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참을 수 없이 '공정'한 문재인식 경제정책

김덕한 산업1부장
입력 2019.11.21 03:13 수정 2019.11.21 11:29

조국 일가 불법 가리려고 불공정 내세워 정시 확대
강자·약자 역전시키고 약자의 불법 용인하는 사회

김덕한 산업1부장

매년 38억원씩 회삿돈을 투자하면서 자사고를 운영해온 한 기업인은 정부의 2025년 자사고·특목고 일괄 폐지 정책에 대해 "세금을 1조원이나 퍼부으며 자사고를 없애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재계 인사들은 자사고 폐지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이른바 '합법적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 더욱 어이없어한다.

문 대통령은 검찰이 기소까지 한 조국 전 법무장관 관련 갖가지 불법 혐의에 대해 "합법적 불공정"이라며 일찌감치 면죄부를 줘버렸다. 그래 놓고 취한 조치가 대입 정시 모집 비율을 느닷없이 늘리고, 자사고·특목고를 다 없애버리는 것이다. 한 기업인은 "정부가 바로잡아야 할 것은 조국 일가의 '불법'이지,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불공정'이 아니다"라며 "자사고 같은 경쟁을 모두 없애 불공정을 바로잡겠다는 것이 이 정부 정책의 근간이고, 그 정책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경제"라고 했다.

형사처벌이나 공정위 과징금 처분을 받는 '불공정' 행위는 공정·불공정을 따질 필요도 없이 이미 불법이다. 불법은 방치하면서 주관적 기준의 불공정을 바로잡겠다는 의욕이 넘치는 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하기 어려워진다.

약자를 보호하는 '공정'이라는 이름의 정책은 지금껏 강화되기만 했다. 우리나라 최고경영자가 형사처벌될 수 있는 법 조항은 2205개에 달하고, 지방 공장에서 '왕따 사건'이 일어나도 최고경영자가 처벌될 수 있다.

주관적 '공정'이 강화되는 사이 우리 사회 곳곳에선 이른바 강자와 약자의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대기업 노조는 주주 절대다수가 찬성하는 주총장을 때려부숴도 처벌받지 않고, 사업장을 점거해도 사측의 대응 수단은 거의 없다.

'공정'을 내세워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공정에 목을 맨다. 문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돌던 지난 11일 "우리 사회의 공정성이 확장됐다"고 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내년부터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는 주(週)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기업 현장은 아우성이지만 정부는 시간 끄는 것 외엔 별무대책이다. 한 재계 인사는 "기업의 어려움을 알더라도 중소기업 노동자만 장시간 '노동 착취'에 방치할 수 없다는 '공정' 편향 때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주관적 공정성, 획일적 균등 철학은 국가 경쟁력을 근본부터 망가뜨리고 있다. 국내 유수 대기업 최고경영자는 최근 기자에게 "이제는 공장뿐 아니라 연구개발(R&D)센터까지 해외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철야 작업을 해서라도 시급한 연구 프로젝트의 성과물을 내야 하는 시대에 한국 R&D 센터의 경쟁력은 무너졌다는 것이다. 한 자동차 업체 임원은 "공장이 모두 휴가 가는 한여름에도 선풍기를 틀어놓고 개발 작업을 했던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이 우리의 경쟁력이었다"며, "이들이 원하는 건 획일적 근무시간 단축이 아니라 성과를 내고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HSBC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주 52시간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성장 둔화를 자초한 셈"이라고 했다. 지난 18일 기획재정부를 방문한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이 가진 건 열심히 일하는 인적 자원뿐인데 강제로 일을 조금만 하도록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고 한다.

정말 공정한 사회는 구호로서의 공정보다는 사회 구성원이 합의한 법이 지켜지는 예측 가능한 사회다. 그래야 기업도 할 수 있고,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조선일보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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