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수원 백씨였어? 아들뻘이네" 쌍방폭행 두달 다투다 그 자리서 화해

이정구 기자
입력 2019.11.08 03:02

反日집회서 말다툼 벌이다 충돌… 검찰 형사조정위서도 격렬히 싸워
합의 실패로 정리하려는 순간 동성동본 확인하고 서로 사과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형사조정 기일에 쌍방 폭행 혐의로 입건된 백모(45)씨와 또 다른 백모(여·70)씨가 출석했다. '형사조정'이란 검사가 기소 등 형사처분을 하기 전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합의를 유도하는 제도로, 사소한 분쟁이나 소액 재산 범죄 등에 주로 적용된다. 두 사람도 단순 폭행 혐의였다.

이날 참석한 한 형사조정위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 8월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열린 반일(反日) 집회에서 경찰에 입건됐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찬반(贊反)을 놓고 말다툼을 벌이던 두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서로를 촬영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촬영을 막으려 밀치다가 여성이 넘어졌다. 여성은 안경테가 부러진 것 외에 큰 부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감정이 상한 둘은 경찰 단계에서 합의하지 못해 결국 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송치됐다. 검찰은 폭행 정도가 심하지 않고 화해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이 사건을 형사조정위원회에 넘겼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날도 잘잘못을 따지면서 말다툼을 했다고 한다. 사건 당일 각자 촬영한 영상을 제출하면서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노인 백씨는 "아들뻘이 버릇없이 대든다"며 쏘아붙였고, 남성 백씨는 "잘못은 당신에게 있다"고 맞섰다. 조정위원으로 참석한 변호사와 노무사가 합의를 유도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합의 실패'로 정리하려던 순간, 한 조정위원이 남성을 가리켜 "백씨"라고 부르며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자 노인 백씨가 "어디 백씨냐"고 물었다. 남성이 "수원 백씨"라고 하자 "나도 수원 백씨"라며 항렬을 따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집안 아들뻘인데 백씨 집안에는 이런 남자가 없는데 왜 그랬느냐"고 나무랐다고 한다. 훈계조이긴 했지만 화가 누그러진 말투였다. 그 뒤 노인 백씨가 "우리 악수하자"며 먼저 화해를 제안했고, 남성 백씨도 "저도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했다. 노인 백씨가 "백씨가 다른 본관도 있지만 사실 모두 한집안"이라고 하자, 남성 백씨는 "맞습니다"라고 했다.

화해한 두 사람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해 위원회에 제출했다. 단순 폭행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여서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처리하게 된다. 합의서 제출까지 마친 뒤 노인 백씨는 남성을 껴안고 등을 토닥이며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열심히 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한 조정위원은 "처음엔 격하게 다퉈 합의가 어렵다고 봤는데 '백씨' 하나에 모든 게 해결됐다"고 했다.


조선일보 A12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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