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칼럼] '10월 국민혁명'은 한국당 물갈이도 요구한다

류근일 언론인
입력 2019.11.12 03:17

자한당 스스로는 '자기 내려놓기' 못해
10월 아스팔트 주연들이 '죽음 통한 재탄생'강박해야

류근일 언론인
문재인 시대를 개탄하는 사람들은 이중의 고민을 안고 산다. 하나는 이러다간 나라가 전체주의 혁명으로 송두리째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악몽이다. 또 하나는 그걸 막아야 할 자유한국당이 과연 그럴 만한 정신 상태와 싸울 자질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의구심이다. 권위주의 시절엔 '두 김씨가 잡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자유한국당에 대해선 "저 사람들이 과연 잘 해낼까?" 하는 불신이 있다.

조국 사태로 적잖은 민심이 현 정부를 떠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표심은 자유한국당으로 오진 않고 허공에 떠 있다. "자유한국당은 더 나쁘기 때문"이라는 게 일부의 반응이다. 딱히 입증되지 않은 편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보통 국민 사이에도 은연중 퍼져 있다는 건 자유한국당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념 독재를 우려하는 국민은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도 달리 무슨 방법이 있나. 부득불 밀어주고 찍어줄 수밖에" 하는 체념론을 펴왔다. 그러나 최근 자유한국당 지지표가 급속히 줄어들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국 사태가 시들해지면서 유권자들이 다시 자유한국당의 안일과 구태와 '너무 이른 샴페인 터뜨리기'에 새삼 주목하고 등 돌린 탓일까? 사실이라면 자유한국당은 정말 큰일 난 셈이고, 비(非)좌파 유권자들은 오갈 곳을 잃는다.

더군다나 잔머리와 꼼수에 능한 586은 총선이 임박할수록 그 어떤 희한한 깜짝쇼와 요술을 부릴지 모를 일이다. 남한 보수 재집권을 반길 리 없는 김정은도 이곳 대중을 현혹하려고 미·북 정상회담을 꾀할지 모르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에 호응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이 정권은 또 세금 들이붓기 뇌물을 통해 이미 상당수 대중을 매수해 놓았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조국이 말한 '사회주의자'들은 그 짓을 더 맹렬하게 해댈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반(反)좌파 정파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필사의 노력을 해봐야 한다. 자유한국당을 살리려면 그들을 일단 철저하게 죽게 만들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스스로는 이런 '자기 내려놓기'를 하지 못한다. 자유민주 국민이 그걸 강제해야 한다. 자유민주 국민은 누구인가? 10월 3일, 9일, 25~26일, 11월 9일에 도심 광장을 꽉 메웠던 민심 대폭발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자유한국당에 '죽음을 통한 재탄생'을 강박해야 한다.

'10월 국민혁명'이라 부르는 최근의 자유민주 국민의 대각성과 궐기는 건국 이래 최대의 유의미한 사태 중 하나였다 해도 괜찮을 것이다. 한 달 사이 4번씩이나 수백만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을 일으켰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명연설 "나에겐 꿈이 있다"를 낳은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을 연상시킬 만큼 엄청난 대폭발이었다. 그 중심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전광훈)가 있다. 이에 대해선 격한 논쟁이 일고 있다. 그러나 누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수백만 국민이 문재인 정권을 반대해 도심 광장에 일시에 쏟아져 나온 것만은 아무도 부인 못 할 객관적 팩트다. 이 팩트가 현재로선 한국 자유민주 수호 운동의 유력한 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도 청와대 앞에선 '문재인 퇴진 철야 기도회'가 41일째 이어지고 있다. 참여자들은 이 쌀쌀한 날씨에 아스팔트 위에서 찬비를 맞으며 '악령에 대한 싸움'을 선언한다. 586 현상을 일종의 사이비 종교라 할 때 정치공학적 대처만으론 안 된다는 뜻이다. 586 광신보다 훨씬 더 센 정신적 에너지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이 타는 시대적 목마름에 부응해 사즉생(死則生)의 몸짓을 보여야 한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말한 '3선 이상 퇴진론'이든, 이언주 의원이 말한 '80% 물갈이론'이든, 무언가 획기적 혁신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자유민주 대한민국 진영이 폭삭 망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

이런 원론적 당위에 비추어 본다면 '황교안 보수 통합'이 기껏 유승민 몸값 올려주기로 낙착된 것은 격이 좀 낮았다. 이는 친박·비박 누구누구의 "우리 같이 살자"는 계책이란 설이 있다. 그러나 실은 그 누구누구가 "우리가 모든 걸 안고 같이 죽자"고 해야 맞는 게 아닐지? 보수 통합은 이쪽저쪽 계파의 보수 분열·실패 대표 얼굴들의 자숙·자책·자퇴가 있으면 더 잘될 수 있다. 이 물갈이가 '10월 국민혁명'이 바라는 진정한 보수 통합일 것이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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