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정말 패싸움 나는 거 아니냐"..커지는 대학가 韓·中 '홍콩 갈등'

김우영 기자 김윤수 기자
입력 2019.11.14 17:37 수정 2019.11.18 16:07
'홍콩 사태'에 대학가 韓·中 학생들 갈등 심화
韓 학생들 "민주주의 가치 훼손 절대 용납 안 돼"
中 유학생들 "홍콩 시위는 폭력 사태…내정 간섭 안 돼"
경찰도 ‘현수막 훼손’ 정식 수사 나서
전문가 "감정적 대응은 갈등만 악화…토론의 장 마련해야"

14일 오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교내로 이어지는 외벽 20여m를 따라 형형색색의 대자보와 메모장이 빼곡히 붙었다. "홍콩의 민주항쟁을 지지합니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시민들의 권리를 위한 것인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것인가" 등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이 많았다. 다른 한쪽에는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를 반대한다" "이게 너네가 지지하는 민주주의인가" 등 홍콩 시위에 반대하는 내용의 대자보도 게시됐다. 대자보를 지켜보던 한 고려대 학생은 "며칠째 한·중(韓·中)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 정말 패싸움이라도 나는 것 아니냐"고 했다.

14일 오전 10시쯤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붙은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와 메모들. /김우영 기자
최근 대학가에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현수막을 둘러싼 한국 학생들과 중국 유학생들 사이 갈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중국 유학생들이 대학가 현수막과 대자보 등을 무단 철거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충돌 사태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경우 한·중 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커져가는 대학가 韓·中 갈등… 일부 "표현의 자유 훼손 마라"
지난 13일 서울 한양대에서는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두고 한국 학생과 중국 유학생 수십 명이 충돌했다. 한양대 학생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자, 중국인 유학생 수십 명이 몰려와 "내정간섭하지 마라"고 항의한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표현의 자유"라고 응수하면서 이들의 대치는 4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어깨를 밀치는 등 몸싸움도 벌어졌다. 한양대뿐 아니라 서울대·연세대·고려대·한국외대 등 여러 대학에서도 홍콩 시위를 놓고 양국 학생 간 크고 작은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인문대 1층 로비에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지키려는 한국 학생들(오른쪽)과 이를 떼어내려는 중국 학생들이 대치하고 있다. /정민하 기자
한국 학생들은 학내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고려대 학부생 A씨는 "우리 학교는 4·19운동의 시발점이었던 4·18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그런 만큼 학교 내부에서 홍콩의 자유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관련 대자보가 게시되는 일은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가치"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학부생 B씨는 "민주주의의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일부 중국 유학생들이 훼손하고 있다"며 "대자보를 훼손하거나 무리 지어 몰려와 한국 학생들을 위협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중국의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올라온 한양대생 사진. 홍콩 독립 지지자 비하 표현인 ‘항독분자(港独分子)’라는 글귀가 사진 옆에 붙었다. /독자제공
중국 유학생들의 집단 행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려대 학부생 C씨는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중국 유학생들이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폭력 행위를 벌이는 모습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실제 전날인 지난 13일 고려대에서 열린 홍콩 민주화 지지 토론회를 앞두고 중국 유학생 커뮤니티에는 "홍콩 토론회를 파괴하러 갈 친구들을 모은다"는 글이 올라왔다. 같은 날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는 홍콩 지지 대자보를 붙인 한양대생의 사진과 함께 홍콩 독립 지지자 비하 표현인 ‘항독분자(港独分子)’라는 글귀가 올라오기도 했다. 이 말은 홍콩(香港·향항)의 ‘항(港)'과 독립(独立)의 '독(独)'을 조합한 단어에 부정적인 관점에서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을 일컫는 ‘분자(分子)’를 합친 합성어다.

중국 유학생들은 자신들의 대자보도 마찬가지로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고려대 내 한 중국 유학생 단체는 교내에 대자보를 걸고 "우리의 대자보 역시 훼손당한 적이 있고, 일부 유학생들이 욕설과 폭행도 당했다"며 "우리는 단지 홍콩처럼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를 반대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자보 주변에는 홍콩 내 민주화 시위를 두고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면 거짓말을 꾸며내지 마라" "이건 민주적인 운동이 아니라 계획적인 테러다" 등의 메모도 함께 붙었다.

◇경찰까지 나선 ‘대자보 훼손 사태’…전문가 "대화의 기회 마련돼야"
지난 12일 한 연세대 학생은 자신이 교내에 게시한 홍콩 시위 지지 현수막들이 중국인 2명에게 훼손당했다며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재물손괴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학가에서 연달아 발생한 현수막·대자보 훼손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정식 수사에 착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2일 오후 4시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남녀 2명이 연세대에 설치된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현수막을 무단 철거하고 있다. 영상을 촬영한 연세대 학생 A씨는 두 사람을 경찰에 고소했다. /독자제공
통상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받지 않는 이상, 국외 추방 즉 ‘강제퇴거’ 조치는 이뤄지지 않는다. 법적으로 재물손괴의 최고 형량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그마저도 단순 재물손괴에 초범일 경우 대부분 벌금에 그친다. 다만 차후 유학 비자 발급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는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감정적·배타적 대립 구도를 해결하지 않으면 양측의 소모적인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정 지역의 갈등이 타 지역으로 확산하는 일은 보편적인 세계화의 과정이지만 소모적인 갈등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강경하고 배타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성장통’으로 생각하고 학교와 언론이 나서서 건강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학과(문화인류학) 교수도 "한국 대학생들의 의도와 달리 중국 유학생 다수는 홍콩 시위가 자국을 약화시키려는 외세의 음모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강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에 이런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확한 해결책이 쉽게 나오긴 어렵지만 꾸준히 토론하며 인식의 차이를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현 사태는 점점 악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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