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결국 美 국방 입에서 나온 "주한 미군 감축" 위험한 상황이다

입력 2019.11.21 03:18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19일 필리핀 기자회견에서 '주한 미군 감축을 고려할 것이냐'는 질문에 "예측하거나 추측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한 미군 감축·철수가 한반도 안보에 미칠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미 국방장관이 이 시점에 모호한 답변을 한 이유는 뻔하다.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려 받는 데 주한 미군 카드를 지렛대로 쓰려는 것이다. 나흘 전만 해도 서울에서 "주한 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19일 오전 한·미 방위비 협상이 80분 만에 결렬되자 주한 미군을 걸고 들어온 것이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주한 미군 감축·철수 언급은 지난 한·미 정부에선 금기(禁忌)에 가까웠다. 주한 미군을 한·미 동맹과 미국 태평양 전략의 주춧돌로 여겼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본인이 '주한 미군에 막대한 돈을 쓸 이유가 있느냐'며 철군을 거론했다. 동맹의 역사와 존재 이유, 가치를 모르는 트럼프는 주한 미군을 '돈 먹는 하마' 정도로 안다. 올 초 미군 전문지는 "트럼프가 주한 미군을 감축할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고 했다. 방위비 협상 미국 대표도 '주한 미군 철수 우려'에 대해 "트럼프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했다. 과거 카터 대통령의 미군 철수는 미 현역 군인들이 나서 막았다. 그런데 지금은 미군 합참의장이 돈 문제로 주한 미군 주둔에 의문을 표시한다. '럭비공' 트럼프를 잡아주던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 '어른들'도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실제로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를 파기하면 트럼프는 주한 미군 감축·철수 카드를 더 노골적으로 들이밀 것이다. 이러다 주한 미군 감축·철수가 사고(事故)처럼 닥칠 수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때문에 지소미아를 파기한다'고 한다. 지금 체면, 자존심을 찾을 때가 아니다.

주한 미군이 없어진다면 한국은 핵무장하는 수밖엔 없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국민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어떻게든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을 지켜야 한다. 방위비와 지소미아 파고를 어떻게 넘어야 할지 막막한데 정부는 "한·미 동맹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정말 무슨 비책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조선일보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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