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트럼프는 카터와 다르다

입력 2019.11.22 03:15

트럼프의 특징은 무서운 일관성과 예측 불가능성
주한 미군 철수는 오랜 주장… '한국 못 떠날 것' 착각 말아야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워싱턴에서 체감하는 한미 관계는 문재인-트럼프 시대가 시작된 이래 요즘이 바닥이다. 양쪽 정부야 늘 문제없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한미 동맹이 위기"라는 말을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문-트럼프 정부는 출발부터 이념적 지향이 다른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우선주의'가 미·북 협상 과정에서 부딪치면서 쌓아온 이견과 오해의 골은 여전히 깊다. 여기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결정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이제는 다섯 배라는 터무니없는 인상 요구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하고 있다. 마무리될 때쯤이면 동맹이 어떤 모습일지 예상하기조차 어렵다.

최근 오랜만에 워싱턴을 찾은 몇몇 한국 인사가 미국 정부·싱크탱크 인사들을 만나본 뒤 "생각보다 상태가 더 나쁘다"고 했다. 청와대에선 이런 워싱턴 분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지소미아 파기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둘 리가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외교의 핵심 의제는 단순하다. 해외 주둔 군인들을 빨리 귀국시키고 무역 협정을 미국에 유리하게 재조정하고, 동맹국에서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받아내는 것을 '성공'으로 본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동맹국의 안보나 의리쯤은 쉽게 무시할 수 있다는 건 최근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해 쿠르드족을 버리면서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트럼프가 '크게' 성공해야만 하는 분야이다. 내년 대선을 생각해도 그렇고, 일본과 나토 등 다른 동맹국과 벌일 협상을 위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동맹국이란 늘 미국에 부탁만 하는 나라, 무역과 안보 의존으로 미국을 '등치는' 나라다. 그러니 협상에서 가혹하게 '털어도' 되는 나라다. 트럼프 정부와 방위비 분담금을 협상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 구조의 한 축인 지소미아는 당장 돈 되는 일이 아니어서 트럼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되돌리려고 매달린 건 트럼프가 아니라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위해 일해온 전통적 외교 안보 관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강행하는 걸 보면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시달리는 한국에 대해 느끼는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었다고 한다. "한국이 이렇게 자국 이익만 고집한다면 우리도 편하게 국익을 추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전문가는 트럼프의 주한 미군 철군 가능성을 경고했다. 트럼프가 갖고 있는 무서운 일관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아주 일관되게 주장해온 주제 중 하나가 주한 미군 철수이다. 모두가 어이없어했던 멕시코 장벽을 끝끝내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트럼프의 주한 미군 철수는 어느 순간 어떤 방식으로 한국에 닥칠지 모른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북한과 종전을 선언할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우리가 70년 된 한국전쟁의 종전을 논의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느냐"며 흥분했다. 트럼프에게 주한 미군 철수란 "오랜 전쟁이 끝났으니 군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수 있는 '성공'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트럼프 시대에는 '주한 미군은 미국 이익 때문에 한국에 있는 것이므로 등 떠밀어도 절대 나가지 않을 것'이란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가 번복한 지미 카터와 트럼프를 혼동해서도 안 된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한국 안보를 해치는 '치명적인 전략적 착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A43면
도시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