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문 대통령, 왜 자꾸 국민을 거리의 투사로 내모나

입력 2019.11.08 03:06

무능, 국정 파탄보다 국민 속을 더 뒤집어놓는 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입을 꽉 다무는 이런 몰염치함…

최보식 선임기자

"'우기다'가 뭐예요, '우기다'가 뭐냐고! 내가 증인이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강기정 정무수석의 광분(狂奔)은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해준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향해 대통령 비서가 이렇게 막가파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동료 의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여서 운이 좋았다. 둘만 있었으면 고함과 삿대질로만 그치지 않았을 성싶다. 하지만 상대가 장대한 체구의 남성 원내대표였으면 이러지 못했을 것이다. 국회 모독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강기정의 '광분 사건'으로 첫날 국회 예결위는 파행됐다. 문재인 정부가 막대한 재정(財政)을 퍼붓기 위해 짜놓은 내년 예산안 심의에 그가 야당 불참 명분을 준 것이다. 국회에 헛걸음을 한 그는 "정무수석이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가 아니지 않으냐. 오늘만 해도 매우 중요한 점심 약속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날 밤에는 페이스북에 '예산안은 법적 기일 내에 통과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예결위원장을 따로 만나 맥주 한잔 했다'고 쓰고, 활짝 웃으며 맥주잔을 든 사진을 올렸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대통령 비서의 권력을 또 한 번 과시했다.

물론 그는 국감장 난동에 대해 "백번 제가 잘못한 것"이라며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에 "회의 진행에 대해 국회가 한번 생각을 해야 한다…"며 훨씬 더 긴 꼬리가 붙어 있다. 사과라는 걸 하면서 사실은 국회가 더 문제 있고 자신은 정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문재인 청와대 안에서 전염되고 있는 궤변 화법(話法)이다.

그날 국감에서 한 야당 의원이 노영민 비서실장에게도 이를 지적했다. "말 힘들게 하지 말라. 대통령 닮아가나?"라고 하자, 노 비서실장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대통령 닮아간다는 게 무슨 말이냐?"며 버럭 화를 냈다. 청와대 참모가 보스인 대통령을 닮아간다면 칭찬이지 격분할 일은 아니다. 노 실장이 왜 부정했는지 모르나, 바깥에서 보기에 청와대 참모들은 보스를 빼닮았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상황에 떠밀려 '송구하다'며 입을 뗄 때도 실제로는 자신이 옳다는 걸 우겨대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례로 대규모 광화문 집회가 열리고 조국씨가 임명 35일 만에 장관에서 사퇴했을 때,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는 큰 진통을 겪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사과 비스름한 말을 했다. 정작 본인이 조국을 장관으로 잘못 임명한 것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 없었다. 국론 분열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지 않고, 조국을 반대한 광화문 집회 인파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지 않았다면 광화문 집회에 대해 마치 앙갚음하듯이 "조국 장관의 뜨거운 의지와 온갖 어려움을 견디는 자세는 다시 한 번 검찰 개혁의 절실함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역대 어느 정권도 정책이나 인사·언행 등에서 실패와 오류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간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사과해야 할 타이밍에는 사과했다. 어떻게 사과를 잘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이 실상을 알고는 있구나. 노력은 하는구나' 하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아예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정권이다. 경제 실정(失政)이 통계청 자료로 입증돼도 "통계 조사에 문제가 있다"며 딴소리를 한다. 전(前) 정권 탓, 외국 탓, 야당 탓을 하지 현 정권의 정책적 오류라고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예외적으로 문 대통령이 곧잘 사과하는 사안이 있다. 제주 4·3, 월남전, 부마 사태, 광주 5·18 등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사과한다. 지난 박근혜 정권의 과오를 떠올리게 하는 '낚싯배 전복 사고' 등에서는 눈물까지 흘리며 과도하게 사과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과 중소기업에서 난리 났지만 대통령은 민노총을 의식해 "당초 약속대로 최저임금을 더 못 올려줘 안타깝다"고 사과한 적도 있다.

임기 절반 내내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솔선수범했으니 청와대 참모들도 안 닮아갈 리 없다. 상식이 통한다면 강기정 수석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준 책임으로 사표 내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한다면 이런 난동 비서에게는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이미 본인이 사과했기에 따로 입장 낼 게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능·위선·국정 파탄보다 국민 속을 더 뒤집어놓는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입을 꽉 다무는 바로 이런 몰염치함이다. 많은 사람에게 '문재인 정권은 구제 불능'이라는 막막한 기분을 들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왜 자꾸 국민을 거리의 투사(鬪士)로 내모나.



조선일보 A34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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