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반기업 아닌 문정부는 無기업"

강동철 기자
입력 2019.11.09 01:31 수정 2019.11.09 11:30

[쓴소리하며 임기 마치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두발 단속하듯 52시간 규제… 국가의 획일화 정책이 문제"

"이 나라에서 대체 혁신 성장을 위해 총대 메는 사람이 누구냐. 나는 모르겠다. 그 주체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지난 7일 만난 장병규(46·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2년 임기 동안, 4차산업위가 정책을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며 "나라도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내 능력은 부족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4차산업위를 혁신 성장의 컨트롤타워라며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 부처는 돕기는커녕, 남 일처럼 보거나 심지어 방해했다는 것이다. 장 위원장은 "두세 달 전에 정부에 연임 안 할 테니, 후임을 찾으라고 일찌감치 얘기했다"고 말했다.

4차산업위는 2017년 9월 설립된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위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중소벤처기업부·국토교통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 등 장·차관급 인사 6명과 민간 18명이다. 장 위원장은 초대 위원장으로, 작년 한 차례 연임했고 이달 26일 임기가 끝난다. 장 위원장은 "이번 정부에서 혁신 성장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스타일이겠지만, 그동안 한 차례도 대통령과 독대를 못 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이 정부는 반(反)기업도, 친(親)기업도 아니고, 무(無)기업이었다"고도 했다. 기업의 어려움에는 관심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는 "경제는 버려진 자식처럼 밀려나 있다"고 했다. 또 "(정부가 시행한) 52시간 근로시간제는 두발 규제나 치마 길이 규제 같은 낡은 규제"라며 "테크 혁신의 시대에 국가가 획일적으로 정하려는 발상이 문제"라고도 했다.
이달 26일 임기를 마치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에게 "스스로 평가할 때 성공한 위원장인가"라고 묻자, "내가 성공, 실패를 자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다만, 성공하려고 최선을 다한 위원장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모빌리티 혁신과 헬스케어는 꼭 규제 뚫고 안착시키고 싶었는데 둘 다 잘 안 됐다. 모빌리티는 아예 첫 단추도 제대로 못 끼웠다"며 "4차산업위가 규제혁신태스크포스를 만들긴 했지만 구속력도 없었다. 내가 정무적으로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타다나 카풀 논란에서 행정 권한을 쥔 국토교통부의 장관이 4차산업위 위원이었지만, 본인이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자책이었다.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이번 정부에서 혁신 성장은 우선순위가 낮다"며 "친기업·반기업도 아닌 무기업 정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이달 26일 4차산업혁명위위원장 임기를 마친다. 그는 "정부에는 연임 안 할 테니 후임자를 찾으라고 말했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인터뷰는 7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장 위원장이 경영하는 게임 업체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4차산업위원회 사무실은 서울 광화문에 있지만, 그는 이곳을 택했다. 장 위원장은 2000년대 채팅서비스인 세이클럽으로 유명한 네오위즈의 공동창업가다. 검색엔진 기술기업인 첫눈과 게임회사 블루홀(현 크래프톤)을 연이어 창업하기도 했다. 크래프톤은 세계 최고 흥행의 총싸움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곳이다. 기업 가치만 5조원이 넘는다.

"혁신 성장, 기업은 우선순위 밀렸다"

―2년간 지켜본 문재인 정부는 혁신 성장 정부인가.

"아쉬운 점이 많다. 혁신 성장에 대한 우선순위가 낮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소득 주도 성장(소주성), 혁신 성장, 공정 경제다. 문제는 소주성은 다수를 위한 정책이고, 혁신 성장은 소수의 혁신가를 지원하는 정책인데, 둘이 같이 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럴 땐 리더십을 발휘하는 분들이 혁신 성장을 강하게 주장해줘야, 혁신 성장과 소주성의 균형이 맞았을 것이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분배에 치우쳐 있다."

―이번 정부는 친(親)기업인가 반(反)기업인가.

"친기업도, 반기업도 아닌 무(無)기업이다. 경제는 버려진 자식처럼 느껴진다. 현 정부에선 기업과 경제에 대한 우선순위가 너무 낮다. 친노동이면서 무기업이라고 본다. 한번은 정부 장·차관급 인사들을 전부 조사해봤다. 100명이 넘는 인사 가운데 기업을 경험한 사람은 나 빼고 2명밖에 없었다. 기업을 이해하는 정부 고위 관료가 있어야 현실감 나는 정책이 나올 텐데….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삼성전자 출신 진대제 사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갔다. 그땐 정책이 빠릿빠릿했다."

―4차산업위가 한 일이 없지 않나.

"모빌리티 혁신은 꼭 하고 싶었다. 우리도 태스크포스까지 만들었지만 안 됐다. 국회와 국토부도 이 문제를 다뤘지만 거기서도 지혜로운 해법은 안 나왔다. 4차산업위가 한계가 있던 건 맞는다. 사실 위원회가 한계가 있으면 (장관이 4차산업위 위원인) 주요 부처가 움직여주는 게 맞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시절엔 기재부에 혁신성장본부가 있었고 이재웅 쏘카 대표가 본부장을 맡아, 서로 끌어줬다. 기재부가 나설 땐 다른 부처 과장들도 엄청 잘 참여하더라. 그런데 경제부총리가 바뀌자 (혁신성장본부가) 힘이 빠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경제부총리가 4차산업혁명위원장 맡아 이끄는 게 맞지 않나 싶다."

"52시간제, 두발·미니스커트 규제 같아"

―4차산업위는 최근 발표한 대정부 권고안에서 주 52시간제를 비판했다.

"52시간제의 본질적인 문제는 국가가 너무 획일적으로 정했다는 대목이다. 두발 규제나 치마 몇 센티(미니스커트 길이)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느냐. 52시간제 자체가 (기업의) 자율권을 침해한 것이다. 우리 권고안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국가가 아니라 기업·산업 단위로 근로 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제도는 지금 대학원생들, R&D(연구개발) 직종, 제조업 할 것 없이 모두 적용한다. 도대체 왜 R&D 시간을 제한해야 하나. 원래 R&D라는 영역은 불확실성과 싸우는 것이고, 시간이 곧 성과로 연결되는 분야가 아니다."

―정부는 이 제도가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52시간 근로시간제) 법안이 왜 대기업과 민주노총, 한국노총만의 대화로 결정됐는지도 의문이다. 대기업, 민노총, 한노총만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 내년 1월 1일부터는 종업원 수 50~299명인 중소·중견기업으로도 확대되는데, 이후에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렇게 논의된 법안이 어떻게 통과됐는지 신기하다."

조선일보 A1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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