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세상이 무대이고 인생이 연극인 권력자들

입력 2019.11.14 03:16

똑같은 사건, 과거엔 "품자" 이번엔 즉각 死地로 북송… '인권' '동포' 찾던 文 맞나
인권 드라마 주인공 하다 자기 이해 걸리자 돌변… 조국도 멋진 연극의 주인공

양상훈 주필

북한 선원 2명의 북송을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중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생각한다기보다는 놀라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중성을 갖고 있다. 특히 남 일과 자기 일에 대해선 다른 잣대를 갖게 되곤 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다. 더구나 대통령직과 같이 수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정 결정을 계속 내려야 하는 자리라면 이중성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필자는 북송에 무조건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러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이 오징어잡이 배에서 많은 사람을 살해한 범죄에 가담한 것은 사실 같다. 이들은 한국 법정에서 재판받아야 했지만 북한이 재판에 협조할 리 없어서 공소 유지가 힘들었을 수 있다. 추방을 해도 그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 역시 찬반 논란을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고민 없이 쫓기듯 급히 북송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문 대통령만은 그래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과 아주 판박이인 1996년 페스카마호 사건의 범인들을 변호했다. 한국 선적 원양어선에 탄 조선족 범인 6명이 한국인 7명을 포함한 다른 선원 11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이들의 범행을 보면 '살인마'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1심에서 전원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 살인마들을 변호하면서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했다. 하기 쉬운 말이 아니다. 동포라고 대량 살인의 악마성이 달라지지 않는다. 일반의 정서와 동떨어진 말을 하는 것은 남다른 소신이 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온 사람이다. 그런 만큼 '살인마도 사람이고, 인권이 있고 재판받고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그의 말은 오랜 성찰과 많은 경험의 산물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페스카마호 사건과 똑같은 북한 오징어잡이 배 사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의 그 성찰은 투영돼야 했다.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본질적 문제다. 조선족과 달리 북한 선원 2명은 헌법상 우리 국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정부 관련 부처 회의 때 '이들도 사람이고 인권이 있고 재판받고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비공개로라도 그런 인식을 토로한 흔적이 없다.

문 대통령은 오히려 북한 선원들을 고문과 처형이 기다리고 있는 북으로 내쫓듯이 보내버렸다. 페스카마호 사건 변호인 문재인과 전격 북송을 결정한 대통령 문재인은 다른 사람 같다. 한 사람 안에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존재하는 듯한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드는 유체 이탈 화법도 이 특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조국을 임명한 사람과 조국 사태로 공정과 정의가 훼손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몸에 존재한다.

페스카마호 사건은 어떻게 되든 결국 변호사 문재인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상황에선 인권 수호와 법치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북한 선원 사건은 대통령 문재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심초사 공들이는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의 문 대통령에겐 인권 수호와 법치의 원칙은 없다.

2년 반 전 대통령 취임식 때 국민 통합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공정 평등 정의를 외치던 대통령이 있고, 사화(士禍)와 다를 바 없는 적폐 몰이를 하고 조국과 같은 파렴치 위선자를 법무장관에 임명하는 대통령이 있다. 자기 편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가혹한 대통령이 있고, 청와대에 '춘풍추상(내겐 가혹하고 남에게 관대하라)' 액자를 거는 대통령이 있다. "우리 정부 비리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하는 대통령이 있고, 검찰이 그 지시를 이행하자 '검찰을 개혁하라'고 하는 대통령이 있다. 두 사람이 한 몸에 들어 있다.

멋지고 좋은 말을 하는 문 대통령은 연기를 하는 배우 같다. 페스카마호 변호인 문재인은 인권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무대 뒤의 대통령은 방금 전 연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북한 선원들은 운 나쁘게도 무대 뒤의 대통령을 만났다. 조국이 이와 유사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좋은 말, 정의로운 말을 빼놓지도 않고 다 하던 조국이 있고, 파렴치 위선을 저지르는 조국이 있다. 조씨의 진면목을 안 뒤에 그가 과거에 했던 언행을 보니 이것은 완전히 '연기'다. 세상이 무대이고, 인생이 연극이고, 자신은 잘생긴 주인공이다.

우리 사회의 시민 단체엔 '시민'이 없고, 민주노총엔 '민주'가 없고, 인권 단체엔 '인권'이 없고, 여성 단체엔 '여성'이 없고, 환경 단체엔 '환경'이 없다고 한다. 내세우는 멋진 이념은 무대 위에서 관객을 끌기 위한 연극이고 연기일 뿐이다. 무대 뒤의 실제 모습은 전혀 다르다. 참여연대는 관변 단체이고, 인권 단체는 북한 인권 무시 단체다. 세상과 인생이 연극인 사람들이 강남 좌파로 만족하지 않고 권력을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지금 모두가 보고 있다.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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