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공원·도서관… 사람들이 만나도록 도시를 설계하라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입력 2019.11.23 03:00

학교·수영장·미용실·교회 등 주민 친목 쌓는 시설 갖춘 지역… 재난시 1인 가구 사망률 더 낮아
도서관에 노인 댄스교실 여는 등 단절 극복할 인프라 조성해야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서종민 옮김|웅진지식하우스|372쪽|1만7500원

분열과 그로 인한 파편화는 우리 시대의 삶을 규정하는 단어다. 세상은 소득·이념·세대·종교·인종에 따라 나뉘고 반목한다. 생애 미혼과 이혼, 사별 등으로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혼자 살고 있다. 65세 이상 미국인 4분의 1이 독거 노인이란 통계도 있다. 사회적 고립은 비만이나 흡연 못지않게 건강을 위협한다. 위험 수위에 이른 마약 남용과 자살, 고독사는 사회적 고립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는 경고다.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인을 고립에서 구출할 방법 찾기에 나섰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를 덮친 폭염은 살인적이었다. 1주일 만에 주민 739명이 목숨을 잃었다. 과학자들이 분석해보니 1인 가구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의 희생이 컸다.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과 가장 낮은 지역이 모두 가난한 흑인 거주지였다. 시카고 엥글우드에선 10만명당 33명이 사망했는데, 오번그레셤에선 3명만 희생됐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동일한 두 지역의 사망률 차이를 낳은 것은 '사회적 인프라'의 유무 여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적 인프라는 저자가 제안한 새로운 개념으로, 사람이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물리적 공간과 조직을 뜻한다. 저자는 도서관, 학교, 수영장, 공원, 카페, 이발소, 미용실, 종교시설, 독신자가 모여 사는 공용주택 등을 사회적 인프라로 명명한다. 사람이 모이도록 유도하는 건축설계나 도시계획도 여기에 포함된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리틀 이탈리아에 있는 노천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는 시민들. 도심 노천 식당과 카페는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사회적 인프라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에선 인맥 형성이 촉진되지만, 낙후한 곳에선 개인이나 가족이 각자도생의 전쟁터로 내몰린다. 저자는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이 사회적 인프라 조성엔 나 몰라라 하면서 재난이 터지면 시민정신의 부재만 탓한다고 꼬집는다. 시카고 폭염 사태 당시 시카고 시청은 이웃을 돌보지 않은 엥글우드 주민들을 비난했다. 반면 저자는 엥글우드에선 희소했고 오번그레셤에선 풍부했던 사회적 인프라를 주목한다. 오번그레셤은 주민들이 걸어서 갈 식당과 공원·이발소·식료품점이 활성화됐고, 반상회와 교회가 친목회 노릇을 했다. 이 평범한 사회적 인프라가 재난 사태에 힘을 발휘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고립에서 탈출하려면 사람이 아니라 도시의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워싱턴DC를 흐르는 포토맥강에 사람이 모여들게 된 것은 주민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강둑에 숲과 오솔길을 만들어 산책로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프라가 '모든 이의 궁전' 노릇을 해야 사람들은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서 주차장에 농구대를 설치하면 청소년을 위한 궁전이 된다. 책만 빌려주던 도서관이 댄스 교실을 열고 볼링대회를 개최하면 노인을 위한 궁전이 된다. 아이 키우느라 사회와 격리됐던 여성이 선배 엄마들로부터 좋은 베이비시터 정보를 귀동냥하는 궁전도 된다.

주택 단지를 조성하거나 학교를 설계할 때도 사회적 인프라 개념을 적용하자고 한다. 대규모 단지나 대형 학교보다 소규모 단지, 작은 학교가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유리하다. '뉴욕 최악의 학교 10'에 늘 들었던 수어파크 고교는 2006년 5개의 특성화된 소규모 학교로 재편된 후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유대가 단단해지며 졸업률이 32%에서 80%로 수직 상승했다.

범죄를 줄이려면 빈집을 없애는 공간 개선에 나서라는 지적도 참신하다. 감옥 지을 돈으로 사회적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이 한정된 재원을 슬기롭게 쓰는 방법이다. 경로당과 공동체 텃밭을 조성하면 집 안에 칩거하던 노인을 사회로 복귀시키고, 소일거리도 주며, 민간 경찰관 역할도 맡기는 '일석삼조' 효과를 볼 수 있다.

오늘날 배짱 맞는 사람끼리 묶어주는 결속적 사회자본은 증가하지만, 나와 처지가 다른 이를 포용하는 교량적 사회자본은 약화하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소셜미디어는 친구 사이에도 사회적 거리를 만들어 낸다. 단절을 극복하는 임무는 공공 부문이 맡아야 한다. 문제는 공공 부문의 비효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인데, 깨어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책에 열거한 참신한 제안들에 비해 좀 실망스럽다.



조선일보 A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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