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동성애자 국가수반

입력 2019.12.02 03:16
2년 전 나토 정상회담 때 미국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가 다른 퍼스트 레이디들과 벨기에 왕궁을 찾았다. 그때 기념사진에 남성이 한 명 있었다. 동성애자인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의 파트너였다. 백악관은 이 공식 사진을 올리면서 캡션에 남성 이름을 쏙 뺐다. '퍼스트 젠틀맨의 이름을 빠뜨린 건 백악관 직원들의 후진성을 보여준다'는 비난 댓글이 달렸다. 논란이 일자 백악관이 뒤늦게 그의 이름을 포함시켰다. 베텔 총리는 공식석상에 동성 배우자를 자연스럽게 대동한다.

▶현직 동성애자 총리는 더 있다. 2017년 취임한 아일랜드의 리오 버라드커 총리, 세르비아의 첫 여성 총리인 아나 브르나비치는 최연소 총리이면서 동성애자 총리다. 서유럽보다 훨씬 보수적인 세르비아에 '40대' '여성' '동성애자' 총리는 큰 이목을 끌었다. 이 커플은 얼마 전 인공 수정으로 임신해 아이를 출산, '두 어머니와 한 아기' 가정을 이뤘다. 

▶세계 첫 동성애자 국가수반은 2009년 취임한 아이슬란드 총리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휘청대는 나라를 일으키려고 이 나라 유권자들은 최초 '여성 총리'이자 '동성애자 총리'를 선택하는 파격을 보였다.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유리 천장'이라고 하듯,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라벤더 천장'이라고 한다. 최근 서구에서는 성(性)소수자임을 숨기거나 비주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라벤더 천장'을 깨려는 정치인들이 늘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에 비해 나이가 절반도 안 되는 젊은 후보 피터 부티지지(37)의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아프간 전쟁에도 참전한 '엄친아' 정치인의 등장에 트럼프 대통령도 신경이 쓰이는지 "시진핑 주석이나 김정은을 상대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노골적으로 깎아내린다. 부티지지는 2015년 동성애자임을 공개하고 작년에 중학교 교사인 남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CNN 인터뷰에서 "백악관에서 (동성 배우자와)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부티지지의 가장 큰 지지층은 부모뻘인 백인 중·장년층이라고 한다. 반면 동성애 문제에 거부감이 큰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부티지지의 지지도는 거의 바닥이다. 미국은 동성애 문제에서 유럽보다는 보수적이었다. 부티지지가 과연 유력 대통령 후보로서 완주할 수 있을지 미 대선의 새로운 관심거리다.


조선일보 A34면
트래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