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총리 3년간 샅샅이 뒤졌다… 이스라엘 검찰, 네타냐후 기소

이건창 기자
입력 2019.11.23 03:00

20만달러 수뢰 등 3개 혐의 적용… 聯政 구성 등 정치적 고려 안해
네타냐후 "뇌물? 난 몰랐다, 가족이 받았다… 기소는 쿠데타 시도"

/EPA 연합뉴스
총 13년간 장기 집권한 이스라엘의 스트롱맨 베냐민 네타냐후(70·사진) 총리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현직 총리가 기소된 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네타냐후가 10여년에 걸쳐 받은 금품의 액수는 20만달러, 한화 2억3500만원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3년간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면서 갖은 압박에 시달렸지만, "사건과 관련된 돌멩이 하나까지 뒤졌다"는 팩트의 힘 앞에 최고 권력자도 속수무책이었다.

이스라엘 검찰이 21일(현지 시각) 총 63쪽짜리 공소장에 적시한 네타냐후의 혐의는 뇌물, 사기, 배임 세 가지다. 우선 네타냐후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친분 있는 이스라엘계 영화 제작자 아넌 밀천, 호주의 미디어 거물 제임스 페커 등으로부터 미국 비자 연장 등 개인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프랑스산 돔페리뇽 샴페인, 쿠바산 최고급 파르타가스 시가, 보석 등을 수시로 받았다. 퍼스트레이디인 사라 네타냐후가 "마시던 샴페인이 다 떨어졌다"는 식으로 밀천·페커에게 연락하면 물품이 총리 관저로 배달됐다고 한다. 확인된 뇌물 총액은 20만달러 정도였다.

또 네타냐후는 2014~2017년 대형 통신사 베제크의 지배주주인 샤울 엘로비치에게 5억달러(약 6000억원) 상당의 규제 완화 혜택을 주고, 그 대가로 베제크의 온라인 뉴스 계열사를 통해 네타냐후 자신을 옹호하고 정적(政敵)을 비판하는 기사를 수백 건 내보내도록 요구한 혐의도 받는다. 2015년 총선을 앞두고는 이스라엘 최대 판매 부수를 보유한 유력 일간지 발행인에게 경쟁사 발행 부수를 제한하는 대가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싣도록 하는 뒷거래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로써 이스라엘 경찰과 검찰이 2016년부터 시작한 수사가 거의 3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먼저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총리 관저에까지 여러 차례 찾아가 네타냐후를 직접 신문하는 등 14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지난해 2월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검찰은 1년 만인 올 2월 기소 방침을 결정하고 지난 10월까지 네타냐후 측 변호인단의 의견을 듣는 등 마지막까지 전력을 기울여 수사했다. 아비차이 만델블리트 검찰총장은 "현직 총리를 기소하는 것에 마음이 무겁지만 진심을 다해 발표한다"면서 "수사는 광범위한 증거와 증언에 기초해 전문적으로 이뤄졌으며, 돌멩이 하나까지 샅샅이 살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뇌물에 대해 "모두 가족이 받았으며 나는 몰랐다" "대가성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이 반박이 먹히지 않자 지난 3년간 계속 "수사는 마녀사냥"이라며 경찰과 검찰을 압박했다. 나중엔 "내 언론 보좌관이었던 핵심 증인이 조사 과정에서 경찰에게 협박을 당했다"면서, 수사가 편파적이며 인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흠집을 냈다. 네타냐후는 21일 기소 직후 방송 연설을 통해 "기소는 쿠데타 시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거짓말이 승리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며 되레 "(무리한 수사를 한) 수사관들을 조사해 봐야 한다"고 했다. 만델블리트 검찰총장은 이날 기소 발표 회견에서 "검찰의 수사 결과가 틀렸다는 인상을 주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수사와 관련된 사람들을 헐뜯으려는 시도를 계속 목격했다"고 했다.

이번 검찰의 기소는 이스라엘 주요 정당들의 연정 구성 법정 시한 바로 다음 날 전격 이뤄졌다. 전날인 20일은 네타냐후 총리가 9월 총선 직후 연정 구성에 실패하고 뒤이어 바통을 넘겨받은 원내 1당인 청백당 측도 연정 구성에 실패해 권한을 의회로 돌린 날이었다. 이번 기소로 네타냐후는 연정 구성에서 주도권을 쥐기에는 치명타를 입었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기소는) 좌파 혹은 우파 정치의 문제가 아니며, 법 집행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현직 총리에 대한 기소를 발표하기에 민감한 시점인데도 정치적 고려 없이, 철저히 수사 시간표대로만 움직였다는 것이다.

네타냐후는 유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총리직에서 물러날 의무는 없다. 그는 "법이 요구하는 대로 이스라엘을 계속 이끌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부패 혐의 기소는 이스라엘 여론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지난 9월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신생 청백당에 밀려 원내 제1당 지위 확보에 실패했다. 10월엔 이스라엘 국민 절반 이상이 '네타냐후가 즉각 사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의회가 연정 구성에 성공하더라도, 법정 싸움을 해야 하는 그를 총리로 선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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