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 공작 숨기려 '가명 조사'까지 벌였다니

입력 2019.12.09 03:19
한국당 소속 울산시장 후보 관련 첩보를 청와대에 넘긴 송병기 현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당시 경찰 조사에서 가명(假名)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는 이 제보를 재가공한 뒤 경찰에 하달했고 경찰은 야당 후보가 공천받는 날 압수 수색을 실시해 선거에 찬물을 끼얹었다. 혐의는 모두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지만 야당 시장은 낙선하고 경쟁 여당 후보가 당선된 뒤였다. 선거 공작이었다. 그런데 송 부시장이 단순 제보만 한 게 아니라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에서 진술까지 했으며, 경찰은 '퇴직공무원 김○○'이라며 가명 조서까지 받아 그 신분을 숨겨줬다는 것이다.

가명 조서 작성은 당사자가 신분이 드러나면 보복당할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송 부시장은 이 경우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송 부시장이 경찰 조사를 받은 시점은 이미 민주당 송철호 선거 캠프에 참여한 뒤라고 한다. 집권 여당으로 들어갔는데 무슨 보복이 있나. 경찰이 뻔히 알면서도 가명 진술을 받은 것은 진짜 이름이 드러나면 선거 공작이 들통나기 때문이다.

조사는 한 번이 아니라 경찰의 울산시청 압수 수색 직전과 직후 등 세 차례나 이뤄졌다고 한다. 야당 시장 후보가 공천받은 날 진행된 압수 수색도 송 부시장 가명 진술 직후였다. 청와대와 여당이 수사 청부(請負)도 모자라 경찰과 짜고 수시로 수사 지휘까지 했다는 뜻이다. 명백한 선거 공작 증거가 또 드러났다.

야당 울산시장 수사는 경찰 내에서조차 "납득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울산경찰 책임자는 부임하자마자 야당 시장 주변 뒷조사를 지시했다. 경찰 스스로 무혐의를 내린 사안까지 수사하라고 밀어붙였다.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관은 좌천시키고 야당 시장 측을 고발한 업자와 1년에 535차례나 통화한 경찰관을 수사팀에 끼워넣었다. 검찰이 "증거가 없다"며 여러 차례 보강수사를 지시하는데도 무조건 기소해달라고 했다.

이 무리한 수사의 책임자가 여당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9일 북 콘서트를 열고 주변에 감사장까지 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친정부 방송에 하루가 멀다 하고 출연해 "야당 시장은 배은망덕" "지금 검찰 수사가 진짜 선거 개입"이라며 되레 큰소리를 치고 있다. 도둑이 "도둑 잡으라"고 고함치고 현직 경찰 간부가 대놓고 선거운동을 하는데 이 정권 누구 하나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다. 모두 후안무치 한통속이다.


조선일보 A39면
3일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