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전시회를 하면서도… 생전의 아내는 오라고 하지 않았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11.30 03:00 수정 2019.12.02 10:00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일러스트= 이철원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저 B대학의 M교수입니다. 며칠 전에 전주에 갔다가 여산재(餘山齋)에 들렀다 왔습니다. 선생님의 시비(詩碑)가 있다고 해서요"라는 인사였다. "거기에 내 시비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제막식에 참석한 대학 선배가 권해서 다녀왔다는 것이다.

여산재는 국중하 회장이 실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지역 문학인들을 위해 건립한 문화 공간이다. 녹음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골에 산장과 강당을 지었다. 주변 숲속에는 여러 시인과 저명인사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문예인들의 모임도 있고 문학 강연이 개최되기도 한다.

설립자 국 회장이 2년 전부터 내 시비를 세우고 싶으니까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여러 분 시비 속에 끼어들면 부끄러워질 것 같기도 해 사양해왔다. 국 회장의 인품과 성의를 끝까지 거절할 수가 없어, 시가 못 되는 짤막한 글을 보냈는데 그것이 시비가 된 것이다. 지난 6월 초 제막식 때는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참석한 것으로 그 일이 마무리된 셈이었다.

그런 사연이기 때문에 나는 M교수에게 "내 시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여러 시인의 명예에 누가 되지는 않았어요?"라고 물었다. "아닙니다. 같이 갔던 아내가 '김 교수님의 시비와 글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하던데요"라는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아내 생각이 떠올랐다. 50대의 아내가 친구들과 같이 서예 공부를 시작했다. 아내의 소질을 잘 알고 있어서 별로 기대는 갖지 않았다. 1년쯤 지나면 동우 회원들의 전시회가 있을 듯싶은데 아무 소식도 없었다. 또 한 해가 지났을 때였다. 뒷집 이한빈 선생 사모가 "교수님은 사모님 전시회에 나오지 않으시나요?"라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까 아내가 자신의 작품이 창피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숨겨 넘길 심산인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내일은 시간이 있으니까 오후 3시에 광화문 전시장에서 만나 당신 작품도 감상하자"고 제안했다. 아내는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할 수 없다고 단념하는 표정이었다. 전시장에서 작품들을 보다가 내가 "저쪽의 당신 것을 먼저 보자"고 앞장섰다. 노력은 했으나 역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생각한 것보다 좋은 작품인데요. 다른 글씨들은 다 비슷비슷한데 당신 글씨는 개성이 뚜렷해서 생명력이 있어요"라고 칭찬해 주었다. "2~3년만 더 노력하면 예술성도 풍부해지고 서예가로도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고 위로도 해주었다. 뜻밖의 칭찬에 아내도 만족한 모양이다. 내 감상력은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날 저녁 식탁에서 아내가 "너희들도 엄마 전시회에 가볼래?"라고 권했다.

그 액자를 찾아보았다. 어느 방에 걸려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안 보인다. 미국에 사는 딸이 가져다가 걸어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선일보 B2면
트래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