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수익·유착·견제'... 엔터 전문가들이 분석한 '프듀 사태' 4가지 이유

박성우 기자 이정민 기자 김우영 기자
입력 2019.11.09 15:34 수정 2019.11.09 20:12
시청자 투표 조작 ‘프듀 사태’…"이미 예상한 일"
"짜여진 각본"…시청률 위해 제작진 개입
잘 키운 신인 하나 기획사·방송사엔 ‘황금알 낳는 거위'
제작진-기획사 유착도..."대형 기획사 의존도 낮추기"

음악 전문 채널 엠넷의 ‘프로듀스101’(프듀) 제작진이 생방송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거세다. 경찰에 따르면 오디션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연습생 20명은 경쟁을 시작하기 전 제작 PD에 의해 1위부터 20위까지 이미 순위가 정해진 상태였다. PD가 직접 골랐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PD 픽(pick)'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9일 엔터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연출·수익·유착·견제 등 4가지를 프듀 사태의 원인으로 꼽았다. 재미와 감동을 위해 제작진이 방송에 개입하거나, 돈이 되는 아이돌을 만들기 위해 기획사와 방송사가 유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엠넷(Mnet) '프로듀스X 101' 안준영 PD와 제작진이 생방송 투표 조작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은 뒤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연출 방식 ‘재미를 위해 짜여진 각본대로’
프듀 시리즈는 아이돌 연습생들 101명이 출연해 춤이나 노래, 공연 등으로 평가를 받아 최종 11~12명이 데뷔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의 생존과 탈락은 시청자 투표로 결정된다. 이 과정을 통해 걸그룹 ‘아이즈원(프로듀스48)’과 아이돌그룹 ‘엑스원(프듀X)’이 탄생했다. 엠넷 측은 "시청자가 뽑았다"다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오디션 경연 등 서바이벌 경쟁 프로그램이 100% ‘리얼리티’보다는 어느 정도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대본에 기반하지 않고 출연자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 방송을 표방했지만, 사실은 기획된 대로 방송이 제작된 셈이다.

이들은 재미·감동·슬픔 등 시청자 공감을 얻기 위해 ‘연출’이 빠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출연자에게 ‘성격이 좋은 인물’, ‘외모가 예쁘지만 거만한 인물’, ‘동정심을 유발하는 인물’, ‘실력은 부족하지만 성실한 인물’, ‘영원한 2인자’ 등의 이미지를 부여해 시청률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엠넷은 지난 5일 투표 조작 의혹을 받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엑스(X) 101'('프듀X') 관련해 사과 입장문을 냈다. 앞서 경찰과 검찰은 안모 PD 등 프로그램 제작진에 대해 사기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 청구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CJ ENM 사옥. /연합뉴스
캐릭터 뿐만 아니라, 상황을 연출한 정황도 있다. ‘하위권에 있는 인물이 열심히 해서 상위권으로 진입’ ‘거만한 친구가 상위권에서 하위권으로 밀려남’ ‘결국 반성하고 다시 상위권으로 재진입’ 등의 상황 연출은 시청률을 높이는 일종의 ‘조미료'로 통한다. 프듀 등 CJENM의 순위 프로그램에서 ‘악마의 편집’ 논란이 많은 것도 이 같은 배경 탓으로 풀이된다.

한 방송사 PD는 "순위 프로그램을 연출없이 그대로 방송할 경우, 내용이 밋밋하고 편집도 어렵다. 양념처럼 사용하는 어느 정도의 캐릭터 부여와 상황 연출은 방송가 관행"이라며 "다만 이번 프듀 투표 순위 조작은 제작자의 재량권을 넘어서 시청자를 우롱하는 행위"이라고 지적했다.

◇ 방송사-기획사 "똘똘한 신인, 톱스타 안부러워"
관련 전문가들은 프듀 순위 조작 사태의 핵심을 ‘수익성만 생각한 프로그램 운영’을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PD는 "PD 한명이 술접대를 받았다고 순위를 조작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방송사와 기획사 모두 신인 발굴로 수익성을 극대화 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탈이 난 것"이라고 했다.

방송사와 연예기획사 입장에서 ‘신인 발굴'은 수익을 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통상 톱스타를 스카웃해 전속 계약을 맺으면, 연예인이 수익의 70~90%를 챙기고 나머지 10~30%는 기획사가 가져간다. 스타의 인기로 얻어지는 수익이기 때문에, 기획사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반면 ‘신인’일 경우 기획사가 전체 수익의 70~90%를 챙길 수 있다. 계약 기간도 5년 이상이다.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방송사는 돈 되는 아이돌을 만들어 수익을 공유하기 위해 기획사와 손을 잡는다. 프듀의 경우 과거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슈퍼스타K’ ‘K팝스타' 처럼 일반인이 출연하는 게 아니라, 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이 출연한다.

/조선DB
‘워너원’을 데뷔시킨 프듀 시즌 2가 인기를 얻은 뒤 워너원과 CJ ENM은 연간 수백억원 규모의 순수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데뷔 그룹 활동의 수익 분배는 CJ ENM 25%, 그룹 소속사 25%, 가수 개인 소속사 50%로 나눠 갖는 구조였다. 하지만 방송 활동 중반부터는 CJ ENM이 산하 기획사를 만들어 프듀로 데뷔한 아이돌 그룹을 직접 관리했다.

시즌3에서 배출한 걸그룹 ‘아이즈원’ 소속사 오프더레코드와 시즌4로 결성된 ‘엑스원’ 소속사 스윙엔터테인먼트는 모두 CJ ENM 산하 기획사다.

한 증권사 엔터 기업 담당 연구원은 "이번 사건은 엠넷이라는 강력한 매체를 보유한 CJ ENM과 신인 발굴로 수익성을 높이려는 중소형 기획사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벌어진 사달"이라며 "CJ ENM은 방송을 통해 연습생을 3개월 만에 톱스타로 만들었고, 산하 기획사를 통해 연습생들을 관리하면서 많은 수익을 얻게 됐다"고 했다.

◇ PD-기획사 유착 "한 컷이라도 더 나와야 사는 구조"
경찰은 프듀 제작진과 연예 기획사가 유착관계라고 파악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구속된 PD 안준영(40)씨는 기획사로부터 모종의 대가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경찰은 그가 기획사로부터 수십차례 접대를 받은 것으로 보고, 안씨에게 배임수죄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순위 조작과정에서 CJ ENM이 관여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프로듀스 1~4 시즌 홍보포스터. /엠넷
하지만 방송가에서는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많다. 방송사가 프로그램 제작부터 앨범 발매까지 전권을 쥐고 있어 방송사와 기획사 사이에 유착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한 전직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프듀에 101명의 연습생이 출연하다보니, 정작 방송에 노출되는 시간이 아주 짧아 PD의 편집에 당락이 결정될 수 있는 구조"라며 "결국 소속 연습생을 노출시키기 위해 기획사들이 치열한 로비를 벌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대형기획사 의존도 낮추는 전략
업계 일각에서는 대형 기획사를 견제하기 위한 CJ ENM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이오아이·워너원·아이즈원·엑스원 같은 톱스타를 직접 발굴하면 기존 대형 기획사들의 의존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프듀를 통해 인기를 얻은 아이돌을 산하 기획사에서 관리하면 자사 프로그램 출연 섭외 등이 쉽다는 점이 장점이다.

한 대형기획사 대표는 "그동안 스타의 육성과 배출은 기획사의 역할이라는 게 시장의 ‘룰’이었지만 최근 강력한 방송 플랫폼을 가진 CJ ENM이 신인 발굴에 직접 나서면서 기획사들 사이에서는 ‘갑-을’이 뒤바뀌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그는 이어 "프듀 시리즈의 중심이 SM, JYP, YG 등 3대 대형기획사가 아닌 중소형 기획사 중심인 까닭도 이런 이유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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