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50] 공격적 책 읽기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입력 2019.12.03 03: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올해도 어느덧 저물어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정리할 게 많겠지만 올 한 해 나는 과연 책을 몇 권이나 읽었나 돌이켜보자.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올해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스스로 '책벌(冊閥)'이라 떠벌리고 살면서 1년 내내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니….

독서란 본디 책을 손에 쥐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곤 때로 식사도 거르고 밤잠도 설쳐가며 읽는 것인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저 '공격적 책 읽기'만 하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 책 저 책 필요한 부분만 잘라 읽는다. 영어로 쓰인 책에는 대개 색인이 있다. 나는 색인을 뒤져 원하는 키워드를 찾은 다음 그 페이지로 쳐들어가 포획물을 둘러업곤 황급히 빠져나온다. 이러다 보니 어느덧 책을 펼치기보다 인터넷 검색을 더 즐긴다.

학교생활기록부에서 독서기록란을 없애겠다는 최근 교육부의 발표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진득하게 책 한 권을 떼는 게 아니라 시험에 나올 법한 짤막한 지문을 도려내 읽고 저자의 의도 따위나 알아맞히는 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독서 문화 시민단체들은 이번 결정을 환영하지만, 비록 완벽한 제도는 아니더라도 열악한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 안간힘을 써온 일선 교사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학창 시절 '억지로' 읽은 책 한 권으로 인생 진로가 뒤바뀐 사람은 뜻밖에 많다.

세상 모든 게 그렇듯이 국가정책도 혁신과 진화 두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평형설'이 개혁에 약간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모름지기 전 국민을 상대로 펼치는 정책은 스스로 진화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허용해야 한다. 책과 저자 이름이나 기록하는 짓은 그만두더라도 독서는 어떻게든 장려해야 한다. 단언컨대 독서보다 훌륭한 교육은 없다.



조선일보 A34면
트래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