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만두보다는 부리토나 피자를 먹었어야 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입력 2019.11.30 03:00

[아무튼, 주말- 이용재의 필름위의만찬]

14. '올드보이'의 군만두

영화 ‘올드보이’ 한국 원작(2003년) 주인공 오대수와 미국판(2013년) 주인공 조는 기나긴 감금 동안 군만두를 물리게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서 군만두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미국에선 전문 중식당에서 나오는 별식에 가깝다. 그렇기에 미국판 주인공은 미국에서 군만두보다 일상적인 음식, 그러니까 피자나 햄버거, 부리토 따위를 먹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영화 캡처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올드보이’ 한국 원작(2003년) 주인공 오대수와 미국판(2013년) 주인공 조는 기나긴 감금 동안 군만두를 물리게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서 군만두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미국에선 전문 중식당에서 나오는 별식에 가깝다. 그렇기에 미국판 주인공은 미국에서 군만두보다 일상적인 음식, 그러니까 피자나 햄버거, 부리토 따위를 먹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영화 캡처
군만두의 새로운 가능성은 의외로 수퍼마켓 시식 코너에서 맛보았다. 바닥은 바삭바삭하게 지졌지만, 만두피의 나머지 부분은 부드러운 군만두. 열 살쯤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신기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 만두를 일단 삶은 다음 바닥만 다시 한 번 지지는 걸까? 전문가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시식 코너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프라이팬에서 굽다가 물 조금 붓고 뚜껑 덮어 마무리'라는 비법을 알려주었다. 세상에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라면으로 조리에 입문한 지 1년쯤 지나 불이 두렵지는 않았던 나는 이후 열심히 냉동 만두를 구워 먹었다. 팬에서 굽다가 물 조금 붓고 뚜껑 덮어 마무리.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조금 과장을 보태 한 트럭 분량쯤의 만두를 먹었다.

그런데 모두가 아는 것처럼 진짜 군만두의 세계는 사실 따로 있다. 영화 '올드보이'(2003)에서 오대수(최민식)가 15년이나 선택의 여지 없이 먹어야 했던 중국집 '야끼만두'의 세계 말이다. 다만 신나게 냉동 만두를 구워 먹다가 음식평론가가 된 내가 조리법을 따져보자면 그건 튀김 만두라고 보아야 한다. 기름에 튀기듯 전체를 익혀 부드러움 없이 바삭함만 목소리를 내며 피 또한 그런 조리법에 견디도록 제법 두툼하다. 물론 이 만두 또한 얇은 접이형 나무 도시락에 일단 자리를 잡고 종이 쇼핑백에 담긴 채로 내 음식의 추억 가운데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15년 동안 줄곧 먹어야만 한다면? 군만두 생각만 해도 조건반사로 구역질이 날 것만 같다. 하지만 오대수는 먹는다. 살아야 하니까. 이유도 모르고 갇혀 있다는 현실 자체만으로도 죽을 맛인데 음식도 선택하지 못한다면 돌아버리지 않을까? 영국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저서 '철학이 있는 식탁'에서 질리지 않고 매일 되풀이해 먹을 수 있는 일상 음식의 소중함을 말한다. 이를테면 아침에 큰 메뉴 고민 없이 금방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오믈렛 같은 음식이다. 그나마 이런 음식은 스스로 되풀이해 먹기를 선택했으니 언제라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설사 아니더라도 다른 끼니에는 또 다른 음식이 기다리고 있어 압박이 없다. 하지만 선택 의지마저 없애 버린다면? 오대수는 1950년대생이니 군만두를 애정했을 가능성이 아주 큰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고통받았을 것 같아 영화 속 설정에 공감할 수 있다. 극단적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로 남아 고통을 안기는 설정 말이다.

그런데 미국판 '올드보이'(2013)에 등장하는 만두의 사정은 사뭇 달라서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정황이 한국판처럼 극단적이지 않다. 끼니마다 다른 음식이 나오는 가운데 저녁 메뉴가 바닥만 지진 자오쯔(餃子), 즉 군만두이다. 매일 한 끼만 먹기 때문에 한국판의 15년보다 5년 더 조(조슈 브롤린)를 가둬둔 걸까? 하루 한 끼로는 15년 먹어 봐야 음식점을 특정할 수 없으므로 미각을 다듬으라며 20년으로 형기를 늘린 것은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너그럽게 원작인 일본 만화를 참고한 게 아니냐고 생각해 줄 수는 있다. 원작에서는 다른 음식을 먹이는 가운데 '서비스'처럼 군만두가 등장한다. 원작 만화에서는 미리 빚어 놓고 조리만 하면 되니 조리사에 따라 맛이 달라질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채택되었으며, 기본으로는 여느 일본풍 중식을 먹였다.

설사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미국판에서 군만두는 마치 눈엣가시처럼 못마땅하고 또 거치적거린다. 무엇보다 이 음식이 보통의 미국인 대다수에게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미국의 중국 음식이란 종이 상자에 담긴 배달 음식(볶음 중심)과 포천 쿠키 위주고, 만두는 딤섬의 일부로 좀 더 전문적인 음식에 속한다고 보아야 맞는다.

음식에 결정적 역할을 부여하려면 좀 더 미국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굳이 프랜차이즈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치즈버거나 피자 같은 음식도 괜찮고, 멕시코에서 넘어와 이제 완전한 미국 음식이 된 부리토(밀이나 옥수수 전병인 토르티야에 밥과 고기 등을 채워 둘둘 만 음식)도 좋다. 아니면 대중식당인 다이너(diner·우리로 치자면 밥집)에서 파는 팬케이크나 애플파이도 좋다. 전체적으로 한국판과 꽤 거리를 둔 설정인데 왜 굳이 만두만을 고집했는지 의문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들춰보자면 만두가 못생겨서 더 안타깝다. 한국판의 군만두는 튀겨서 전체가 그야말로 '각이 나온다'. 그래서 15년은 너무 가혹하지만 적어도 처음 얼마 동안은 그냥저냥 견디고 먹을 만할 것 같다. 하지만 미국판 '올드보이'에 나오는 자오쯔는 지진 바닥 외 부분이 이미 쭈글쭈글한 상태로 옹기종기 모여 있어 처음부터 먹기 싫을 정도로 맛없어 보인다. 대강 만든 미국의 배달 중국 음식의 한계를 충실하게 드러낸다. 게다가 군만두에서 시야를 좀 더 넓히면 교련복을 입은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세계가 돈 있는 자제들을 위한 '프렙스쿨(prep school·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바뀌었다든지, 전반에 걸쳐 한국판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조악함 속의 절실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번역이 잘못된(lost in translation) 느낌이랄까.

어쨌든 두 영화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군만두인데, 요즘이라면 밥값을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군만두라는 음식 자체의 존재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서 탕수육의 '서비스'로 전락해버려 돈 주고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대부분이 공장제로 대체되었다. 이런 현실이라면 오대수가 15년은 고사하고 150년 동안 먹으며 군만두에 관한 미각을 발달시켜도 음식점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물론 그전에 늙어 죽겠지만). 영화적 개연성 자체가 떨어져 버리니 소재로 쓰이지 못할 거라는 말이다.

요즘은 가뭄에 콩 나듯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만두를 직접 빚는 중식당도 "서비스로(공짜로) 달라"는 방문자의 강짜에 시달리거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메뉴에서 없애버리고 만다. 오대수는 15년, 조는 20년 만에 풀려났지만 군만두는 '서비스'라는 선입견의 감옥에서 풀려날 기약 없이 갇혀 있다. 
조선일보 Y4면
트래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