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창문으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입력 2019.11.08 03:03

옛 한옥엔 방에서 방 보는 창문… 소통 도구… 현대인 실내 생활 공간, 소통 막는 단절 구조
방 나누는 아파트 벽에 거실 향한 창문 뚫고 교실의 밖 향한 창문은 바닥까지 내리자
집·교실 소실점은 TV와 칠판… 일방적 관계 강요
실내 구조 바꾸면 공동체 의식, 가족 대화 좋아져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건축 요소에서 '벽'은 공간을 나누고 단절하는 장치다. '문'은 벽을 뚫고 두 공간을 적극적으로 연결해주는 장치다. '창문'은 시각적으로만 소통하게 해주는 소극적 연결 장치다. 사람 간에 가장 좋은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관계가 너무 가까우면 사생활이 없어지고, 관계가 끊어지면 외롭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주는 건축 장치는 창문이다. 창문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과거 한옥에는 방에서 방을 보는 창문이 있었다. 안방에서 창문을 열면 마당 너머 사랑방 창문을 통해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내 방의 프라이버시와 소통이 공존하게 하는 창문이다, 그런데 아파트 창문은 밖을 향해서만 나 있고, 방과 방은 벽으로 나뉘고 막혀 있다. 가족 간 대화를 단절시키는 공간 구조다. 가족 간 소통을 위해서는 방에서 거실을 향해 창문을 뚫어야 한다. 집도 넓어 보이고 다양한 형태의 공간이 만들어져 심리적으로 넓게 느껴질 것이다.

학교·아파트, 벽으로 단절

창문이 중요한 곳이 또 있다. 학교다. 교실에서 창문은 복도 쪽 창문과 바깥 경치 보는 창문 두 가지밖에 없다. 복도 창문은 서 있는 교장 선생님이 앉아 있는 학생을 감시하는 창문이다. 권력의 위계를 만드는 창문이다. 밖을 향한 창문은 나가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는 창문이다. 학교에서 밖을 향해 난 창문 턱을 부숴서 창을 바닥까지 내려서 바깥 경치를 더 보게 해줘야 한다. 창 앞에는 테라스를 만들어서 학생들이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고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안전이 걱정되면 밟고 올라가지 못하게 난간을 세로 방향 살로 만들고, 테라스를 층마다 좌우로 엇갈리게 배치해서 좌우로 떨어지면 한 층 아래 테라스로 떨어지게 하면 크게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걱정되면 유리벽을 설치하면 된다. 아파트에 방에서 방을 보는 창문이 없듯이 우리 학교에는 교실에서 교실을 보는 창문이 없다. 교실과 교실을 나누는 벽에 창문을 뚫어야 한다. 교실에서 다른 교실을 볼 수 있는 유리 창문을 만들면 실내 공간도 더 넓어 보이게 된다. 수업이 시작하면 커튼을 치면 된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의 공동체가 좋아질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그림의 특징은 소실점이 캔버스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브루넬레스키가 완성한 투시도 기법 덕분에 완벽하게 깊이 있는 공간감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림에서 캔버스 내의 모든 사물은 소실점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현대인의 집에서 소실점은 무엇일까? TV다. TV가 놓이면 나머지 사물의 자리가 다 잡힌다. TV는 거실의 가장 큰 벽면에서 콘센트가 달려 있는 곳에 있다. TV 건너편에 소파가 자리한다. 창밖 경치가 아무리 좋아도 거실 소파는 창을 바라보게 배치하지 못하고 벽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일러스트=김하경
학교에서 소실점은 어디인가? 칠판이다. 선생님은 칠판 앞에 서고,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는 모두 칠판을 향해 있다. 학생들이 서로 쳐다볼 수 있는 공간 구조가 아니다. 책상과 의자는 모두 칠판만 보고 창문은 모두 밖으로만 향한 공간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바라보며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기 어렵다. 다른 사람을 볼 수 있을 때 공동체 의식이 생긴다. 그리스 원형극장과 로마 원형경기장이 대표적 사례다. 각각 반원형과 타원형 좌석 배치에서 그리스 시민과 로마 시민은 서로 바라보았다. 두 사회는 서로 바라보는 공간 구조의 건축물을 통해서 공동체를 강화했다. 칠판만 바라보는 단순한 공간 구조에서 선생님과 학생은 일방적 관계가 된다. 왜 학생들은 배움을 선생님에게서만 얻어야 하는가? 다른 학생들에게 배우면 왜 안 되는가? 현재 교실의 칠판과 창문이 만든 공간 구조는 일방적 관계를 강요한다. 우리 교육 제도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직업 탐방을 하고 미래 직업을 빨리 결정해서 스펙을 쌓고 수시 입시로 대학을 가라고 한다. 언제부터 학교가 직업 준비 공간이 되었는가? 교육은 교육으로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 교육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살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을 준비하는 곳이다.

디자인을 바꾸면 사람·사회도 바뀐다

'롤러블 TV'라고 모니터가 말려 들어가 사라지는 TV가 나왔다. 모니터가 사라지는 덕분에 이제 TV를 거실 창 앞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소파는 경치가 좋은 창문을 향해서 돌려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자유로워진 TV 위치 덕분에 가구 배치가 자유로워졌다. 교실의 경직된 공간 구조를 깨는 간단한 방법은 칠판에 바퀴를 다는 것이다. 칠판이 이동하면 교실의 공간 구조가 바뀌기 쉬워진다. 칠판을 교실 정면 벽에서 해방하면 백년간 바뀌지 않았던 교실의 공간 구조가 바뀔 것이다. 변화한 공간 구조는 그 안의 사회를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수평 권력 구조를 만들 것이다.

아파트 거실을 향해 창문을 뚫어서 방에서 방을 볼 수 있게 해주고, 학교 교실을 나누는 벽에 창문을 뚫어서 교실에서 교실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칠판에 바퀴를 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간단한 디자인 변형이 공간 구조를 바꾸고, 바뀐 공간 구조는 그 안의 사람들 관계를 바꾼다. 사람 관계가 바뀌면 사회와 세상이 바뀐다. 디자인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선일보 A32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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