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돈가스’ 연돈, 포방터 마지막날...폭우·한파에도 줄 선 시민들 "서울 떠나 아쉬워"

권오은 기자 민서연 기자 이은영 기자
입력 2019.11.16 15:51 수정 2019.11.17 11:27
"가게가 제주도로 이사하면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기차 타고 오는 것이 낫죠."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포방터 시장. 이른바 ‘백종원 돈가스’로 유명한 연돈(옛 돈카 2014) 앞에 100여 명이 줄을 섰다. 이날 서울의 새벽 기온은 4.3도였지만, 오전 6시부터 시간당 강수량 15㎜가량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체감온도는 ‘뚝’ 떨어졌다. 하지만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는 비도, 칼바람도 돈가스를 먹기 위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 부산, 대전, 경북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은 우산을 쓰고 기다렸다.

비가 내리는 악조건에서도 자리를 지킨 이유는 연돈이 이날로 영업을 마치고, 다음달 중순부터 제주도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7일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뒤로 전국의 돈가스 팬들을 모은 지 1년 만이다. 이 가게의 마지막 ‘육지 영업날’ 비도, 추위도 사람들의 기다림을 이기지 못한 이유다.

15일 새벽 5시 50분 서울 서대문구 포방터시장의 돈가스집 ‘연돈’이 개장하기 6시간 전부터 시민들이 우산을 들고 줄을 서있다. /민서연 기자
◇떠난다는 소식에 전날 밤부터...골목길에 100여 명 줄 서
줄의 첫 번째는 포항에서 올라온 이재환(35)씨의 차지였다. 그는 지난 13일 오후 9시부터 기다려 전날에도 1등으로 연돈의 돈가스를 맛봤다고 한다. 전날에도 저녁부터 다시 줄을 서 이날은 연돈의 가장 마지막 돈가스를 먹기로 예약했다.

이날까지 연돈을 5번 찾은 이씨는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돈가스집 스무 곳을 방문했는데 이곳이 최고였다"며 "제주도로 옮긴 뒤에도 늦어도 내년 1월 안에 한 번 더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포방터시장 ‘연돈’의 돈가스를 먹기 위해 기다리던 손님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김윤수 기자
전날 밤 오후 11시쯤 연돈 앞에 도착한 김득환(30)씨는 부산 기장군에서 이곳까지 기차만 4시간을 타고 왔다. 바쁘게 왔지만 그는 11번째였다. 김씨는 "제주도까지 비행기 편도는 최소 8만원인데 언제 또 찾아갈 수 있을지 몰라 올라왔다"고 했다.

전날부터 찾아온 한파(寒波)에 줄을 선 사람들은 핫팩을 꺼내들었다. 패딩과 모자로 중무장한 이들 중 개인 의자까지 챙겨온 손님도 있었다. 이날 여섯 번째로 줄을 선 대학생 박성근(21)씨와 친구 세 명은 전날 밤 11시에 도착했다. 박씨는 "4명 모두 서울에 사는데, 비가 안 와서 일기예보를 본 친구 한 명만 우산을 챙겨왔다"며 "우산 하나로 2명씩 교대로 줄을 서고, 다른 2명은 근처에 PC방에 가는 방법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이날 번호표를 나눠준 오전 11시 기준으로 줄은 골목길까지 약 60m 늘어섰다. 포방터 시장을 떠나기 전에 돈가스를 먹어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포방터 주민들은 골목까지 이어진 줄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동네 맛집에 정작 동네 사람은 한번도 맛을 못보고 떠나는구먼…."

◇유명세에 ‘소음’ ‘담배’ 민원도…상인연합회 "애써봤지만 대책 없어"
지난 6일 연돈 사장 김응서(40)·김소연(37)씨 부부는 소셜미디어(SNS)에 "15일을 마지막으로 포방터 시장에서의 영업을 종료하고 제주도로 가게를 이전해 12월 중순 영업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가게를 옮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기’였다. 연돈이 돈가스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100인분씩만 준비하다 보니 손님들이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섰다. 주말에는 전날 밤부터 줄을 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1년 가까이 이어지자, 가게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소음과 쓰레기 등의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김씨 부부가 지난 1월 가게 인근의 상가건물 1층을 빌려 손님들을 위한 대기실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대기실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소음과 담배 연기 등을 불편해했다. 결국 대기실은 운영 8개월여만에 폐쇄됐다. 대기명단을 받아 사람들이 직접 줄을 서는 대신 순번에 맞춰 가게를 찾는 방식도 시도해봤지만, 더 빠른 순번을 받고 싶은 마음에 길게 늘어선 줄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포방터시장 상인연합회와 서대문구청 등도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하지만 개인 가게를 위해서 세금을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마땅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연돈이 떠나기로 했다. 정용래(66) 포방터시장 상인회연합회장은 "상인회에서도 긴 나무의자도 놓아도 보고 나름 애썼다"며 "결국 떠나게 돼 아쉬운 마음"이라고 했다.

15일 ‘연돈’이 서울 서대문구 포방터시장에서 마지막으로 판매한 치즈돈가스와 등심돈가스. /김윤수 기자
◇‘시원섭섭’ 연돈 떠나보내는 포방터 상인·주민들 마음
연돈의 이사 소식에 주민들은 불편은 줄 것 같다면서도, 섭섭한 마음을 내비쳤다. 포방터시장 인근에 사는 주민 김모(63)씨는 "돈가스 먹으려고 기다리는 줄이 매일 워낙 길어서 소음공해가 컸다"며 "쓰레기 버리는 이들도 많아서 주민들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넓은 곳에서 많은 분께 사랑받으면 좋겠다"고 연돈 사장 부부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다른 주민들 역시 "가끔 너무 쓰레기가 많아 마음 상할 때가 있었다" "담배 냄새 같은 문제 사라지면 좋을 것 같다" 등의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동고동락하던 이웃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에 "앞으로도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 "사장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15일 오전 11시쯤 손님들이 우산을 쓴 채 명단에 이름을 적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김윤수 기자
특히 연돈의 인기로 활력이 생긴 포방터시장의 다른 가게들은 상권이 침체될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돈가스 열풍에 하루 매출이 7~8만원은 늘었다"며 "사장 부부도 참 성실하고 우직해서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시장에서 못 본다니까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날도 연돈의 돈가스는 백종원씨의 표현대로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했다. 손님들은 포방터시장의 마지막 연돈 돈가스를 먹기 전에 연신 사진부터 찍었다. 깨끗이 비운 돈가스 접시를 치우며 김씨 부부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손님들에게 건넸다. 오후 4시쯤 ‘재료가 소진돼 영업을 종료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가게 앞에 섰다. 육지 영업을 마친 연돈은 다음 달 10일쯤 제주 서귀포시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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