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脫한국' 꿈꾸는 국민이 보이지 않는가

입력 2019.11.22 23:27

돌림병 돌 듯 국민 士氣 바닥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청년에게 일자리는 새의 날개나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것

강천석 논설고문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부족한 영양소는 사기(士氣)다. 비타민 C가 결핍되면 괴혈병을 앓듯 사기가 바닥난 국민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주저앉는다. 문재인 정권 들어 돌림병 돌 듯 나라 안에 사기가 사라졌다. 휴전선을 지키는 군대의 사기가 한껏 올랐다는 소문이라도 들은 적이 있는가. 신이 나고 흥(興)이 오른 기업인을 만난 게 몇 년 됐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입조심을 해도 어두운 낯빛까지 가리지는 못한다. 실험 결과를 기다리며 날을 새웠다는 연구자를 보았는가. '52시간 근무제'란 강요된 천국(天國)에선 땡 치면 모든 연구소의 모든 컴퓨터가 꺼진다. 자가발전(自家發電)한 애국심에 들떠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외교 이면(裏面) 이야기를 떠들던 외교관은 자취를 감췄다. 이 나라는 대통령 말대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라'가 됐다.

사기의 사전 속 뜻은 '군사의 기세(氣勢)' '선비의 기개(氣槪)' '몸과 마음에 기운이 넘쳐나는 기상(氣像)'을 가리킨다. 사기는 긍정과 부정 양(兩) 방향으로 수수께끼 같은 힘을 발휘한다. 사기가 오른 1개 대대 병력은 적(敵) 1개 사단의 발을 며칠씩 묶어놓기도 한다.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이나 프랑스군의 분전(奮戰) 사례가 그것이다. 반대 경우도 흔하다. 1940년 프랑스 육군은 유럽 최대 병력을 보유한 최강(最强)의 군대로 불렸다. 이 최강의 군대가 히틀러의 기갑부대 진격 앞에서 갈대 넘어지듯 무너지고 한 달 만에 수도 파리를 내주고 항복했다. 정치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서 번졌던 전쟁만은 모면하자는 분위기에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기는 국가의 흥망(興亡), 기업의 성쇠(盛衰)를 가르는 핵심 요인의 하나다. 구(舊) 소련 붕괴의 직접 요인은 GDP의 34%에 달했던 국방비의 과중 부담이란 것이 정설이다. 다음 요인이 각 분야 핵심 엘리트들 사이에 번져간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 상실, 바로 사기 저하였다. 한번 '혁명'이란 단어에 중독된 국가·정치 지도자·국민은 개혁에 무능(無能)해진다. 복잡한 절차, 끈질긴 설득력, 상당한 자기희생이 필요한 개혁보다 단어 두세 개 끌어다 붙인 구호(口號) 정치에 매달린다. 집권 세력의 손발인 공무원들이 그것이 가짜라는 걸 먼저 알아차린다. 소련을 무너뜨린 입소문 전파자는 나라의 앞날에 희망을 잃은 공무원들이었다.

국민 사기를 끌어올리는 지렛대는 지도자 발언의 신뢰성이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대공황 탈출 연설이나 처칠 영국 총리의 대독(對獨) 항전 연설이 본보기다. 히틀러 군대가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 1940년 5월 영국 국민조차 영국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심했다. '바다에서, 해변에서, 들판에서, 언덕에서, 거리에서 나치 독일과 맞서 싸울 것'이라는 처칠의 연설은 그가 가장 싫어했던 정적(政敵)들을 내각과 외교의 중요한 자리에 배치하는 행동으로 뒷받침됐기에 국민 분위기를 반전(反轉)시킬 수 있었다.

국민의 사기를 무너뜨리는 것 역시 국가 지도자의 말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의 말과 사실, 말과 행동, 말과 정책이 어긋날 때 국민은 기대를 접는다. 대통령은 며칠 전 '남북 관계 현황에 굉장히 보람을 느낀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판단은 사실과 부합하는가. 그런 판단을 하는 대통령을 보고 국민이 오늘은 캄캄해도 내일은 햇빛이 들 거라고 기대하겠는가. 기업하는 사람들 입에서 헛웃음밖에 더 나오겠는가. 담당 공무원들은 그 속을 훤히 뚫어본다.

이삿짐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 하는 게 주한(駐韓) 미군만이 아니다. 보복의 칼이 두렵지 않다면 한국 기업 몇 개는 진즉 이삿짐을 쌌을 것이다. 스웨덴 대표 기업 이케아와 H&M은 1983년 노동당 정권이 반(反)기업 친(親)노동 정책을 펴자 서슴없이 네덜란드로 본사를 옮겨버렸다. 이케아 본사는 네덜란드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청년들에게 일을 통해 쌓은 경험과 자신감은 새의 날개나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같다. 그것 없이는 세상을 날 수도 헤엄칠 수도 없다. 그들 손에 용돈을 쥐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정권의 사고방식은 청년들을 짐승만도 못하게 대하는 것이다.

자식들의 미래를 염려해 한국 탈출을 꿈꾸는 이웃을 만나는 게 드물지 않다. 그들이 다 떠나면 이 나라엔 민노총·전교조·참여연대만 남게 될지 모른다. 마음의 고갯길을 힘들게 넘고 갈림길 앞에서 헤매는 국민 속을 바로 읽어야 한다.


조선일보 A30면
트래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