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마크롱과 프랑스 세대교체 이룬 한인 2세 장관 "한국적 성실함이 나의 힘"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11.23 07:00 수정 2019.11.25 09:22
한인 2세, 세드리크 오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
마크롱 최측근 관료로 프랑스 경제 혁신 주도
"미·중 IT 패권 대항 위해 한국·프랑스 연합해야"
"앙가주망 정신으로 정치 입문, 임기 후 내려놓을 것"
동생 델핀 오와 함께 유럽 내 친한파 정치 거물로 인정
"한국인 아버지의 엄격한 한국식 교육받고 성장했다"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 세드리크 오(Cedric O, 한국이름 오영택. 37세). 마크롱의 IT브레인이자 최측근이다. 이순신 장군과 드골 장군을 존경한다./사진=고운호 기자
잿빛 슈트에 잉크색 슬림 타이를 맨 매력적인 젊은 정치인이 빠른 보폭으로 호텔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 전도유망한 프랑스 정치가는 아버지의 나라이자, 자신의 애국심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 나라의 정부 관료와 기업 리더들을 만나기 위해 며칠째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인터뷰 시간에 맞춰 차에서 뛰다시피 왔지만, 숨을 고르는 잠깐 사이에도 다갈색 눈은 흔들림이 없이 맑고 표표했다.

세드리크 오(37세).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 올랑드 사회당 정부 시절, 뜻을 함께한 젊은 마크롱과 함께 새로운 정당(현재 집권당인 앙마르슈)을 만들고,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청렴하고 성실한 최측근. 파리의 집무실엔 "처음부터 내 곁에 있어 줬고, 앞으로도 계속 나와 함께할 세드리크, 고맙다"라는 마크롱의 자필 메모가 붙어 있다.

그는 대통령의 IT브레인이자, 정권 교체와 세대교체를 동시에 이뤄낸 프랑스의 젊은 피로, 매일 늦게까지 야근하며 프랑스의 점진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사실, 나는 세드리크 오를 만나기 전에 서울에서 그의 아버지 오영석 박사(카이스트 초빙교수)를 먼저 만났다. 화이트 슈트에 붉은 머플러를 하고 CICI 파티에 등장했던 그의 아버지 오영석은, 튀는 비주얼만큼이나 독창적인 삶을 살았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미사일 개발을 연구하던 오 박사는 리옹으로 건너가 유학하면서, 프랑스 여인과 결혼, 세드리크 오와 델핀 오 남매를 낳았다.

세드리크는 마크롱 내각의 디지털 경제장관, 여동생 델핀은 프랑스 하원의원을 거쳐 현재 ‘UN 여성포럼’ 사무총장이다. 한국인 2세 남매의 성공은 프랑스 엘리트 공직 사회에서도 유명하다.

오 박사는 "자녀들이 성공한 것보다 프랑스 사회에서 인격이 훌륭하다는 말을 들을 때 자랑스럽다"고 했다. 교육 철학은 담백했다. "당시 리옹의 집엔 TV가 없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많이 읽고 대화했으며, 뇌의 휴식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죠." 오 박사는 프랑스 아내와 이혼 후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들 가족은 중요한 모임마다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를 기념하곤 했다. 지난 아버지 칠순 모임에서 오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엘리제궁 방문을 언급했다. 젊은 날 아버지가 프랑스로 오지 않았더라면, 문 대통령과 마크롱의 만남을 준비하는 그런 명예로운 자리에 자신은 없었을 거라는 축사였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이 문대통령 내외 옆에 세드리크, 델핀 오 남매를 불러서 직접 사진을 찍어준 일화는 유명하다.

입양아 출신의 프랑스 장관들이 "나는 뼛속까지 프랑스인"이라고 선을 그은 데 비해, 그는 두 나라에 걸친 자신의 정체성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공식 일정 외 이번 방문의 숨은 목적은 갓 태어난 둘째 아들의 백일잔치를 서울의 가족과 함께 치르는 것. 장관 취임 후 첫 방한이었다.

2017년 5월, 마크롱 대통령 취임식 때 세드리크 오 가족이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했다. 오른쪽은 세드리크의 아내 베랑제 오.
-이제까지 프랑스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은 한국인 2세들은 입양아 출신이었어요. 한국인들은 그들의 성공에 열광했지만, 그들에게 프랑스는 관용 있는 열린 사회, 한국은 가난했던 미지의 모국으로 기억되더군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저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인입니다. 하지만 한국적인 인성을 갖고 있죠. 그건 제게 무척 소중해요. 제 아버지는 매우 강인하고 다정했고, 우리 남매는 명절엔 한복을 입었어요. 제 아이들에게도 한국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결정도 ‘한국을 방문하자’였어요(웃음)."

-왜죠?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실 테니까요. 단언컨데 아버지가 한국 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장관이 되지 못했을 거예요. 프랑스에서 저는 한국 사내아이처럼 자랐어요. 엄격한 한국식 교육을 받았죠. 잘못을 하면 매도 맞았어요(웃음). 성실성과 독립성이라는 가정 교육의 바탕에, 분석력과 창의력이라는 프랑스식 교육이 결합해서 지금의 제가 됐습니다. 저는 좀 놀기 좋아하고 게을렀는데, 아버지는 규율을 강조했고 성적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더불어 생명 있는 개체를 존중하라고 가르치셨죠."

아버지는 아들이 20대 청년이 되어 외출할 때도 당신이 정한 십계명을 복창하고 나가도록 했다.

‘생명을 존중해라. 여성에게 예의를 갖춰라.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라. 천식이 있으니 담배를 삼가라. 싸움에서 물러나지 말되 싸움을 걸지 말아라. 전염병에 걸리지 않게 청결을 유지해라' 등등.

-아버지를 존경했나요?

"그럼요.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어요. 그래서 당신이 원했던 아버지 상을 제게 보여주려고 하셨죠. 무척 엄했지만, 잠들 때까지 한국 동화를 읽어주셨어요."

한국과 프랑스.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두 나라는 세드리크 안에서 어떻게 충돌 없이 조화를 이룬 걸까. 그의 아버지인 오영석 박사는 미사일 무기를 연구한 과학자였고, 그의 외증조부는 군인이었다(드골 장군과 육군사관학교 동기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이순신과 계백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어린 시절 세드리크는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력이 나빠서 포기했다.

어린 시절 군인이 꿈이었던 세드리크 오의 진지한 표정. 이번 방한 목적은 혁신분야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사진=고운호 기자
-어떤 군인이 당신의 우상이었죠?

"이순신 장군과 샤를 드골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놀라운 기술로 거북선을 만들었고, 임진왜란에서 무패의 승리를 거뒀죠. 가슴 뛰는 이야기에요. 드골 대통령은 2차 대전의 패전국이었던 프랑스를 일으켜 오늘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날 UN을 이끄는 국제 사회의 리더 국가로 반전시켰죠. 두 분 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광적인 믿음과 사랑이 있었어요."

-당신의 심장은 두 나라를 향해 뛰고 있군요!

"네. 저의 애국심은 두 개예요. 저에겐 가능한 일입니다."

세드리크는 웃으며 자신의 가슴 부분을 지그시 어루만졌다. 그는 지난 4월 디지털 보좌관에서 디지털 경제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일종의 승진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신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했나요?

"마크롱과 저는 지금의 여당을 함께 창당했어요. 우린 서로를 잘 알고 그는 저의 충직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화자찬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저는 일관성과 꾸준함이 강점이에요(웃음). 더불어 디지털 정책은 효율성이 중요한데, 저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추진력을 갖고 일하고 있지요."

-당신과 마크롱의 순수한 연합은 프랑스 정가에서 이미 유명하더군요. 어떻게 그런 관계로 발전했지요?

"우린 2011년에 처음 만났어요. 올랑드의 대선 캠프에서죠. 그는 올랑드 정부의 경제재정부 장관을, 저는 보좌관을 맡아서 일했죠. 저는 2014년에 정계를 떠났어요. 현장에서 본 기성 정치인들의 모습에 실망했고 염증을 느꼈거든요. 다시 돌아와 마크롱과 손을 잡았던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선은 그의 인간적인 매력 덕분이죠. 그랑제콜 HEC의 학생회 멤버들과 마크롱 대선팀에서 다시 뭉쳤을 때, 우리 사이엔 무조건 ‘이겨야겠다' 정치적 야망보다 세상을 향한 꿈이 있었고 즐거움이 넘쳤어요. 이미 우리에겐 올랑드 팀의 선거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었고, 많은 친구가 정·재계에 진출해 있었죠.

또 하나는 마크롱의 중도 정책이 저의 지향과 일치했어요. 저는 좌파 성향이었지만 프랑스의 경제 개혁을 이끌면서, 중도 우파와 협력을 희망하게 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프랑스의 정치를 혁신적으로 바꾸자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는 거죠."

마크롱은 좌우를 넘어서는 ‘정치 운동'을 일으키며 중도에 깃발을 꽂았다. 경제는 보수, 평등과 이민과 종교 등 사회 현안에 대해선 진보 성향의 깃발이었다.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끼던 프랑스 국민은 세대교체에 동참했다. 마크롱 정부는 시민사회 활동가와 기업인, 교수, 전직 투우사 등 각계의 젊은 피를 정가에 영입했다.

세드리크는 현재 프랑스의 여당의 의원들은 13명 빼고 전부 초선의원이라고 했다. 자유, 평등, 박애의 깃발을 들었던 프랑스 정치는 지금 그 어떤 나라보다 젊고 활기차다.

엘리제궁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세드리크 오(왼쪽)와 국회에서 발언하는 여동생 델핀 오. 델핀 오는 오바마재단에서 선정하는 차세대 유럽 지도자 10인에 뽑혔다.
-모두 잘해나가고 있습니까?

"(진지하게)그건 2년 후에나 말할 수 있겠지요."

어떤 질문에도 단언하기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이 젊은 장관의 기질인 듯 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현재 프랑스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입니까?

"프랑스 사회는 전후 경제 체제를 이어받은 시스템이라 아직 많이 경직돼 있어요. 중산층은 격변하는 세계화의 물결을 압력과 고통으로 느끼고 있죠. 중산층이 이 변화의 혜택을 빠르게 느끼도록 제도를 세팅하는 게 저의 핵심 과제예요. 조금씩 개혁을 수용하는 분위기로 바꾸는 거죠."

기적의 정책은 없다,고 했다.

-디지털 경제부 장관으로 IT, AI, 스타트업, 중소기업 등등 커버해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어떤 것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나요?

"프랑스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분야부터 추진하고 있어요. 가장 먼저 AI, 양자 컴퓨팅, 블록체인 기술을 포함해서 주요 핵심기술에 연구 투자를 하고 있어요. 더불어서 스타트업 생태계도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고요.

일단 그 두 가지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인재를 모으고 있습니다. 투자가 중요해요. 프랑스 나스닥에 관련 증권 시장을 설립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 레이스에서 뒤처지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미국과 중국의 거대 IT기업에 대적할 기술 챔피언 기업을 만드는 건 ‘기술 주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마크 저커버그, 삼성전자의 손영권 최고전략책임자 등을 마크롱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실행에 박차를 가했다. "삼성이 얼마 전 AI 전략혁신센터를 파리에 세웠고, 그 센터를 프랑스인이 이끌고 있습니다. 삼성은 인재를 키우는 선견지명이 있어요."

방한 당시 한불 클럽 회원들과 함께. 이재웅 쏘카 대표, 류진 풍산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정화 CICI 이사장, 필립 르포르 프랑스 대사, 서정호 앰배서더그룹 회장 등 많은 재계 인사가 만찬에 동석했다.
-사실 한국의 IT 파트너가 프랑스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듣고 보니 당신의 전임자였던 전 디지털경제장관 플레르 펠르랭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단일 국가는 미·중의 테크 패권을 앞설 수 없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스타트업 연합군이면 가능하다'고 말이죠.

"맞습니다. 두 나라는 환경은 다르지만, 도전 과제는 같아요. 미국과 중국 기업의 압력에서 기술 주권을 찾으려면 유럽과 아시아가 연합해야 합니다. 한국은 5G와 배터리, 마이크로프로세스 분야에서 월등하고, 프랑스는 AI와 항공우주,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이 없는 기술을 갖고 있어요. 지금이야말로 서로 협력해서 상호 이익을 취해야 할 때죠. 대기업과 벤처 투자자, 스타트업 리더들이 서로 만나야 해요."

마크롱과 세드리크는 손발이 잘 맞았다. 마크롱은 얼마전 2020년까지 AI 붐업을 위해 15억 유로를 쏟아붓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파리 13구 센강 근처에 있는 프랑스판 실리콘 밸리, ‘스테이션 F(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여의도공원 15배 크기다)’에는 그랑제콜을 나온 프랑스의 핵심 두뇌들이 모여들고 있다. 네이버 라인은 이 벤처 구역에 조인했고, 프랑스 투자자도 한국의 스타트업에 관심을 보이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프랑스판 실리콘밸리. 파리 13구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스테이션F. 마크롱은 프랑스가 전 세계 ‘AI허브’가 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당신이 보기에 한국 IT의 가장 큰 힘은 어디에 있죠?

"실행력이죠. 한국의 경제 생태계를 다 알진 못하지만, 놀라운 장점은 한번 결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거예요. 일상에서, 경제에서, 디지털 분야에서 모두요! 특히 한국은 5G 전략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전 세계에서 상용화를 이룬 첫 번째 국가지 않습니까. 이번 방한에서 네이버도 만났는데, 정말 놀라운 기업이에요. 쏘카의 이재웅 대표도 한불 클럽 만찬에서 만나 지혜를 나눌 겁니다."

-내가 듣기론 프랑스 청년들이 대기업보다 IT스타트업에 더 열광한다던데, 사실인가요?

"저는 프랑스 상경대를 대표하는 좋은 학교(HEC)를 나왔어요(웃음). 2006년에만 해도 졸업해서 친구들은 다 골드만삭스나 매켄지에 취업했죠. 지금은 달라요. 그들은 실리콘밸리라는 샘플을 봤고 제2의 마크 저커버그를 꿈꿉니다. 통계를 봐도 18~24살의 프랑스 젊은이 50%가 대기업 취업보다 창업을 원해요. 그들이야말로 디지털 전쟁 시대의 프랑스의 강력한 자원이죠."

-프랑스에서 장관으로 산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즐거움과 괴로움을 안겨 주나요?

"가장 기쁜 건 실행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전에 대통령 보좌관으로 일할 땐 어떤 정책을 제안하거나 조언했지만, 지금은 내 결정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요. (어깨를 으쓱하며)괴로운 건 그 과정이 매우 느리다는 거죠. 행정 결정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느립니다(웃음)."

카이스트 초빙교수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부 도시 리옹에서 자란 세드리크 오. 경영학 분야 명문 그랑제콜 HEC를 나왔다./사진=고운호 기자
-지금까지 어떤 정책을 실행에 옮겼지요?

"디지털 보좌관으로 2년 반 동안 고민했던 것들이에요. 금융자본에 세제 감세를 결정했습니다. AI 국가 플랜을 수립했고, 해외의 다양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이민 정책을 완화했어요. 하지만 마법 같은 정책은 어디에도 없어요.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정책은 불가능하죠. 조금씩 변화를 일으켜서 그 혜택을 누리게 해야죠."

지금 프랑스 경제를 살렸다고 칭찬받는 마크롱 대통령의 핵심 정책 대부분이 오 장관과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과 비교하면 프랑스 정치는 정말 젊군요! 놀라워요. 세드리크! 당신의 인생 플랜은 어디까지 세워져 있나요?

"장관직을 완수한 후 더는 정치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는 30대 중반이에요. 아이들도 어리죠. 정치는 저에게 직업이 아니라 지식인으로서의 사회 참여예요. 프랑스에선 앙가주망(engagement)이라고 하죠. 각료 역할이 끝나면 사기업에서 일하면서 미국과 캐나다 등을 돌아볼 거예요.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칠 겸 해서요(웃음)."

-자라면서 혹시 두 문화권의 경계인, 혼혈이라는 점이 당신에게 문제가 되기도 했나요?

"어린 시절엔 생김새가 달라, 그랬죠.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풀었어요. 완전히 다른 두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프랑스의 이민 사회와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한국의 성실성과 프랑스의 창의성은 저를 이루는 근간이에요. 떼려야 뗄 수 없죠. 어릴 때부터 저는 2년에 한 번은 한국을 방문해서 고모들을 만났어요. 지금 제 아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리옹에서의 어린 시절은 즐거웠습니까?

"하하. 어머니 아버지가 상반된 생각을 하고 계셨어요. 어머니는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포용했고, 아버지는 "최고 좋은 학교에 가라"고 자극을 줬죠. 교육적으로 긴장과 갈등이 있었지만, 사랑과 보호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다름이 도움이 됐습니다."

한복을 입은 오남매.
모든 다름과 경계를 부드럽게 혼합시키는 자세는 세드리크에게 엄청난 잠재력이 되었다. 그는 조선의 이순신과 프랑스의 샤를 드골의 공통점을 발견했고, 드골과 로맹 가리를 연결했다. "20세기 프랑스 최고 문장가였던 로맹 가리는 영화제작자에 레지스탕스 출신이었어요. 로맹 가리는 ‘드골은 곧 프랑스였다’고 평했죠. 저는 로맹 가리도 좋아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엄격했고 평생 아들의 성공을 원했어요."

-로맹 가리의 어머니가 당신에겐 아버지였군요.

"맞습니다. 그랬어요."

-여동생 델핀 오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눕니까? 델핀은 프랑스 하원의원으로 정계에서 당신과 함께 일했는데요.

"하하. 델핀과는 사이가 좋아요. 그 애는 제 두 아들을 잘 봐주죠. 하지만 동생과 저는 성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델핀은 공부를 더 잘했어요. 아버지가 덜 엄하게 대했고 그래서 덜 한국적이죠(웃음). 우리는 모든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요. 정치 얘기만 빼고! 몇 년 전, 서울 대전 간 KTX 기차 안에서 정치 얘기로 언성이 높아져 승객들에게 주의를 받은 후부터, 정치 얘기는 안 합니다(웃음)."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당신이 가장 잘한 선택 3가지는 무엇이지요?

"(골똘히 생각하다)첫째, 졸업하자마자 기업으로 가지 않고 도미니크 전 IMF 총재의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것. 그때 많은 공부가 됐어요. 둘째, 2014년 정계를 떠나 방산 기업인 샤프란으로 가서 3년간 일한 것도 많은 배움이 됐습니다. 마지막은 지금의 제 아내와 결혼한 거죠."

아내 베랑제 오는 같은 대학을 나왔고 현재 파리 스타시옹 레스토랑에서 250명 규모의 직원을 이끌고 있다. 둘은 한국의 연세대학교에서 교환 학생 시절 만났다. "아내는 매우 엄격해요. 제가 항상 움직이도록 만듭니다(웃음)."

이번 방한에서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네이버, 삼성 등을 만나 긴밀하게 대화했다../사진=고운호 기자
-마지막으로 한국의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첫 번째는 자신을 믿으라고 하고 싶어요.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해요. 둘째, 열심히 많이 일해야 합니다(웃음). 누구에게나 기회는 와요. 저도 그 행운을 잡아 젊은 나이에 성취를 이뤘지요. 하지만 언제 행운이 왔다 갈지 알 수가 없어요. 왔을 때 꽉 붙들려면 꾸준하고 근면한 일상을 유지해야죠. 인생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여유롭진 않습니다. 행운이 자주 오지도 않고요(웃음)."

그는 인터뷰 내내 겸손하고 분명했으며, 자신의 의무에 대한 에너지가 넘쳤다. 나는 그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프랑스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나는 세드리크가 자신의 할머니 여은희(2015년 작고)에 대해 프랑스 매체 ‘파리 마치’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다.

그의 할머니는 6.25 전쟁 직전 3개월 된 아기(그의 아버지 오영석)를 안고 강을 건너 월남했다. 젊은 여인은 폐허가 된 서울의 담배 공장에서 취직해서 삼남매를 키웠다. 그중 한 아이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무기공학자가 됐고, 그 피를 받은 자손이 프랑스 정계에 진출했다. 세드리크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자신의 할머니에 대해 공식적으로 연설했다. 할머니의 헌신과 조부모의 가족으로 북한에 남았을 미지의 핏줄에 대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인이 알제리 선조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소설 ‘상실의 미학’을 읽고 영감받은 그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할머니에 대한 자서전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조부모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는 나는, 그가 자신의 할머니를 그토록 애틋하고 귀하게 기억하려는 노력에 적잖이 놀랐다. 세드리크는 남북한에 걸쳐 있는 그의 조상들과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고, 이 운명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인생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여유롭진 않습니다.”/사진=고운호 기자
그것은 윗세대의 사랑과 헌신이었다. 세대를, 국경을, 좌우를 초월해서, 그 사랑과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 자신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평범하고도 위대한 사실을 그가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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