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대, ‘조국 관련 특강’ 현수막 ‘정치적’이라며 불허…학생들 "사실상 검열"

박소정 기자 양범수 기자
입력 2019.12.02 17:12
서울대가 법무부 장관을 사퇴하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복귀한 조국 교수를 주제로 한 특강을 홍보하는 현수막에 대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학내 게재를 불허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서울대 내 보수단체인 트루스포럼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달 27일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연구-조국 교수는 전향했는가’란 제목의 특강 홍보 현수막 2장을 교내에 게시하기 위해 서울대 캠퍼스관리과를 찾았다. 현수막은 경찰 조직에서 사노맹 사건을 담당했던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의 초빙 강의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유 원장은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 연구관 출신으로 사노맹 사건에 대한 분석을 담당했다.

서울대 측이 학내 게시를 승인하지 않은 서울대 트루스포럼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 연구-조국 교수는 전향했는가’란 제목의 현수막. /트루스포럼 제공
특강 현수막을 담당하는 서울대 캠퍼스관리과는 이 현수막 내용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승인을 거절했다. 학교 측은 "캠퍼스 이용 규정 5조 ‘기타 면학 및 연구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맞느냐, 안 맞느냐를 판단했다"며 "이번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홍보물에 대해 승인을 거절한 적이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에 따르면 서울대 교내에 현수막을 내걸기 위해선 현수막의 내용에 맞는 담당 부서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동아리·학생 활동에 대한 홍보 현수막은 학생과, 취업·교육은 경력개발센터, 학회·포럼은 캠퍼스관리과 담당이다.

포럼 측은 "이전까지는 내용 검토는 거의 하지 않고 허가 도장을 찍어주는 등 현수막 게시에 대한 승인은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였다"면서 "학교 측이 갑자기 캠퍼스 이용 규정을 들이밀며 승인을 거절해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어 "조 교수가 과거 가명으로 사노맹 산하 기관지에 ‘자본주의 폐지’를 주장하는 취지의 글을 게재하거나 이 사건에 연루돼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것 자체는 사실인데, 이런 내용을 지나치게 정치적이라고 해석한 것 같다"며 "정치적이라며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못내게 하는 학교 측의 행태가 더 정치적"이라고 했다.

앞서 서울대에선 중앙도서관에 조성된 ‘레넌 벽’(Lennon wall·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는 벽)에 대해서도 ‘정치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진철거를 요구한 바 있다. 지난 20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인근에는 "정치적 견해 표명이 건설적인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게 과도한 표현이나 자극적인 형식 등을 피해주길 당부한다"는 중앙도서관장 명의의 안내문이 붙었다. 홍콩 시위를 둘러싸고 한국인 학생과 중국인 유학생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학교 측이 ‘허가받은 홍보물만 부착하라’는 취지로 철거를 요청한 것이다. 레넌 벽을 부착한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측은 지난 22일 결국 이를 철거했다. 서울대가 도서관 벽면 홍보물 부착에 대해 별도의 공지를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이에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선 학교가 최근 규정을 내세우며 사실상 학생들의 목소리를 검열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생활과학대학 재학생 신모(여·21)씨는 "조 교수나 홍콩 시위 관련한 이슈에 대해 학교 내부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대자보나 현수막도 그런 학생들의 여론의 일환일 뿐"이라며 "대자보나 현수막 내용에 대해서 학교가 승인이나 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했다. 조 전 장관 사퇴 촉구 집회를 이끌었던 서울대 집회추진위원회 위원장 김근태(29)씨는 "이전에 수차례 대자보를 게시해 봤지만 학교에서 철거나 승인에 관해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며 "규정이 어떤지에 상관 없이 표현의 자유를 해칠 수 있는 규정은 수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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