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 '검사 윤석열'로 남는 길

최원규 사회부 차장
입력 2019.12.06 03:14

정권과 맞서는 검찰에 보복 인사로 대응할 것
타협의 유혹에 넘어가면 그의 리더십은 끝난다

최원규 사회부 차장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현 정권 들어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됐을 때 어느 전직 검찰 간부가 사석에서 했던 말이다. 윤 총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박근혜 정권에서 좌천돼 한직을 돌다 현 정권에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검사가 정권 '신세'를 진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 전직 간부는 오랜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까딱하면 호랑이 등에서 떨어져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지금 윤 총장이 그 순간을 맞고 있다. 2년 넘게 '적폐 수사' 하며 현 정권과 호흡을 맞춘 그는 지금 정권을 겨눈 수사를 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一家) 수사에서 시작해 청와대 특감반 감찰 무마 의혹,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까지 확전 일로다. 정권이 눈 뜨고 당할 리 없다.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을 향해 "피의사실 공표하지 말라"고 했고, 여당 원내대표는 법무부를 향해 "검찰을 특별감찰하라"고 했다. 여당 대표는 검찰을 "불공정의 상징"이라며 "그냥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임기 절반을 남긴 정권과 검찰의 이런 충돌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흉흉한 소문이 다시 돌고 있다. 정권이 검찰 물갈이 인사(人事)를 통해 윤 총장을 고립시키려 한다는 '보복 인사설'이다. 애초 이 얘기가 돈 건 '조국 수사' 착수 직후였다. 어느 일선 지검장은 두 달 전쯤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12월에 인사가 날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이후 검찰이 자체 개혁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지난달 초 세월호 특별수사단을 발족시키는 '유화 제스처'를 쓰면서 인사설은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그러다 최근 정권을 겨눈 수사가 본격화되자 다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권 인사 스타일을 보면 보복 인사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쓴 책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검찰 간부는 해마다 보직 인사를 받는데 두 번만 한직으로 발령 나면 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실제 문 대통령은 그런 인사를 했다. 전(前) 정권에 유리한 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일선 지검장을 초임 검사장이 가는 고검 차장검사로 발령 내더니 두 달도 안 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시켰다. 그는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던졌다. 검찰의 약한 고리가 인사라는 걸 이 정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등은 정권의 비리다. 개인 비리에 가까운 조국 일가 수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검찰을 향한 정권의 공세는 더 격렬해질 것이고, 보복 인사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이 어제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추미애 의원을 지명한 것은 그런 인사의 신호탄 같은 것이다. 서초동 일각에선 "정권이 윤 총장을 직접 흔들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윤 총장이 전 정권 수사할 때는 그를 "총장 적임자"라고 치켜세우다 이제 와 "불공정의 상징"으로 매도하는 정권의 이중성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중요한 건 윤 총장의 선택이다. 정권과 맞붙는 건 위험한 일이다. 타협의 유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자리는 지킬 수 있겠지만 그의 리더십은 거기서 끝난다. 어느 검사가 그를 총장으로 인정하겠나.

윤 총장은 누구보다 검사로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가 진정 검찰을 위하고, '검사 윤석열'로 남고 싶다면 주춤거리거나 곁눈질해선 안 된다. 제대로 수사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러면 정권에 의해 쫓겨나더라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현 정권에 빌붙느냐 아니면 '검사 윤석열'로 남느냐는 갈림길에 지금 그는 서 있다.



조선일보 A39면
3일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