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탄약공장서 꽃핀 예술

홍천=정상혁 기자
입력 2019.12.02 03:00

[강원국제예술제]
군용 건물 재생은 국내 첫 시도… 연병장은 야외전시장으로 변신
강원 작가로 지역성 살렸지만 공간 외 매력 부족은 고민거리

길을 안내하던 전시장 직원이 "여기만 오면 아직도 춥다"고 말했다. "몸이 기억을 못 잊는 모양입니다." 차창 너머로 군용 철조망이 보이자, 체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옛 육군11사단 탄약정비공장을 재정비한 전시장. 173평 내부에 작품 60여점이 놓여 있다. /정상혁 기자
이 전시장은 강원도 홍천군 결운리에 있는 옛 육군 11사단 탄약정비공장을 재정비한 곳이다. 올해 처음 시작된 강원국제예술제 메인 전시장(173평 규모)으로, 군용 유휴 건물을 미술 전시장으로 재활용한 국내 첫 사례다. 1973년 준공 당시부터 놓여 있던 30m 길이 컨베이어벨트 및 탄약도장용 회전기계 등 시설 그대로를 인테리어로 살렸다. 전시장 밖에 빈 탱크도 한 대 놨다. 연병장은 야외전시장, 화생방훈련장은 주차장으로 쓰인다.

전시 주제는 M16 소총용 탄피를 가리키는 은어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으로, 폭력과 전쟁의 기억이라는 콘셉트를 드러냈다. 참여 작가 전원이 강원도 출신으로, 지역성 강조를 위해 박대근 작가와 주민 30명이 함께 2t 분량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대형 조형물 '空―토기'를 야외에 전시하기도 했다. 참여 작가 정찬민(28)씨는 "고향이 홍천인데도 이런 곳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며 "장소의 개성이 워낙 강해 고민도 컸다"고 말했다.

연병장으로 쓰이던 공터에 들어선 지용호 작가의 폐타이어 조각 '뮤턴트' 연작과 뒤편에 보이는 박대근 작가의 '空—토기'. /정상혁 기자
장소의 힘은 크나, 작품 및 주제 구현 등의 매력 부족은 고민거리다. 이 행사는 지난해까지 '강원비엔날레'였으나, 올해부터 3년 주기 순회형 행사로 바뀌었다. 후발 주자의 한계를 절감하고 정체성을 급히 바꾼 것이다. 그러나 장소 선정이 지난 7월에야 완료돼, 행사 준비 기간은 3개월에 불과하다. 해당 전시장 부지 및 건물 소유권 이전 문제도 완료되지 않아 행사 주관 단체(홍천군)가 아닌 국방시설본부 강원시설단이 관리 중이다. 홍천군 측은 "내년 상반기쯤 절차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했다. 예산 확보도 안 돼 지난해 비엔날레 행사 예비비 2억원으로 충당했다. 전시 기간이 보름밖에 안 되는 이유다. 전시는 이달 3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 온풍기 10대를 들여놓고, 관람객용 핫팩 2만개를 준비했다. 그러나 추위는 여전히 과제다. 전쟁의 기억을 지나간 역사로만 다루기엔 휴전선이 여전히 냉랭한 탓이다. 지난 28일에도 북한은 발사체 무력 도발을 벌였다.


조선일보 A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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