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反정부 시위 450명 사망 추정… 혁명 40년만에 최악 유혈사태

정시행 기자
입력 2019.12.03 03:00

석유값 50% 인상 발표후 시위 시작… 美 제재 장기화로 민생 위험 수위
혁명수비대, 사살정황… 분노 확산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없다" 외쳐

하메네이
지난달 시작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 40년 만에 최악의 유혈 사태로 비화하고 있다. 시위대의 분노도 최고지도자 등 정권 핵심을 향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BBC·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현 이란 체제는 40여년 전 수천 명이 숨진 시위 진압에 분노한 민중 혁명으로 친미(親美) 왕조가 무너진 뒤 들어선 반미(反美) 이슬람 공화국이다. 이란 정권과 미국 간 핵협상이 교착돼 경제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민생난으로 촉발된 내부 불만이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NYT는 1일(현지 시각) 현지 통신원과 병원 관계자 등을 인용, 이란 정부의 유가 50% 인상 발표가 계기가 돼 지난달 16일 시작된 반정부 시위로 나흘간 숨진 국민이 최소 180명에서 450명으로 추산되며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또 50여 도시에서 7000여명이 구금되고 200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2009년 이란 대선 부정에 항의하는 시위로 10개월간 72명이 숨졌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예부대인 이란혁명수비대(IRCG)가 시위 현장에 투입돼 민간인을 사살한 정황이 뒤늦게 전해져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혁명수비대는 정권 수호를 내걸고 서방이나 이웃 국가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면서 국내 에너지·통신 등 대형 이권 사업을 장악해 그 가족들이 호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혁명수비대가 남서부 도시 마샤르에서 AK-47 소총 등 중화기로 한 번에 100여명을 총살하는 현장을 봤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이들은 시신을 유족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장례식을 열지 말고 언론 인터뷰에도 응하지 말라'고 협박했다고 NYT는 전했다. BBC는 "혁명수비대가 병원 응급실까지 뒤져 총상 환자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해간다"는 의료진 증언도 전했다.

이런 사실은 당국이 시위 발발 직후 약 열흘간 인터넷을 차단한 탓에 잘 알려지지 않다가, 며칠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전해지면서 계속 소요를 촉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초 유가 인상에 분노한 시위대가 은행·주유소 등만 습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 기관과 군 시설, 이슬람 사원 등을 공격하는 등 시민들의 분노가 정권을 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위 현장에선 "최고지도자는 신처럼 살고 우리는 거지처럼 산다" "도둑들이 권력을 잡은 나라에서 젊은이는 미래가 없다"는 등 전례 없는 반체제 구호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BBC와 가디언이 보도했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0)는 지난달 27일 "불순한 폭동을 진압하고 우리가 승리했다"면서 미 중앙정보국(CIA)을 시위 배후로 거론했다.

8년째 가택 연금 중인 야당 지도자 미르 호세인 무사비는 지난 주말 성명을 내 "이번 시위는 1978년 대학살과 판박이"라면서 "당시 유혈 진압을 지시한 게 팔레비 왕(Shah)이었고, 지금은 이슬람 최고지도자라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1978년 대학살은 테헤란 잘레흐 광장에서 민생난에 들고일어난 상인과 학생 등을 사격해 최대 4000명이 사망한 '검은 일요일' 사건을 가리킨다. 이듬해 2월 왕정은 무너지고, 야권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공화국의 초대 최고지도자에 앉았다.


조선일보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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