리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투기 심리는 늘 경제에 돈이 풍부할 때 일어나게 되어 있다. 우리 경제는 2013년 이후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흑자를 보이면서 실물 부문에서 자금 여유가 많은데 여기에 저금리로 금융 자금까지 가세하다 보니 시중에 돈이 너무 많아졌다. 올해만 보더라도 9월까지 명목 GDP는 0.9% 늘었지만 총통화는 6.7%나 늘었다.

시중에 돈이 많을 경우 건실한 경제라면 기업 투자나 증시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기업의 투자 분위기는 바닥에 머물러 있고, 미래 확신을 잃은 주식시장은 수년째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다. 경제 선순환 구조가 깨지다 보니 국내에서 돈이 갈 곳이라고는 부동산 시장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 같은 주택 공급을 축소할 조치들이 나오니 투기 심리가 폭발한 것이다.

부동산 정책은 지금처럼 부동산으로만 접근해서는 실패한다. 거시경제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반기업 정책을 중단하고 4차 산업 규제를 풀어 돈이 생산적 분야로 가게 해야 한다. 1600조여원이나 되는 가계 부채에 대해서도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념에 치우친 정책 탓에 가라앉는 경제를 저금리로 살리려다 보니 경제에 거품만 잔뜩 끼는 형상이 되었다.

거품은 반드시 꺼지게 되어 있다. 강남구 도곡동 R아파트(전용 85㎡)는 2006년 8억원에서 2009년 19억원까지 치솟았다가 2012년 9억원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2차 대전 이후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던 일본 주택 가격은 1990년대 초 인구 절벽을 맞으면서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거품이 커질수록 꺼질 때의 충격도 커지는 법이다.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시 시티그룹의 '척 프린스' 회장은 "연주가 이어지는 한 우리는 춤을 출 수밖에 없다"라며 계속 투자하다가 집값 거품이 꺼지면서 폭삭 망했다. 잘못된 정책이 국민을 계속 춤추게 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인구 절벽 위에서 춤추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조선일보 A38면
3일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