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 러브? 그건 상처받기 싫다는 응석일 뿐"

곽아람 기자
입력 2019.11.08 03:02

'요조&임경선'

연애·인간관계·나이 듦·직업 등 다양한 고민과 해결책 주고 받은
두 사람의 교환일기 책으로 펴내… '언니 조언' 절실한 30대 여성 열광
"겁이 많아 직언을 잘 못해요… 타이밍 잡아 간결하게 말하면 돼"

"장류진 소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엔 자신과 밤을 같이 보낼 기대를 하는 남자를 거절하며 '자고 나면 다 똑같아지지 않냐. 자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거 같다'고 말하는 여자가 나와요. '자고 싶음'만 영위하고 자지는 말자는 여자의 제안이 너무 유쾌하고 슬펐어요."

38세 싱글인 '동생'이 이렇게 말하자 아홉 살 위 애 엄마인 '언니'가 자신의 연애론을 피력한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이 몸을 섞고 싶어하는 마음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아무런 모순이 없어. 그런 욕망을 가지면서도 꾹 누르고 '플라토닉'을 고수하려는 태도야말로 불순해. 결국은 '사랑의 좋은 부분만을 오래도록 맛보고 싶다'거나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응석을 돌려 말하는 것이니까."

'동생'은 제주에서 '책방 무사'를 운영하는 가수 요조(38), '언니'는 '캣우먼'이란 별칭의 인생 상담가로 잘 알려진 작가 임경선(47)이다. 두 사람의 '교환 일기'가 책으로 나왔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문학동네). '언니들의 속내'에 열광한 30대 여성 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출간 엿새 만에 초판 5000부를 소화하고 중쇄를 찍었다. 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들은 "우리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도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준 것이 인기 비결인 것 같다"고 했다.

교환일기를 책으로 낸 가수 요조(왼쪽)와 작가 임경선. 두 사람은 “북토크에서 독자들을 만났더니 ‘고민의 탈’을 쓴 자기 이야기들을 막 하더라. 우리의 이야기가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지는 게 즐겁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책은 지난 3월부터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매주 두 번씩 30회 연재한 콘텐츠를 다듬어 만들었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쓴 일기를 낭독해 녹음했다. 여학생들이 단짝 친구와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통로인 '교환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건 임경선. "요조와는 7년 전 친구가 되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텔레그램으로 24시간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혼자 보기 아까워 남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연애, 인간관계, 직업인으로서의 자세,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태도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했다. '느긋한 아티스트' 요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똑 부러지는 생활인' 임경선이 명료하게 방향을 제시한다. "유능해지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들어오는 일을 거절할 수 없다. 돈은 그다음 문제"라는 요조에게 2005년부터 전업 글쟁이로 살며 책 20권을 내고 137번 강연한 임경선은 말한다. "내게 돈은 그다음 문제가 아니고 바로 그 문제 자체야. 페이는 '상대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다'라고 못 박고 시작해야 프리랜서로서 돈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자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지."

"겁이 많아 직언을 잘 못한다"는 요조의 고민에 대해선 "나는 직언해야 할 때, 바로 그 타이밍에 간결하게 말해버리는 편"이라며 덧붙인다. "결혼 초기 시어머니에게서 '안부 전화' 강요를 지속적으로 받아왔지만 끝끝내 응하지 않았어. 직장 생활도 오래 했는데, 그냥 일이라 생각하고 하면 되지만 나는 새롭게 만난 그 남자의 가족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싶었어. 의무감에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좋아할 수 없으니까." 매몰차 보이는 말이지만 임경선은 "오히려 시가와 가까워졌다"고 했다. "시아버지 이발이며 귀 청소, 손발톱 정리는 내가 도맡았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좋아서 한 거니까."

'낙타와 펭귄'만큼이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은 '1년 너머의 삶을 섣불리 상상하지 않는다'는 것. "10년 전 여동생을 사고로 잃으면서 나 역시 내일이라도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별수 없이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 되었어요."(요조) "스무 살에 발병한 갑상선암이 재발해 여섯 번 수술받았어요. 연 단위로 검진받다보니 1년이란 시간 안에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최대치의 즐거움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절실해요."(임경선)


조선일보 A23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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