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민심 흉흉… "대통령, 부산사람이라 말도 하지마라"

이동훈 기자
입력 2019.12.08 07:59 수정 2019.12.08 10:20

[주간조선]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내려다본 부산 원도심과 영도(사진 위). photo 이동훈

지난 12월 2일 찾아간 부산 사상구 학장동의 대호PNC 부산공장. 부산 최대 노후 공업지역인 사상공단 일대의 다른 공장들과 달리 적벽돌의 외관이 돋보이는 이 공장은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찾은 폐공장이다. 오거돈 부산시장과 함께 사상공단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에서 ‘부산대개조’ 선언을 했다. 하지만 ‘부산대개조’ 선언이 나온 지 1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폐공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한때 100여명의 근로자가 근무했다는 공장은 곳곳에 유리창이 깨진 흔적이 보였고 경비실에는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공장 옆 이면도로에 서 있는 전신주 곳곳에는 ‘공장 매매’ ‘공장 임대’와 같은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금속가공 공장들이 밀집한 이곳에서 쇠를 깎는 소리가 들리는 공장은 정작 몇 곳 되지 않았다. 두 집 건너 한 집은 작업장 문을 열어둔 채 개점휴업 상태였다. 낙동강 건너편 부산 김해공항에서 기자를 태우고 온 한 택시기사는 “요즘 사상공단 가자고 하는 사람 별로 없는데”라며 “대통령이 어딜 가서 제발 부산 사람이란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산 최대 노후 공업지구인 사상공단이 있는 부산 사상구는 문재인 대통령의 옛 지역구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9대 총선 때 ‘박근혜 키즈’로 불리던 손수조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상구의 폐공장을 직접 찾아와 ‘부산대개조’ 선언을 한 것은 이런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옛 지역구이기도 한 부산 최대 노후 공업지역인 사상공단에는 곳곳에 경기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흔들리는 문 대통령 고향 부산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한 경제실패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최근 부산 출신 인사들이 각종 스캔들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내년 4월 총선마저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때 모두 18석이 걸린 정치적 불모지 부산에서 5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부산 출신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민선 이후 최초로 민주당 소속 오거돈 부산시장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해운대 엘시티 비리에 연루된 배덕광 전 의원(해운대구을)의 사퇴로 지난해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1석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내년 총선 때 부산 지역 출마가 거론되던 부산 출신(혜광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녀의 부산대 의전원 입시부정 등에 휘말려 검찰조사를 받는 중이고,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감찰을 무마했다는 의혹이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까지 낙마했다. 내년 총선에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 출마가 유력한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도 유재수 전 부시장 건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린다. 댓글조작사건 주범 ‘드루킹’ 김동원씨가 청와대 서열 2위로 꼽은 윤건영 실장 역시 부산 배정고 출신이다.

야당에서 국정조사를 요구 중인 ‘우리들병원’ 특혜대출 의혹과 연루된 이상호 우리들병원그룹 회장과 전처인 김수경 우리들리조트 회장 모두 부산 출신으로, 각각 부산대 의대와 부산대 영문과를 나왔다.

이 밖에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 송인배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씨 소유의 골프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여기에 유재수 전 부시장을 부산으로 끌어온 인사로 부산 출신(경남고, 부산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형국이다. 부산 바로 옆 지자체장인 송철호 울산광역시장, 김경수 경남지사도 각각 지난 지방선거 및 대선과 관련한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여 있어 부산 지역 여론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속되는 불황에다가 불미스러운 정치적 스캔들에 ‘부산 아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PK로 통칭되는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의 지지율 변화도 예사롭지 않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1월 25~29일, 19세 이상 남녀 2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울경 지역의 정당지지도는 자유한국당이 42.6%로 민주당(32.8%)을 10%포인트가량 앞섰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월 26~28일 19세 이상 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부울경 지역에서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가 33%로 민주당(25%)을 8%포인트가량 앞섰다.

자영업 도시 부산 엄습한 불황

악화된 지지율에 기름을 뿌리고 있는 것은 최악의 부산 지역 경기다. 부산항 남항을 가로지르는 남항대교 아래 영도구 남항동은 문재인 대통령이 자란 곳이다. 지난 10월 29일 작고한 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가 임종 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거제도에서 태어난 문 대통령도 어릴 적 영도로 넘어와 남항초등학교를 나오고 학교 옆 신선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도 모교인 경남중과 경남고가 있는 서구를 비롯해 중구, 동구 등 부산 원도심에서는 모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졌으나 고향 영도에서만은 이기면서 체면치레를 했다.

하지만 고향 영도에서도 대통령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이 역시 불황의 여파로 풀이된다. 영도구 남항동 일대는 국제선용품유통센터를 중심으로, 선박기자재·선용품을 공급하는 업체와 수리조선소들이 밀집해 있는데, 개점휴업 상태인 곳들이 여럿 보였다. 영도구의 한 선박기자재 업체 관계자는 “모친이 살아계셨을 때 대통령이 영도에 자주 왔다고 하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소리 듣고 기대 접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오히려 영도에서는 지역구인 김무성 의원(중구·영도구)의 불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영도에 출마가 거론되는 영도여고 출신 이언주 의원(무소속·경기 광명을) 등에 대한 관심이 더 커 보였다.

부산 출신 대통령을 배출했음에도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것은 부산 경제의 구조적 특성 탓도 있다. 부산은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길 가던 사람 10명 중 9명이 뒤돌아볼 정도로 자영업 비중이 높다. 동남권 최대 금융기관인 BNK(부산·경남은행)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부산은 60세 이상 고령 자영업자 비중이 26.7%로 전남(26.8%)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속한다. 하지만 부산의 자영업자는 2013년 37만3000명에서 지난해 30만9000명으로 6만4000명이 줄어들면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감소율(17.2%)을 기록했다.

인건비 상승, 소비부진 등으로 한계상황에 내몰리는 자영업자들의 정부 여당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돌아설 수밖에 없다. 부산광역시청이 있는 부산 연제구에서 약 50년 동안 인테리어 업종에 종사한 김남걸(69) 사장도 불경기를 몸소 체감하는 중이다. 김남걸 사장은 “인테리어 업종은 현장 업무가 보통 저녁 6~7시쯤에 끝나는데 요즘은 오후 5시만 되면 문을 닫는 건설 관련 업체들이 너무 많다”며 “건설 관련 업종들이 1000개쯤 된다고 얘기하는데,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문을 일찍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불황, 한·일관계, 유재수 삼중고

지난 수년간 조선업 불황 등으로 악화된 부산의 지역 경기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BNK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 12월 3일 ‘2020년 동남권 경제전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을 비롯한 울산·경남 지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수년간 전국 평균을 하회했다. 문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에는 0%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0.3%라는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 한 달이 채 안 남은 올해 동남권 경제성장률도 1.2%(추정)로 전국 평균 2%(추정)를 하회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부산 지역 경기는 연말연시치고는 좋지 않아 보였다.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역 1번 출구를 나오면 펼쳐지는 ‘서면 1번가’에도 불황의 골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겨울 추위 탓인지 12월 2일 저녁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떡볶이와 순대 등을 파는 노점들은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장사를 접고 가게를 비운 곳도 여럿 보였다. 일본롯데에서 투자한 부산 최대 롯데호텔과 롯데면세점이 있어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지만, 한·일 관계 악화로 지난 10월부터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타격이 커 보였다.

사드(THAAD) 사태 이후 크루즈 관광이 제한되면서 부산 원도심 일대도 경기가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2월 3일 중구 용두산공원에 자리한 부산 지역 향토 면세점인 부산면세점은 손님보다 종업원들이 오히려 더 많아 보였다. 중국과 러시아인 관광객들로 흥청망청하던 부산역 앞 초량 텍사스거리와 상하이거리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하이문’ 안쪽 차이나타운은 대부분 저녁시간이 지나자마자 가게문을 닫았다. 텍사스거리의 클럽들은 찾는 사람이 없어 패딩을 입은 채 호객행위를 하는 러시아 여급들만 보였다.

초고층 주상복합과 고가 아파트들이 즐비해 부산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해운대 일대도 불황의 여파가 엄습하고 있었다. 부산 최대 휴양지 해운대 일대는 겨울철 비수기라는 계절적 요인도 있었지만 연말연시 성수기치고는 너무나 한산했다. ‘죽창가’가 회자되면서 한·일 관계가 최악일 때인 지난 7월 대통령이 찾았다는 해운대 미포의 거북선횟집은 ‘대통령님이 다녀가신 횟집’이란 간판까지 걸어놓고 있었으나, 지난 12월 2일 저녁 횟집 1층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다른 횟집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간 불황과 별 관계없이 돌아가던 연제구 일대 상권도 꽁꽁 얼어붙기는 마찬가지다. 부산 연제구에는 부산광역시청을 비롯해 부산시의회, 부산지방경찰청, 부산지방국세청, 부산지방법원과 고법, 지방검찰청과 고검 등 각급 관청들이 줄줄이 포진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함께 운영한 ‘법무법인 부산’ 역시 현재 연제구 법조타운에 있다. 하지만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낙마한 뒤로는 공무원들을 주로 상대하는 연제구 관청가와 법조타운 앞 밥집과 술집들은 연말인데도 불구하고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부산 연제구 일대의 관청가가 얼어붙기는 정확히 3년 만이다. 3년 전인 2016년 연말에도 부산 최고층(411m) 엘시티 인허가 비리건으로 이영복 회장이 오랜 도피생활 끝에 검거되면서 부산 관가가 살얼음판을 걸었다. 당시 ‘부산의 정태수’라고 불리던 이영복 회장이 검거되면서 로비리스트에 올라와 있던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배덕광 전 의원(재선), 서병수 전 부산시장의 측근이던 정기룡 전 부산시 경제특보 등에게까지 불똥이 튀면서 부산시 관가는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유사 사태가 3년 만에 재발한 셈이다.

지난 2월 부산 사상공단에서 열린 ‘부산대개조 비전선포식’. photo 뉴시스

2030 부산엑스포, 동남권 신공항 카드

경기불황만으로 내년 부산 지역 총선 결과를 예단하기는 힘들다. 정부 여당이 부산 민심을 잡기 위해 쓸 수 있는 정책카드는 널려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1월 6일, 부산 해운대구·수영구·동래구를 대출규제가 적용되는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로써 부산은 지난해 12월 부산진구·남구·연제구·기장군(일광면)이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것을 시작으로 전 지역이 부동산 규제를 벗어났다. 국토부는 “주택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총선을 앞둔 부산 민심 잡기라는 시각도 있다.

부산시 역시 지난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부산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회 한·메콩 정상회의’를 정부 여당의 부산 중시를 알리는 치적으로 홍보 중이다. 실제 11월 26일 부산 아세안문화원에서 열린 환영만찬 때 문재인 대통령은 “제 고향 부산”이란 표현을 썼다. 앞서 지난 7월에는 부산이 ‘블록체인특구’로 지정됐고, 지난 11월 12일 부산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2030 부산 세계박람회(등록엑스포)’ 유치를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2030 엑스포는 부산 북항 일원에서 열리게 된다.

오거돈 부산시장을 필두로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 민주당 소속 부울경 지자체장들이 국토부를 압박해 국무총리실로 이관시킨 ‘동남권 신공항’ 재검증 결과에 따라 당초 ‘김해신공항’ 계획을 뒤집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 당선된 직후부터 박근혜 정부에서 국제 용역 결과 확정한 ‘김해공항 확장’ 대신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이고 있다. 부산시와 산하 부산교통공사 등은 관내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곳곳에 ‘김해신공항은 아닙니다’라는 포스터를 걸고 여론몰이를 하는 중이다.

때문에 소위 ‘우파’들조차 내년 총선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 기독교총연합회 사무부총장으로 지난 7월 부울경 목사 650여명이 참여한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송영웅 목사(부산 동래구)는 “나이 많은 분들과 젊은 분들의 의견이 많이 엇갈린다”고 했다. 우파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준기 국가혁신애국투쟁연합회 회장(부산진구)은 “집회 때 버스 5~7대를 움직이고 있는데, 내년 총선 때 여당의 선거공작으로 우파가 필패할 것이란 의견도 있고, 민심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내년 총선에서 부산 지역 승부는 부산 지역에 걸린 18석 가운데 6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어느 정도 수성하느냐 여부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현 6명의 민주당 부산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3선의 김영춘 의원(부산진구갑)을 제외하면 모두 초선이다. 하지만 박재호 의원(남구을)을 비롯해 최인호 의원(사하구갑), 전재수 의원(북구강서구갑), 윤준호 의원(해운대구을) 등은 구청장과 국회의원 등 각종 선거에서 3번 낙선하고 4번 만에 금배지를 차지한 ‘끈질긴’ 인사들이다. 김해영 의원(연제구)은 비록 초선이지만 민주당 최고위원직을 맡고 있다.

민심이반으로 자유한국당이 반사이익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다. 일찍이 불출마를 선언한 부산 지역 최다선 김무성 의원(6선)과 함께 부산 금정구의 터줏대감이던 김세연 의원(3선)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물갈이에 대한 기대심리를 이어가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기존에 불출마를 시사했던 김정훈 의원(4선, 남구갑)과 윤상직 의원(초선, 기장군) 등이 불출마 뜻을 번복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부산 지역 의석 18석 중 민주당은 현재 6석보다 3석 늘어난 9석, 한국당은 현재 12석보다 3석 늘어난 15석을 공언하고 있다.

3일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