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1시간 버스 기다려...앞으론 어쩌나”...버스파업에 철도파업 덮친 고양행 '만원버스'

권오은 기자 김송이 기자 이은영 기자
입력 2019.11.21 13:32 수정 2019.11.21 13:51
버스파업에 철도 파업까지…고양행 퇴근버스 직접 타보니
두세 정거장 만에 ‘만원버스’…평소보다 20분 더 걸려
노사, 9차례 교섭·2차례 조정에도 합의 못 해…장기화 ‘우려’

경기 고양시 명성운수 파업 2일째였던 지난 20일 저녁, 광역버스 등 20개 노선 270대의 버스가 멈춰 서면서 고양시민들은 평소보다 ‘긴 퇴근길’에 나서야 했다. 평소 8분에 한 대꼴로 오던 버스였지만, 이날은 1시간 만에 대체 전세버스가 왔다.

특히 20일 오전 9시부터 전국철도노조도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고양시를 통과하는 경의선과 3호선 운행도 평소보다 줄게 됐다. 경기도 등은 고양시 주요 역에 택시까지 배치하며 출퇴근을 돕고 있으나, 파업 장기화를 걱정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날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기자 3명은 서울 광화문, 숭례문, 영등포 정류장에서 고양시행 버스가 정차하는 버스를 직접 타봤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빌딩 앞 버스정류장에 시민들이 경기 고양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권오은 기자
◇"오긴 오는 거야?"…한 시간 기다려 도착한 전세버스
20일 오후 5시 30분부터 광화문빌딩 버스정류장 옆에 고양시 일산행 버스를 기다리는 20여m의 긴 줄이 늘어섰다. 이날 기온은 영상 2도였지만, 체감온도는 영하로 느껴졌다. ‘칼바람’에 모자를 덮어쓴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길 한복판에 줄을 서 있어, 바람을 막아줄 나무조차 없어 대부분 움츠러들기 바빴다. 일부 시민들은 "버스가 오는 거야, 아닌 거야"라며, 혼잣말로 화를 내기도 했다. 대체버스가 오길 기다리던 일부 승객들은 돌아가는 일반 시내버스를 타거나 이내 지하철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1시간쯤 기다렸을까. 오후 6시 30분쯤 1000번 대체버스 1대가 도착했다. 추위에 떨던 시민들은 빠르게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버스 입구에 승객들이 멈춰섰다. 버스요금을 내기 위해 카드 결제기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 승객이 "버스카드는 어디에 찍느냐"고 묻자, 버스기사는 연신 "대체버스라 무료입니다"라고 답했다.

뒷좌석에서 "땡잡았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잠시, 고작 두 정거장만에 앉을 자리는 물론 서 있을 공간도 남지 않았다. 밀려드는 시민들로 문 앞까지 사람이 가득 차자, 기사는 보조 의자를 펴주고 "사이드미러가 보이지 않는다"며 앉아 달라고 했다.

대체버스다 보니, 안내 방송이 없는 것도 큰 불편이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마다, 승객들은 "기사님 안내방송 안 나오나요?" "행신역 내립니다"라고 소리쳤고, 그제야 기사가 버스정류장명을 육성(肉聲)으로 불러줬다. 대체버스가 광화문빌딩에서 대화역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30분. 평소보다 20분쯤 더 걸렸다.

지난 20일 파업의 여파로 9707번 버스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세 정거장 지난 당산역 푸르지오아파트 정류장부터 사람이 가득 찼다. /김송이 기자
파업하지 않는 비슷한 노선의 버스에도 퇴근길 직장인이 몰리면서 붐볐다. 오후 6시40분쯤 영등포시장역에서 오른 9707번 버스는 버스 파업 노선 중 대화역까지 가는 1500번, 830번 버스와 노선이 겹쳐 평소보다 사람으로 가득했다. 세 정거장 지나 당산역 푸르지오 아파트에서 승객이 더 타려 하자 한 승객이 "아저씨 그만 태워요! 기름 짜는 거 같아"라고 외쳤다. 최은범(49)씨는 "항상 차고지인 영등포역에서 9707번 버스를 타고 고양시로 퇴근한다"며 "버스 파업 전과 비교해 사람이 3배 정도 많다"고 했다.

같은 시각 숭례문과 영등포시장 버스정류장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숭례문 정류장에서 만난 이미화(49)씨는 "평소 1000번 버스를 타는 데 늦어도 10분에 한 대꼴로 온다"며 연신 도로를 보며 버스를 기다렸다. 그는 뒤늦게 파업 사실을 알고 "평소에도 오전 7시 30분이면 집에서 나오는데, 30분은 일찍 나서야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시장 버스정류장 안내표지판에 파업으로 운행하지 않는 버스들이 ‘차고지’에 있다고 표시됐다. /김송이 기자
영등포시장 정류장의 버스 안내판에는 차량이 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의 붉은색의 ‘차고지’ 글씨가 많이 보였다. 영등포시장 정류장에서 고양시 화정역으로 가는 방법을 지도앱으로 검색해봤다. 직행 버스인 1082번의 도착정보를 계속 확인해봤지만, 도착 예정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교통편만 안내할 뿐이었다. 마두역에서 볼 일이 있어 잠시 나왔다는 최모(64)씨는 "평소엔 여러 대가 와서 별로 안 기다렸는데, 지금 운행하는 것은 파업을 안 하는 9707번 하나라 오래 기다리고 있다"며 "추워도 어쩌겠나"라고 했다.

어렵게 고양시에 도착한 시민들은 당장 다음 날 출근길을 걱정했다. 이날부터 철도노조의 총파업까지 맞물리면서 경의선과 3호선 마저, 배차 간격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1000번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직장인 오모(27)씨는 "전날 버스 파업 소식을 모르고 출근길에 정류장에 갔다가, 낭패를 보고 지하철역으로 급하게 갔다"며 "행신동 주민들은 버스 노선이 마땅치 않아, 3호선을 타는데 이것마저 파업하면 출근을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하루 평균 7만명 이용 버스 노선 끊겨...추위에 떠는 승객들 "별 수 있나"
지난 19일부터 파업 중인 명성운수의 주요 구간은 크게 △고양시~여의도 △고양시~광화문·숭례문 등이다. 현재 파업 중인 20개 노선 중 12개 노선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파업으로 운행이 중단된 노선 중 가장 민원이 많은 것도 이들 노선이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여의도와 광화문은 일산 등 경기 북부 지역과 가장 가까운 도심이고, 회사 밀집 지역이라 파업에 따른 시민 불편이 가장 많다"고 했다.

지난 20일 명성운수 파업으로 운영된 1000번 대체 전세버스. /권오은 기자
경기도교통정보센터의 가장 최근 자료인 지난 8월 ‘노선별 이용객수’를 분석해보면, 이들 명성운수 소속 12개 노선의 하루 승객은 평일 기준 7만 2000여 명이다. 특히 고양시~여의도 노선 중 승객이 가장 많은 1082번과 1500번, 고양시~광화문·숭례문 노선 중 승객이 가장 많은 1000번과 1200번 승객만 5만9000여명에 달한다.

경기도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탑승인원이 많은 1000번의 경우 오늘부터 대체버스 20대를 투입했고, 1082번은 내일 첫차인 오전 5시부터 대체버스 10대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1000번의 평소 운행대수가 36대이고 1082번의 경우 28대인 것과 비교할 때 운행율이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에 경기도와 고양시는 추가로 시내버스 10대와 마을버스 10대를 고양시내 외곽 등에 배치해 서울까지 운영하고, 출·퇴근 인파가 몰리는 오전 6시 30분부터 2시간, 오후 5시부터 3시간 동안 택시 50여 대를 중앙로 거점지역에 배치하기도 했다.

◇주 52시간제 여파…勞 "최소한 생활임금 보장" VS. 社 "회사 경영 어렵다"
이번 명성운수 버스 파업의 배경은 ‘주52시간제에 따른 임금감소분 보전’이다.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초과 근로를 못해 임금이 줄어들자 버스기사들은 월급을 25만 6000원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종호 명성운수 노조 조합장은 "경기도 내 버스회사 중 우리보다 많이 받는 곳은 80만원 더 받는다"라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주 52시간제에 따라 임금을 인상해준 것"이라고 했다. 이어 "최소한 경기도 버스업계 평균 수준은 맞춰달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라며 "버스 요금까지 인상됐는데, 올려주지 않으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명성운수 차고지에서 노조원들이 서 있는 버스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사측은 회사 경영난으로 노조 측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명성운수는 공문을 통해 "지난달 승객의 수는 전년 동원 대비 7%나 감소했고, 정산한 요금 인상분은 약 7%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 "고양시와 파주시 시내버스 업체들보다 동일 근무일수(13일 만근) 기준으로 약 30만원 정도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사측은 이런 점을 고려해 임금을 14만원만 인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사간 임금 인상분의 차이는 1인당 월급 11만 6000원. 그러나 지난 5월부터 9차례 교섭도, 지난달 22일부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2차례 노동쟁의 조정에도 이 틈을 좁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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