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탈원전 뒤로 직원 사표를 매일 다섯명꼴로 받았다… 내가 罪人 같았다"

입력 2019.12.02 03:13

[김성원 前 두산중공업 부사장의 충격 증언… '文정권의 탈원전'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나]
"현 정권의 '탈원전 시나리오'는 公的 라인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영국 원전 수주 위해 뛰었던 조환익 한전 사장은 청와대에 찍혀
문 대통령 '원전 세일즈' 체코 방문, 현지 관계자들은 이해 못해
탈원전으로 UAE 원전 서비스 계약 무산… 최소 3조원 손실"

"나는 발전소 건설을 담당하는 플랜트 부문장이었다. 소속 직원은 3000여명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이 시작되자 거의 매일 다섯명꼴로 직원 사표를 받아야 했다. 내가 죄인(罪人) 같았다."

두 달 반 전 김성원(49)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사직했다. 그는 '문재인 탈원전'이 어떤 재앙을 몰고 왔는지를 증언하기 시작했다.

김성원 전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당시 산자부 장관도 '이렇게 급격한 원전 축소로 갈 줄은 몰랐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이진한 기자
―문 대통령은 취임 한 달을 맞은 날(2017년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전격 탈핵(脫核) 선언을 했다.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 재검토와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전면 백지화를 밝혔다. 대기업은 나름대로 정보망이 있는데, 이를 얼마나 예측했나?

"후보 시절 공약(公約)을 했으니, 우리가 준비하고 있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예감은 있었다. 그런데 23%나 진행된 '신고리 5·6호기'를 건드리고 신규 원전 계획까지 백지화할 줄은 몰랐다. 정상적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쳤으면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산자부 장관과 청와대 참모를 백방으로 접촉했지만 다들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당시 산자부 장관을 두 번 만나 '원전 건설 백지화는 우리만 아니라 해외 업체도 걸려 있다'고 하소연하자, '우리가 얘기했던 에너지 정책은 이렇게 급격한 원전 축소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또 우리 측 관계자가 김경수 경남지사를 만나 '신한울 3·4호기 건설까지는 하도록 해달라'고 사정하자 '청와대 참모도 대통령에게 이 안건에 대해 말 못 한다'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탈원전 계획'을 담당하는 파트는 어디였나?

"직무 영역으로는 당시 김수현 사회수석실이었지만, 그도 담당 비서관에게 탈원전 관련 보고를 안 받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할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탈원전에는 고리원전 영구정지, 원자력안전위원회 점령,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월성 1호기 폐쇄 등 치밀한 시나리오가 있었다. 우리가 수집한 정보로는 공식 라인에서 이런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시켰지만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섯 달 공사 중단에 대한 손실이 발생했는데?

"한수원이 두산중공업 및 주요 협력업체의 직원 인건비와 자재 보관비 등 1003억원을 보상해줬다. 직접 손실은 그렇다 치고, 6개월간 두산중공업은 한수원에 납품을 못해 1조원가량 유동 자금이 막혔다. 사람으로 치면 피가 안 통한 것이다. 경영 어려움이 컸다."

―만약 공론화위원회에서 공사 중단 결론이 났으면?

"신고리 5·6호기는 4조원 규모 사업이었다. 그게 날아갔으면 두산중공업은 문 닫아야 했다. 재개할 수 있어 한숨은 돌렸지만, 원래 해오던 공사를 못 하게 했다가 다시 해주는 걸 고맙다고 할 수는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미 규제 기관에서 통과한 설계안을 변경하라고 요구했다. 설계안 변경부터 추가 경비였다. 철근을 5개에서 7~8개 넣으라는 식이었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불필요한 공사를 더 해야 했다. 그때 분위기에서 민간 기업이 어떻게 다른 소리를 내겠나."

―대통령의 법적 권한에 민간 기업의 진행 사업에 대한 중단 검토 지시가 들어 있다고 보나?

"전력수급기본계획이란 연도별로 전기 수요와 공급 등을 어떻게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는 법정 계획이다. 이에 따라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중이었고, 신한울 3·4호기는 예정돼 있었다. 법으로 정해놓은 원전 계획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뺄 권한은 없다고 본다. 직권남용이 아닌지 반드시 소송을 할 것이다."

―정말 시한폭탄은 '신한울 3·4호기' 백지화라고 들었다. 건설 예정지인 울진은 이에 맞춰 도시 발전 계획을 세워놓았다가 낭패를 봤는데?

"두산중공업도 신한울 공사 계획에 맞추려고 주요 기자재를 외국 업체에 미리 발주해놓았다. 4900억원 상당 투자가 이뤄졌다. 제작해놓은 기자재 보관 비용까지 합치면 백지화될 경우 매몰비용이 7000억원 발생한다."

―이런 손실 부분은 원전 사업 발주자인 한수원에 청구해야 하나?

"한수원이 사업을 취소하면 두산중공업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수원의 공식 입장은 '보류 상태'다. 두산중공업에 '아직 사업 취소 결론이 안 났으니 기자재를 보관하고 있어라'라는 식이다. 당초 한수원은 신한울 3·4호기의 사업성을 판단해 짓기로 했고 정부 승인을 얻었다. 지금 와서 한수원 이사회가 취소 결정을 하면 손실액에 대한 배임 문제가 걸린다."

―문 대통령의 '백지화' 선언 이후 정부 방침이 이미 한수원에 통보된 것 아닌가?.

"정부는 책임질 그런 공문을 보내지 않는다. 신한울 원전 백지화는 한수원 자체 결정으로 떠미는 것이다. 한수원은 중간에서 덤터기를 다 덮어쓴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한수원에서는 차라리 두산중공업이 소송을 걸어주기를 내심 바란다. 그러면 정부에 책임을 미룰 수 있고, 소송에 져 보상하더라도 배임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이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되지 않나?

"소송하면 손해보상은 받겠지만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포기하는 것이 된다. 이 공사를 기다려온 수백여개 협력업체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취임 한 달 때 '탈원전 선언'을 하는 문 대통령. /조선일보 DB
―작년에 한수원 이사회는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도 결정했다. 취임 초 문 대통령이 "설계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를 가동해온 것은 선박 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성 1호기는 7000억원 들여 핵심 부품과 설비를 다 교체한 뒤 연장 심사를 통과했다. 무지에서 비롯된 대통령의 한마디에 7000억원이 날아가버린 것인데?

"새 차를 사는 것보다 고쳐서 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두산중공업으로서는 원전 수명을 연장하는 국내 첫 사업이었다. 멀쩡한 원전을 그만 돌리라고 하니… 모든 손실은 한수원에 떠넘겨졌다."

―현 정부에서는 22조원 규모 영국 원전 수주도 이상하게 깨졌다. 영국 원전 사업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한전이 선정된 2017년 말, 바로 그날 밤 조환익 한전 사장이 사임했다. 8개월쯤 지나 한전은 우선 협상 대상자 지위를 잃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조환익 사장이 청와대와 교감 없이 영국 원전 수주를 너무 빨리 완수해버렸다. 언론에 조 사장의 작품으로 보도되자, 청와대에서는 '문 대통령의 공(功)으로 돌아가야 할 영국 원전 수주를 한전 사장이 갖고 갔다'며 굉장히 언짢아했다. 조 사장 관련 정보 보고가 청와대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런 기류를 아는 김종갑 한전 사장은 '22조원짜리 영국 원전 투자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그런 투자 리스크가 있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

"영국의 담당 장관이 방한해 '수익 보장 방식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며 적극적이었지만 이미 물 건너간 뒤였다. 정부에서 '신중하게 협상하라'고 하면 공기업이 왜 눈치를 못 채겠나.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 우리 원전을 짓는다는 것은 상징성이 컸다. 국익을 저버린 사건이었다고 본다."

―작년 말 문재인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로 떠나면서 경유지로 체코 프라하를 택했다. 청와대는 '원전 세일즈를 하러 가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체코 원전은 오랫동안 말만 있었을 뿐 사업 계획이 확정된 적은 없었다. 방문일에는 체코 대통령의 외유 일정이 잡혀 있어 정상 만남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체코 방문은 김정숙 여사의 프라하 관광을 위해서라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청와대에서 '원전 세일즈 방문을 하니 준비해달라'고 통보가 왔을 때 우리의 첫 반응은 '왜 체코냐?'였다. 체코는 '원전 세일즈'를 이슈로 방문할 나라는 아니었다. 체코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사전 보고된 상태였다. 어쨌든 우리는 현지에서 문 대통령과 자리를 위해 체코 원자력 관계자들을 사정해 모았다. 나중에 체코 관계자들이 '너희 대통령이 왜 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방문 뒤로 체코와 원전 관련 논의는 전혀 없었다."

―현 정권에서는 UAE 바라카 원전의 장기 정비 및 서비스 계약도 무산됐다. 최소 3조원 손실에 맞먹는다고 들었는데?

"원전은 40~60년 가동되기 때문에 정비·유지·보수 같은 서비스 사업이 따른다. 원전을 짓는 것보다 여기서 더 수익이 남는다. 이명박 정권 시절 바라카 원전 1~4호기를 수출하면서 서비스 사업도 우리가 맡는 걸로 돼 있었다. 하지만 현 정권이 이명박 정권의 적폐를 척결한다며 바라카 원전 건설 계약 당시 군사 협력 부문과 관련된 이면계약을 들춰 난리가 났고 여기에다 탈원전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현지로 가서 무마해 관계 복원이 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군사 협력 부문을 복원했지만 UAE의 신뢰를 잃은 것은 사실이다. 바라카 원전 운영 회사의 CEO는 우리 쪽에 '바라카 원전은 앞으로 60년을 돌려야 하는데 탈원전으로 전문 인력과 원전 부품 공급이 어려워질 한국에 어떻게 다 맡길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맞는 지적이었다. 탈원전 이후로 대학 원자력공학과에 지원하는 학생이 없어졌다. 바라카 원전 서비스 사업자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 3개국 회사에 5년간 나눠주는 식으로 바뀌었다."

―두산중공업의 원전 부문 공장 가동률은 내년에는 10%로 떨어질 것이라고 들었다. 전 직원 6000여명 중 과장급 이상 2400여명에게 순환 휴직을 통보하고, 250여명은 관계사로 전출했다는데?

"진짜 문제는 협력업체다. 원전을 지을 때 기자재 제조 업체 450개와 공사 전문 업체 150개가 참여한다. 업체당 평균 고용 직원을 40명으로 잡고 부양가족을 계산하면 2만4000가구의 생존과 직결된다. 이들 삶이 파괴된다는 뜻이다."

민란(民亂)이 안 일어나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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