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니멀 룩'의 원조… 원단 길이 2㎜ 두고도 싸웠죠

최보윤 기자
입력 2019.11.29 03:01

20주년 맞은 '앤디앤뎁' 디자이너 김석원&윤원정

"기자도 친구도 빼놓지 않고 묻죠 '어떻게 부부가 종일 같이 일하냐'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돼요, 하하"

이 부부, 좀체 붙어 서 있지 않는다. 사진 촬영을 위해 가까이 있어 달랬더니 "웨딩 촬영 같아 서로 싫어한다"며 손사래다. 올해 20주년인 패션 브랜드 '앤디앤뎁(Andy&Debb)'의 김석원(49)·윤원정(49) 디자이너. 브랜드 로고의 '&'처럼 둘 사이 적당한 공간이 늘 있어 왔고, 떨어진 거리만큼 대등한 두 주체를 인정해 달라는 얘기였다. 둘 다 미국 유명 예술대학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뒤 결혼, 뉴욕에서 2~3년씩 활동하다 1999년 앤디앤뎁을 선보였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기 전부터 단아하면서 깔끔한 재단으로 여성들을 열광시켰다. 흑백으로 조화를 이룬 치마와 블라우스로 대표되는 '청담동 며느리룩'은 앤디앤뎁 스타일을 가리키는 말. 2008년엔 뉴욕 컬렉션 무대에도 진출했다. 무채색의 간결함은 앤디 김석원을 닮았고, 부드러운 파스텔톤과 리본의 여성미는 뎁 윤원정 손길이다.

김석원·윤원정 디자이너 부부는 “과거엔 해외 진출만이 이름을 알리는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서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만으로도 해외 바이어들이 찾아오는 시대가 됐다”며 “패션부터 미식까지 지속적인 자극으로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석원·윤원정 디자이너 부부는 “과거엔 해외 진출만이 이름을 알리는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서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만으로도 해외 바이어들이 찾아오는 시대가 됐다”며 “패션부터 미식까지 지속적인 자극으로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5㎜, 7㎜ 재단 차이를 두고 핏대 올리고 싸우던 게 셀 수가 없죠. 리본 모양서부터 칼라를 어느 정도 크기로 할까, 단추를 두 개 달지 세 개 달지 으르렁대기 일쑤였으니까요. 뉴욕 데뷔 때 현지 기자들도 '어떻게 부부가 함께 일하지?'란 질문을 빼놓지 않더군요. 중년이 되니 친구들도 물어요. 어떻게 종일 서로에게 코 박고 일하냐고, 하하! 서로 많이 바라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면 돼요."

노라노·진태옥 등 1세대 디자이너 브랜드에 이어 현재 40~50세 정도의 2세대 디자이너군에서 앤디앤뎁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대기업에 인수되지 않고 독립 브랜드를 유지하며 여전히 유명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거의 유일한 브랜드다. IMF가 한창인 1999년 브랜드를 여는 등 초반부터 '자산가'란 소문도 돌았다. "비즈니스 감각은 떨어지고, 소재에 대한 욕심은 대단해 고작 매장 하나인데도 최고급 원단을, 그것도 500벌 만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을 덜컥 주문하곤 했지요. 누구의 자제라느니 별별 소문이 돌았더군요. 대금 결제일 앞두고 홀로 한강을 찾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고민한 적도 있는데 말이죠."

앤디앤뎁 의상을 입은 배우 겸 가수 손담비(왼쪽부터), 서현, 산다라 박. /앤디앤뎁

셈법에 약하고 감성만 풍부했던 30대의 어설픔과 허술함을 '숫자'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해외시장에 뛰어들고, '뎁'(2012)과 '콜라보토리'(2016)라는 세컨드 브랜드를 내놓고 홈쇼핑, 온라인 시장도 도전했다. 최근엔 20주년을 맞아 '&' 로고를 딴 가방도 출시했다. "고가 제품만 다루다 가격을 낮추고, 원가 대비 성능은 좋게 만들어 최저가로 선보여도 그 밑에 더 저렴한 시장이 또 있더라고요. 마치 블랙홀처럼. 살아남으려면 배워야 할 것투성이였지요."

부부는 대학생 아들도 인정할 만큼 트렌드에 빠르다. '청담동 트렌드 레이더'가 별명인 김석원 디자이너는 2017년 출시 한 달 만에 7만개가 팔린 요괴라면을 만든 '옥토끼프로젝트' 멤버로 지난 3월엔 종로에 감성 편의점 '고잉메리'를 열었다.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만든 요리와 식자재, 그릇을 올리며 '데비스 키친' 이름을 붙인 윤원정 역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해 달라는 요청을 수시로 받는다. "앤디앤뎁 시작할 때 태어난 아이가 얼마 전 군대에 갔어요. 치열하게 집중하느라 세월을 몰랐는데, 이제야 시간의 흐름을 느끼네요. 저희도 어느덧 엄마와 딸이 함께 입는 브랜드가 됐고요. 해외 브랜드에 치이지 않는 우리만의 가치를 지켜주고 싶어요."


조선일보 A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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