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자승자박''자업자득' 정권의 2년 반 세월

입력 2019.11.08 23:30

임기 前半 쌓은 업적 全無한데 後半 어찌 버티나
대통령 바뀌지 않으면 바꾸도록 만드는 게국민 권리

강천석 논설고문
문재인 정권이 5년 임기의 절반을 지났다. 정권 실적을 평가하는 각종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다. 수십 항목에 이르는 평가에서 어느 하나 평균 점수 이상을 받은 분야가 없다. 안보 외교·경제·사회 통합·교육·환경·에너지·일자리 모두가 낙제점(落第點)이다. 엊그제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현 정권이 가장 잘못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얼핏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의 5년'은 임기 전반에 벌었던 것을 후반에 까먹고 빈털터리로 퇴장하는 한철 장사다. 5년 단임 한국 대통령들의 정치 만년(晩年)이 그랬다. 그런 운명을 벗어나고자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업적 쌓기에 매달렸다. 대통령은 빈손 빈주먹으로 돌아가도 나라는 몇 걸음씩이나마 전진했던 것은 이 덕분이었다. 성품(性稟)이 결코 너그럽다고는 할 수 없던 그들이 전(前) 정권에 대한 청산 작업을 최단기간에 매듭지으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며칠 전 검찰은 세월호 사건을 다시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야당 대표를 잡으려는 정치 계산이 있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정상적 국민에겐 정권의 '정신 결함' 또는 '성격 장애' 탓으로 비친다.

문재인 정권의 성적표를 훑어보고 떠오르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세 개가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작지얼(自作之孼)'이다. '자승자박'은 '자기가 가진 오랏줄로 제 몸을 옭아 묶는다','자업자득'은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자작지얼'은 '제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災殃)'이라는 뜻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삶은 소대가리' 취급을 하고 각종 미사일과 방사포를 섞어 발사하고 한국 기업 돈으로 지은 금강산 시설을 들어내겠다고 막말을 한다 해서 김정은의 식언(食言)을 나무랄 수 있나. 중국 학자의 최근 평양 방문기에 따르면 그쪽 사람들의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대단하다고 한다.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우리 민족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통 큰 연설을 하고 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아무 소식이 없느냐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UN에서 남북 군사 합의 이후 북한의 합의 위반 행동이 한 건도 없었다 했고, 청와대 안보실장은 북한 미사일 발사가 한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놓고 김정은에게 무슨 말을 하나.

바로 며칠 전 미국 국무부 고위 인사들이 떼로 몰려와 미군 주둔비 부담 5배 인상,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선언 번복, 중국 정보 기업 화웨이 퇴출 정책에 한국 참여를 요구했다. 부동산 업자 출신 대통령이 미국 군대를 임대(賃貸) 사업 대상으로 삼는 천박함이 물씬 풍긴다. 일본과도 미군 주둔 비용 부담 갈등이 있지만 워싱턴에서 주일미군 철수 가능성은 단 한 번 나온 적이 없다. 주한 미군 감축·철수설은 이젠 고정(固定) 메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선언 번복 요구를 보라. 바로 지난 8월 청와대 안보실 책임자가 미국을 움직여 일본의 수출 보복 조치를 허물겠다며 의기양양하게 꺼내들었던 그 카드가 아닌가. 일본 머리를 친다던 방망이가 한국 머리에 떨어졌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불러올 한·일 정면 충돌을 우려하는 외교부 소리에 귀를 열어 주었다 해서 전(前)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사람들을 줄줄이 재판정에 세웠다. 그러면서 죽창(竹槍) 든 의병을 들고 나왔었다. 지금 사정이 어떻게 됐나. 청와대는 대통령이 방콕 아세안 정상회담 대기실에서 아베 총리와 '11분 동안' 긴(緊)한 말을 나눴다 발표하고 일본은 그게 아니라며 손사래 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전투기는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멋대로 휘저으며 북한과 삼각편대(編隊)로 날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부딪히고 일본과 충돌하며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신주(神主)를 붙들고 가라앉는 경제, 하마(河馬)처럼 돈만 삼키고 일자리를 낳지 못하는 불임(不姙)의 일자리 대책에 내일이 있겠는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아파트 값이 평당(坪當) 1억원을 돌파하는 최고 기록을 낳고, 대통령이 주도하는 자율고 폐지와 대학 입시 정책 허물기는 학부모들의 등을 강남으로 떠민다. 대책 없는 원전 폐쇄는 멀쩡했던 전력 회사를 적자 더미 위에 올려놓고 이젠 전기요금 인상 고지서를 인쇄할 일만 남았다.

이 정권 2년 반은 '자승자박' '자업자득' '자작지얼'의 세월이다. 3년 전 촛불이 타던 광화문 네거리 그 자리에선 매일 대통령 하야(下野)를 외치는 갈라진 목소리가 밤늦도록 울린다. 대통령은 바뀔 수 있을까. 바뀌지 않으면 바꾸게 해야 한다.


조선일보 A30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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