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선원들 귀순 의사 밝혔는데… 포승줄에 안대 가린채 판문점으로

김경화 기자
입력 2019.11.12 04:27

탈북민 "귀순 의사 거짓이었다면 당사자들에 북송 사실 왜 감췄나"
靑 안보실이 관계부처 회의 주도

정부가 지난 7일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 2명을 추방한 것에 대해 여러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추방 결정을 내린 과정과 근거를 두고도 논란이 적지 않다.

남북 관계에서 전례가 없는 이번 '추방' 결정은 청와대 주도로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11일 "이번 사건이 워낙 이례적이고 정치적인 부담이 큰 탓에 통일부와 국정원은 분명한 입장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가 북 선원 2명을 나포 닷새 만에 신속하게 추방한 것은 급랭한 남북 관계 등을 감안한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관계 부처 회의도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도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안보실이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적십자 대신 경찰특공대가 호송… 판문점서 북한군 보이자 화들짝
특히 이 선원 2명은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포승줄로 묶이고 안대로 눈을 가린 채 판문점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들의 북송(北送) 사실을 몰랐던 한 선원은 북한군이 보이자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탈북단체 관계자는 "정부 주장대로 이들의 귀순 의사가 '거짓'이었다면 당사자들에게 북송 사실을 왜 감춘 것이냐"고 말했다. 남측 표류 북한 주민을 북으로 돌려보낼 때는 적십자사가 인계하는데, 이번엔 이례적으로 경찰특공대가 호송을 맡았다. 북송에 반발해 자해할 가능성 등을 감안한 것이다. 이 역시 '강제 북송'의 근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재판 관할권은 당연히 한국에 있는데, 부당하게 북한에 넘겼다는 지적도 크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탈북민) 귀순 의사의 진정성을 정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며 "일단 이들을 수용해 우리 법에 따라 수사·재판을 받게 했어야 한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헌법상 북한 주민은 귀순 의사 표명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 국민"이라며 "정부가 '국민'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흉악범은 난민으로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난민은 외국인에게만 적용되는 지위라 북 선원에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북 선원이 저질렀다는 '해상 살해사건' 자체에 대한 의혹도 이어지고 있다. 아라키 가즈히로(荒木和博) 일본 특정실종자문제 조사회 대표는 "(해당) 목선은 구조상 갑판 밑에 통로가 없어 옆방으로 가려면 갑판 위로 올라가야 한다"며 집단 살인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납북 어부 출신 탈북민 최욱일씨는 "17t급 (작은) 배에서 3명이 16명을 살해했는데 다른 선원들이 몰랐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며 "오징어잡이 배는 주로 밤에 작업하기 때문에 모든 선원이 깊이 잠들 수가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 A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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